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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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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가쁘게 돌아가는 저간의 사정이 그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적어도 동행자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 최대한 노력했다. 그런 불편스러운 정황은 내 스스로 더욱 못 견뎌하면서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나는 참으로 딱한 처지에 처한 동료를 향해 작심한 듯 내뱉는 참아내기 힘든 말을 들어야 했다. 아마 지난 월요일 주고받았던 믿음에 관한 언쟁을 통해 자신이 밀리고 말았다는 생각이 내내 뇌리에 박혀있는 듯했다. 남궁 선생은 앞으로 나눌 남은 일정을 의식한 듯 한사코 나를 보고 참으랬으나 양보할 일이 따로 있지 어떻게 복음의 본질에 속한 사항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다시금 말하거니와 우주 만물을 주재하시는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비행기가 추락해도 살릴 사람은 기어코 살리는 분이시다. 가랑잎새의 가없는 낙하는 물론 공중을 나는 참새 한 마리의 생사까지도 창조주께서 온전히 섭리하심을 믿는다는 선언이었다.
그의 인격이 심히 의심스러운 대목이었다. 이후 참으로 괴로운 동거. 그 상황은 송두리째 상처로 다가와 내 가슴팍에 박혔다. 만약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격한 분노를 발하여 당사자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었을 테지만, 그 정도의 모멸감은 내게도 감내할 영적 근거가 있었기에 꾹 눌러 참아냈던 참이다. 순간 나는 그런 강한 힘을 허락하신 우리 주님께 감사했다. 말 못 하는 나귀인들 입을 열게(민수기 22:28~30) 못하시며, 굳은 반석에선들 맑은 샘물을 터지게(신8:15, 시편 곳곳) 못하시랴. 이렇듯 나의 입장은 단호했다. 그런데 그 일을 꼬깃꼬깃 마음속에 접어두고 자못 못마땅한 언행을 지속적으로 일삼았다면 그다음 영역의 관할자는 심판주일 수밖에. 일그러진 일개인의 일시적 일탈이었을망정 부디 일고의 일깨움만이라도 남긴 채 일회성 일례로 일단락짓기로 했다.
어느새 새로 2시, 곤히 잠든 영육을 흔들어 깨우는 소리는 소스라칠 만치 귀에 거슬렸다. 남궁 선생 목소리였다. 3시에 출발한다며 왜 한 시간씩이나 빨리 채근하느냐고 물으니 사무적으로 간단히 일정을 앞당겨 조정했노라고 답했다. 그리운 집에 돌아간다니 반가워야 할 텐데 무거운 육신이어서 일으키기 어려운 상태를 핸시가 무척이나 근심 어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작은집 아이 둘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하긴 지금이 한창 잠들어 있을 오밤중이니 아쉽지만 그냥 이별을 고해야 했다. 나머지 가족들과도 기약 없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가벼운 악수와 포옹. 그게 마지막이었다. 우리가 다시 오거나 그들을 초대하지 않는다면 언제쯤이나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사이 한결같이 말이 없었다. 얼마쯤 갔을 때 어두운 길가에서 만난 야생 원숭이들. 비몽사몽 간이었기에 가물가물했지만 기억은 선명하다. 그리고 제법 커 뵈는 놀이공원 옆도 스쳐 지나왔다. 길가에서 위락시설이 훤히 들여다뵈지는 않았다. 그저 흘끔 입구를 봤을 뿐이었다. 맞다. ‘파메이저 필름시티’라는 곳에서 부축을 받고 내려 마지막 사진 찍은 생각도 난다. 그때 금세 전신에 한기가 서려왔었다. 남궁 선생의 도움을 받으며 두 차례 볼일(인도에서는 이를 가리켜 영문자 그대로 ‘natural call’이라 함)을 보았다. 그 가운데 한 번은 민가가 너무 가깝다며 핀잔을 일행에게 듣기도 했다. 어렵사리 이 선생을 뒷자리로 물러나라 하여 거지반 누워오다시피 그렇게 공항 근처에 다다랐다. 돌이켜보면 불편한 의자에 기대앉아 버티기조차 버거운 시간이었다.
이제 한숨 돌렸다 싶을 때 눈동자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갑자기 눈자위가 이상해질 조짐. 외부 충격이나 이물질 삽입도 없이 그리 맵고 따가울 수가 없었다. 눈을 뜨기도 감을 수도 없을 만큼 견디기 어려웠다. 가히 살인적이라는 수식어가 과하지 않을 정도. 연신 물로 씻어내니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대기에 섞인 흙먼지가 눈알 속을 파고들어 일시적 건조해진 안구를 자극한 터였다. 그간 일주일 이상을 지독한 매연을 어찌 이겨냈는지 스스로가 대견할 지경. 일주일 전의 충격적인 경험을 훨씬 능가한 체험이었다. 그렇기에 자와할랄 네루는 <인도의 발견>이라는 책자를 통해 하이데라바드의 실상을 ‘비참의 도가니’로 묘사한 걸까? 과연 환경오염도가 세계 수위권이라는 활자(‘평택시민신문’ 양용동 기자의 ‘인도 연수기’ 중)가 실감 나는 현장이었다. 아무튼 그때 필자의 까칠하고 수척한 몰골을 대할라치면 영락없이 어느 슬럼가에서 굴러온 노숙자의 꼴이라고들 놀릴 게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