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지평안교회 담임목사‧한국정신분석협회 전 회장>
인형이나 장난감은 쉽게 파괴되지 않도록 부드러운 천이나 딱딱한 불럭으로 만든다. 유아의 공격에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의 공격에 살아남는 인형이나 장난감은 아이들에게 대화상대가 된다. 심지어 아이들은 곰인형이 이야기하는 말까지 듣는다. 이처럼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전에 인간은 항상 먼저 공격으로 그 대상의 존재유무를 확인한다. 인간은 이런 공격성을 모든 살아 있는 대상에게도 똑같이 적용한다.
문제는 이런 공격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곳이 가정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부모들만이 아이들의 공격에 보복없이 견디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의 공격을 버티어 내고, 항상 그 자리에 있어 준다면, 살아 있는 실제가 된다.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옛말은 실제 살아 있는 부모가 되라는 말일 것이다.
20·30세대는 SNS시대에 태어났고, 이들은 자기 몸으로 무엇을 경험해 본 세대가 아니다. 가상의 세계에서 손끝 클릭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하는, 몸이 없는 사이버 세계에서 살아왔다. 그들은 인격적으로 관계한다는 것이 무언지를 모를 수밖에 없다. 사이버 세계에서는 무엇이 팩트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진실이 그들에게 다가가도 그 순간, 수많은 역정보들이 그들의 시야를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상공간에서 유령처럼 무한히 떠돌아다닌다. 때문에 그들은 몸의 공격성을 실험해 볼 기회가 갖지 못한다. 또 자신이 붙든 것이 가짜면 어떻고 진짜면 어떤가? 진실은 어차피 쓰레기더미에 묻혀 찾기도 어렵지 않은가?
이런 그들이 공격성 실험의 때를 놓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들의 현실참여는 당연히 미숙하고 투박할 것이다. 모든 파괴적 공격에 대해 학교는 학칙으로, 사회는 법으로 보복한다. 이때, 보복하는 학교와 사회라는 대상은 환상이 될 수 있다. 서울서부지법을 파괴했던 20·30세대는 기소당하고 그 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공격성을 유연하게 받아주지 못하고 있는 이 사회의 상징적 기능이 그들에게는 환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가정에서 실험해 보지 못한 공격성을 사회에서 실현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 된다.
윤 전 대통령이 3년 내내, 한 대상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 대상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었고 아무리 잘 버티는 인간도 압수수색 몇 번이면 대충 끝을 볼 수 있었다. 전전· 전 대통령도 그 자리에서 끌어 내릴 수 있었다. 그 누구도 그에게는 살아있는 실제 대상이 아니었다. 자기의 말 한마디에 장기판의 졸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고 굽실거리는 인간들 역시 그에게는 실제하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야당 대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유령과 다름이 없었기에 그와 말을 섞을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쉽게 깨지거나 사라지는 장난감이 아니었다. 200회가 넘는 압수수색에도 살아남았다. 이제 그는 살아 있는 실제대상을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부모가 통계학자 이거나 법 만능주의, 또는 법기능주의자라면 경직된 울타리나 카테고리안에 자녀를 넣고 재단할 것이다. 이런 유연하지 못한 사고는 자녀의 공격성 실험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자식을 이겨야만 되는 강압적인 부모는 사실 살아 있는 실제가 아니다. 이들의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살아 있는 대상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눈앞에 대상이 살아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공격을 감행해야 한다. 독재자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히틀러(A, Hitler), 스탈린(L, V, Stalin) 푸틴(V, Putin) 등.
트럼프(D, Trump)는 예외일까? 그는 금수저였다. 원하는 대상은 언제가 가질 수 있었다. 그가 어떤 대상을 공격한다면 언제든 자기 앞에 무릎을 꿇릴 수 있었다. 그도 결국은 자신의 공격에 살아남은 대상을 보지 못한 셈이다. 이제 그는 황혼의 나이가 되어, 온 세계를 상대로 공격성을 실험하고 있다. 설마 세상은 환상이 아니겠지 하면서..., 그에게 세계는 장난감이다. 만약, 세계가 그의 손아귀에서 계속 신음한다면, 트럼프에게 이 세계는 환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윤 전 대통령은 훨씬 운이 좋은 편이다. 환상이 아니라 살아 있는 실제 대상을 보게 될 가능성이 트럼프보다 훨씬 더 빠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