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서목사-시론】 법전문가에게 나라를 맡길 수 있을까?
    • <양지평안교회 담임목사>


      과거 수공업시대에 장인이 칼을 하나 만들려면 쇠를 달구어 망치로 펴고, 또 숫돌에 갈아 날을 세워야 하고, 나무로 자루를 만들어 끼워 넣는 전 과정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효율은 떨어졌지만 한 사람이 제조 전체과정에 참여해야 했기에 소외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문명이 발달하면서 분업화가 시작되었고 부분에 숙련된 전문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전문가는 부분을 확대하고 부분에 집중하지만 전체를 조망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화이트칼라 전문가의 경우는 한쪽에 깊이 빨려 들어가다, 이따금 샛길에 샛길로 접어 들어 동굴에 영원히 갇히기도 한다.

      과거에 사람을 죽이려면 몸을 사용해서 창으로 찌르고 피를 봐야 했지만 지금은 목표물에 커서를 놓고 단추만 누르면 된다. 미사일이 투하되는 그곳에서 젖먹이 아기와 엄마의 살이 찢어지는 모습을 볼 필요가 없다. 이 모든 일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제트 폭격기, 가공할 위력의 미사일과 폭탄, AI, 컴퓨터 그래픽 등은 모두 전문가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전문가들은 자기가 맡은 일에만 충실하면 된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에너지가 분산되기 때문일 것이다. 지그문크의 바우만(Z. Bauman)는 유럽 최고의 아말피상을 수상한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라는 저술에서 훌륭하게 짜인 유럽의 철도망, 시안화수소산정제에서 발생한 유독가스, 엔지니어들의 화장장 설계, 유대인들을 골라낼 수 있는 행정체계, 그들을 한 곳에 모을 수 있는 철도 수송체계 등, 이 모든 것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고안된 사회공학임을 논증한다.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범 법정에서, 이들 전문가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전문가라는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핑계로 도망갔다. 도덕과 윤리는 그들에게 또 다른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키엘케고어(S. Kierkegaard)는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전문가의 유치성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우스꽝스러운 예화 하나를 든다. 네덜란드의 동양학자였던 그의 부인은 식탁을 차려놓고 남편을 호출했다. 기다려도 남편이 식탁 앞에 나타나지 않자 그녀는 남편의 서재로 올라갔다. 남편은 동양학에 몰두해 있었다. 그녀는 남편에게로 다가가 두 팔을 남편의 양어깨에 올려놓고 책을 들여다보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며 “여보, 왜 식사하러 오지 않으시죠? 하고 말했다. 그 학자는 “여보, 식사가 문제가 아니오! 내가 지금 이 책에서 일찍이 보지 못하였던 모음 기호 하나를 발견했는데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어요! 이 판(版)은 네덜란드에서도 아주 유명한 판(版)인데, 봐요, 여기 점(點)이 있잖소? 흥분이 돼서 미칠 지경이오!” 부인은 반은 미소를 머금고, 또 반은 나무라는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며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려요? 내가 해결해 드릴께요“ 하고 그 점을 불어버렸다. 이때 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 기묘한 점은 사실 담배의 부스러기였다. 남편은 기뻐했고 부인에 의해 식탁으로 끌려갔다. 그는 전문가였지만 그의 부인이 볼 수 있는, 평범한 사실조차도 망상으로 왜곡할 수 있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고 키엘케고어는 말한다. 급진적 페미니스트인, 쥬디스 버틀러(J, Butler)는 그녀를 세계적인 석학의 반열로 올려놓은 『젠더트러블』에서 웬만한 지적체계를 갖추지 않고는 논박이 불가능한 학적 테크닉을 현란하게 펼쳐냈다. 그녀가 레즈비언으로서 성에 관한 학문을 깊게 전개한 후에 내린 결론은, 이성애(異性愛)는 비정상이고 자기와 같은 동성애, 트랜스젠더, 양성애자 등(LGBT)이 정상이라는 것이다.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가, 엉뚱한 궤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전문적 세계에서 그녀의 논지는 학문적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그것이 인간본성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그녀의 논지대로라면 이성애는 비정상이고 부부의 성관계는 감시카메라를 설치해서라도 금지시켜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전문가의 궤변이 법체제를 바꾸기도 하고 결국 가정과 사회를 파괴하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 국민들의 일반 정서는 “이 시대에 계엄?”이었다. 국민들은 잠을 설쳐가며 헬기가 국회 마당에 내리고, 국회에 군인들이 침투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보통 사람에게는 뚜렷한 증거였지만 법을 다루는 전문가들에게는 이런 눈에 보이는 증거조차도 검증의 대상이 된다. 어떤 법 전문가는 헌재의 탄핵인용이 하급법원에서나 내릴 판단이었다고 평가절하한다. 절차적인 법리로만 본다면 그의 해석은 맞기도 하지만 그는 그 논리가 궤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헌법재판관들 8명이 38일 동안 매일 토론한 것은, 법을 이용한 여러 전문가들의 궤변들을 변증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전후, 앞뒤 문맥, 국민의 정서,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눈, 윤 대통령이 다시 대통령으로 복귀했을 때의 혼란, 심지어 국민들의 흥분이 가라앉혀질 시기 등을 다각적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전문가일수록 ‘확증편향’이나 ‘인지부조화’ 등에 더 취약할 수 있다는 심리학자들의 보편적인 연구결과를 헌법 재판관들은 겸손한 마음으로 수긍했을 것이다. 자기 일에 깊이 빠져들수록 자신의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무언가를 알았다고 하는 것은 그것 외에 다른 것은 모른다는 이야기이고,(D. W. Winnicott) 무언가를 찾았다는 것은 그것 외에 다른 모든 것들이 은폐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사회를 바로 세우고 정화시키는데 훌륭한 법전문가들의 역할이 무시될 수는 없지만, 마약보다 중독성이 더 강한 권력욕에 빠져, 나라를 갈등과 혼란에 빠트리는 법전문가들이 많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 혹 누구라도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라면 그는 위험한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정치판에서 보여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전문가들이라는 사실이 국민들의 마음을 더욱 불편케 하고 있다. 그들은 죄없는 자를 죄인으로 만드는 일에 전문가이고 동시에 법망으로 자신의 죄를 피해가는 일에도 전문가다. 국민들이 그들의 정치력을 의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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