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영국에는 셰익스피어, 미국에 월트 휘트먼, 스페인에 세르반데스, 그리고 독일에 괴테가 있다. 19세기의 역사학자 토마스 칼라일이 언급한 이들 가운데, 특히 괴테를 주목하고자 한다. 괴테(1749-1832)는 16세기에 활동한 독특한 학자이자 인물인 파우스트에 대한 전설에 흥미를 느껴 1773년부터 1831년 임종 8개월 앞두고 58년이라는 기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 「파우스트」다. 제2부 ‘지배자 비극’에서 파우스트는 전쟁 공로로 황제로부터 거대한 땅을 받고 간척 사업을 벌인다. 온갖 부귀영화에도 만족을 몰랐던 파우스트는 이제 자연마저도 지배하고자 했다. 그는 지상의 ‘지배권’ 획득을 마지막 과업으로 여기고, 바다를 막아 거대한 간척지를 만든다.
그러나 파우스트에게 문제되는 대목은 끝없는 욕망을 위해 사람까지 잔인하게 희생시키는 권력자의 모습이다. 그는 거대한 제방공사를 위해 백성의 노동력을 쥐어짠다. 특히 언덕 위 오두막집이 간척 사업에 방해되자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처리를 부탁한다. 그러자 메피스토펠레스의 부하들은 집주인 노부부를 강제로 끌어내고 오두막을 통째로 불태운다. 노부부는 그 화염에 희생됐다. 그는 약자의 희생을 전제로 한 권력자의 끝없는 탐욕을 보여준다. “자유로운 바다에선 정신도 자유스러워지는 법, 사리 분별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 전쟁과 무역과 해적질은 떼어놓을 수 없는 삼위일체인 것을.” 파우스트의 명령을 받고 세계를 일주하며 약탈을 일삼아 부를 챙겨 돌아온 메피스토펠레스의 이런 고백은 괴테가 우려한 탐욕이다.
이 ‘지배자 비극’에 등장하는 파우스트와 주변인들은 오늘의 상황에서 누굴까? 특히 12.3비상계엄에 대해 준엄한 책임을 묻는 대통령 탄핵인용을 둘러싼 상황에서 누굴까? 이 시점에 많은 이들 중 윤석열은 물론이고 두 사람을 기록한다면? 형사소송법 제203조가 정한 ‘일(日) 단위’ 계산을 ‘시간 단위’로 임의 변경해 윤석열의 구속 취소를 선고한 지귀현 판사. 또한 즉시항고가 위헌 소지가 있다는 황당한 이유로, 법률이 명확히 보장한 즉시항고(형소법 제403조제1항, 제402조, 제405조, 제66조)를 포기한 심우정 검찰총장. 이 둘은 법원과 검찰을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판사와 검사의 권위와 명예를 실추시킨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특히 국가를 위기로 몰아넣은 윤석열 대통령, 그는 칼 폴라니(Karl Polanyi)가 「거대한 전환」 163, 175, 244쪽에서 언급한 ‘사탄의 맷돌(satanic mill)’처럼, 사회의 뿌리인 인간의 상식을 가루로 만든 장본인 아닌가? 윤석열의 끝없는 권력욕과 거짓말을 보자.
첫째, 그의 만족을 모르는 권력의 탐욕이다. 대통령직에 만족하지 않았던 그의 일련의 사건을 보자. 대선 기간에 문제된 손바닥의 왕(王)자, 민심을 표현하는 여론조사에 관심이 없다던 그의 이상한 태도, 여당대표 끌어내기, 법치를 강조하지만 자기 가족과 충신에게는 예외, 국민 정서와 다른 황당한 인사, 야당대표들에게 가한 잔인한 수사 개입의혹, 야당 대표를 범죄자 취급한 그의 무모함, 입틀막 협박, 탄핵심리에서의 책임회피, 서부지방법원 선동, 특히 총구를 국민에게 향한 비상계엄을 보면 그는 스스로 왕(王)이 되려 한 것은 아닐까.
둘째, 그의 거짓말이다. 「햄릿」에서 거짓말은 한 국가를 위기로 만든다. 자신을 살해하고 왕이 된 동생에 대한 억울함 때문에 유령이 된 햄릿의 아버지는 햄릿에게 진실을 이렇게 알린다. “세상에 알려진 바로는, 내가 정원에서 낮잠을 자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은 것으로 되어 있을 것이다. 덴마크의 모든 백성들은 그 날조된 얘기에 감쪽같이 속고 있지만, 네 아비를 죽인 자는 지금 머리 위에 왕관을 쓴 자니라. ... 내 간단히 말하마. 나는 그날 늘 하던 버릇대로 정원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네 숙부가 몰래 숨어들어 인체에 썩게 하는 헤보나를 내 귓속에 부은 것이다.”
『햄릿』에서 헤보나가 왕을 죽이고 인간의 육체를 썩게 했듯이, 지도자의 거짓말은 국가를 좀먹는 독이다. 한 번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결국 국민의 신뢰를 무너뜨리며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장모가 사기당한 적은 있어도 남에게 10원 한 장 피해 준 적 없다”는 윤석열의 거짓말, 김건희 무속 논란이 번지자 “우리 집사람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녀서 구약을 다 외운다”는 거짓말, 윤석열은 관훈 토론회에서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에 대해서 오히려 4천만 원을 손해 봤다는 거짓말, 윤석열 검찰총장 시절 자신의 직속 부하인 손준성 검사가 작성한 고발 사주 문건에 대해서 후보 시절 괴문서라고 한 거짓말, 심지어 윤석열은 거짓말로 검찰총장이 된 셈이다. 윤석열의 헌법재판소 최후 변론마저 “야당이 군의 눈알과 같은 예산을 삭감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북한감시정찰 사업예산 4852억 원 감액됐다고 했다. 사실은 애당초 정부가 줄인 안이었다. 또 장거리 함대공 유도탄 사업, 드론 방어 사업 등 4개 사업도 야당이 일방 삭감이 아니라 합의라고 방위사업청 관계자가 말하지 않았나. 윤석열 후보시절, “특검은 왜 거부합니까, 죄를 지었으니까 거부합니다.” 그런 윤석열이 대통령 임기 중 자신의 배우자에 대한 특검법에 대해 모두 거부권을 행사한 그의 일련의 행동들은 너무 큰 충격을 주었고 오히려 분노를 자극하지 않는가?
윤석열의 반복된 거짓말과 권력 남용, 특히 윤석열의 여러 위헌, 위법 사항들을 제외하고 대통령의 계엄 선포권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헌법 장치가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권인데 대통령이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한 이유가 바로 국회가 본회의장에서 계엄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한 헌법 77조 3항 위반에 대한 책임을 묻는 탄핵인용은 당연한 귀결 아닌가. 입법·사법·행정부 소속 권력자에게 법 위의 권력이 용인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다. 정의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이 다시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