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글로컬리더스포럼 사무국장
“청렴은 권력의 도덕적 정당성이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청렴’이라는 단어는 미덕을 넘어, 권력을 위임받은 자가 국민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최소한의 다짐이자, 권력 남용에 대한 철저한 경계선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이든 ‘청렴’ 이미지를 내세울 때는 그 자체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러나 김문수 대통령 후보, 그리고 최근 그를 지지하며 ‘청렴 정치의 화신’으로 띄우는 일부 주장은, 이 청렴의 가치를 정치적 수사(political rhetoric)로 소비되는 위험을 보이고 있다.
1. 청렴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김문수 전 지사는 오랫동안 ‘강골 청렴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쌓아왔다. 노동운동가 출신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검소한 생활 태도는 그의 청렴 이미지를 굳혔다. 실제로 김문수는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경기도 예산을 한 푼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강경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고, 일부 언론이나 지지층에서는 이를 그의 청렴성의 증거로 치켜세웠다.
그러나 청렴은 이미지가 아니라 실천이고, 권력의 정점에 다가갈수록 검증돼야 할 현실이다. 특히 김문수가 과거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확인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례는 그 청렴 이미지를 근본부터 흔들고 있다. 2006년 2,500만 원, 2010년 6,000만 원을 포함해, 총 3억 8,500만 원의 불법 정치후원금이 그의 정치 캠프를 통해 수수된 사실이 법원 판결문으로 확인되었다. 조직적으로 쪼개기 후원금을 모금한 노조원들은 실제로 형사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김문수 본인은 “나는 몰랐다”는 말로 그 책임을 부정했고, 법의 심판대에 오르지 않았다.
정치적 수사(political rhetoric)와 정치적 실천(political action)의 경계는 반드시 분명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청렴 정치’를 외치며 “어사 박문수 대통령” 같은 구호로 이미지를 포장하는 것은 정치적 수사다. 그러나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을 때 국민 앞에 사과하거나, 권력의 폭주에 맞서 싸우는 것은 정치적 실천이다. 청렴은 말의 정치가 아니라, 국민주권과 헌정질서를 위한 실천으로 증명되는 것이다. 사법상 기소되지 않았더라도, 불법 자금을 받은 정치 캠프의 수장이자 그 이익을 직접 누렸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도덕적·정치적 책임은 국민 앞에 사과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저 ‘몰랐다’는 한 마디였다.
2. 비상계엄 선포를 외면한 정치인의 도덕적 파산?
더 큰 문제는 김문수가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 선포’라는 헌정질서 파괴 시도 앞에서 보인 침묵의 태도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실제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주권을 무너뜨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단숨에 되돌릴 뻔한 폭력적 국가권력의 발동이었다.
이 중대한 헌정질서 위협 앞에서 김문수는 결코 분명한 선긋기나 비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우리의 반대편은 강력하다, 김문수를 지지한다”는 공개 지지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김문수는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계엄으로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죄송하다”고 짧은 사과를 하긴 했지만, 그 사과의 대상은 ‘국민의 고통’일 뿐,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정권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전혀 없었다.
3. 침묵은 윤리적 무책임인가?
김문수의 침묵이 단순한 기회주의인지, 전략적 고려인지, 정치적 위험관리인지 등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지만, 그가 “윤리적 무책임”으로 비판받는 것은, 단순히 그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폭력적 권력 발동이 일어날 때, 정치인의 침묵은 결과적으로 현상 유지에 기여하고, 때로는 정당성을 암묵적으로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군사 쿠데타나 5·16, 12·12 사태 이후 다수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침묵을 선택하며 새로운 권력에 대한 ‘도덕적 정당화’로 작용했던 사례가 있다. 그러나 침묵은 단순한 방관이 아니라,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정치적 무책임의 표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정치철학적으로 보더라도, ‘침묵’은 단순히 말하지 않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0.14.~1975.12.4)는 『인간의 존건』(The Human Condition, 1958)에서 정치는 단순히 ‘말’과 ‘행위’의 영역이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을 전제로 한 ‘공동세계의 건설’이라고 강조했다. 이 관점에서 정치인은 단지 개인의 윤리적 양심을 넘어, 공동체의 지속과 정의로운 질서를 위한 목소리의 의무를 지닌다. 따라서 ‘침묵’은 개인적 중립이 아니라, 공동체적 책임을 외면하는 정치윤리의 부재로 읽힌다.
또한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침묵은 무의식적 동조”라는 점을 일깨웠다. 현실의 폭력과 불의를 목도하고도 침묵할 때, 개인은 스스로 ‘저항 없는 도구’로 전락한다. 이 맥락에서 정치인의 침묵은 국민의 자유와 공동체의 정의를 지키려는 최소한의 의무를 저버리는 태도로, 윤리적 무책임을 넘어 청렴의 본질을 결정적으로 훼손한다. 이 관점에서 김문수의 침묵은 법적 동조로 규정되지는 않지만, 정치윤리의 시각에서 ‘책임 있는 실천’을 저버린 청렴의 배반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4. 본회퍼의 용기와 청렴의 진정한 의미
청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보자.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1906. 2. 4~1945. 4. 30)는 나치 정권에 맞서면서, 신앙과 양심,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본회퍼에게 청렴이란 단지 사생활의 청빈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권력의 폭주에 처절하게 맞서는 용기였다. 국민 앞에서 목숨으로 책임을 증명했던 그의 삶은, “청렴은 권력 앞에서의 침묵이 아니라, 책임의 실천”이라는 점을 오늘에도 보여준다.
그러나 김문수는 어떠한가? 그는 불법 정치자금 사건에 대해 사과 한마디 없었다.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이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도 처절한 대응이나 도덕적 분노를 보여주지 않았다. 책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던 본회퍼의 용기에 비추어 볼 때, 김문수의 청렴은 그저 이미지 아닌가. 국민주권과 헌정질서가 위협받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는 자가 청렴의 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5. 청렴, 권력의 진정한 책임
우리는 본회퍼의 삶을 통해, 청렴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묻는다. 김문수의 행보는 청렴의 본질과 충돌한다. 국민은 더 이상 청렴을 정치 수사로 포장하고 소비하는 위험을 용납하지 않는다. 청렴이란 헌정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는 용기 있는 실천이다. 청렴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이미지가 아니라, 그 권력이 반드시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함을 증명하는 책임의 증표다.
물론 김문수의 침묵이 법적으로 ‘동조’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가 실제로 비상계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이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한 바는 없다. 그러나 ‘청렴’이라는 가치를 내세워온 정치인으로서, 국민 앞에 분명한 선긋기조차 하지 않고, 헌정질서를 위협하는 폭력적 권력의 폭주에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점은, 윤리적 차원에서의 무거운 책임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 글이 김문수의 침묵을 ‘동조’로 단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침묵이 청렴의 본질인 ‘책임 있는 실천’을 외면한 것은 분명하다.
6. 따라서, 우리가 다시금 묻는 것
본회퍼의 사례 역시 오늘날의 현실과 완전히 같은 조건에서 비교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회퍼의 삶이 던지는 교훈은 분명하다. 청렴은 단지 금전적 청빈이나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국민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던지는, 권력의 폭주를 막는 마지막 보루라는 점이다. 이때 본회퍼의 사례는 단지 역사적 영웅담이 아니라, “청렴은 목숨을 건 책임의 실천”이라는 교훈을 던져준다. 본회퍼의 삶은 독일 나치 정권이라는 극한의 폭력과 불의에 맞선 투쟁이었고, 오늘의 한국 정치 현실과 직접적으로 동일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이 역사 교훈은 권력의 폭주를 방관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국민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도덕적 용기를 정치인의 책임으로 다시금 상기시킨다.
따라서 이 칼럼은 “침묵=묵인”의 법적 단정이 아니라, 헌정질서를 지키려는 청렴의 진정한 의미를 윤리적·역사적 맥락에서 재조명하는 데 있다. 오늘의 정치 현실에서, 본회퍼의 삶에서 묻어난 그 청렴의 향기를 더욱 깊이 음미하며,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책임을 끝까지 지켜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