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하비가 처음이 아니었다면, 강선우는 갑질이 아닐 수도 있다”
    • ― 프레임의 반복이 진실을 가리는 방식에 대하여


      <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글로컬리더스포럼 사무국장>

      사람들은 오랫동안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 4. 1 ~ 1657. 6. 3)가 인체에서 혈액이 순환한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이 통설에 의문을 제기한다. 도널드 플레밍(Donald Fleming 1913. 5. 28 ~ 2001. 6. 24) 교수는 고대 의사 갈렌(Galen 129년경 ~ 216년경)의 원문을 직접 검토한 결과, 갈렌 또한 혈액이 일정 방향으로 흐른다는 개념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비는 단지 그것을 보다 체계적이고 정량적으로 정리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오랫동안 왜 하비만을 최초의 발견자로 기억해왔을까? 그들은 원문을 다시 확인하기보다는, 기존 해석을 인용하고 반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의 반복은 오류조차 ‘사실’로 만드는 위력을 가진다.

      첫째, 지금 강선우 후보자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최근 청문회와 언론 보도를 보면, 누군가의 주장을 인용하고, 다시 그것을 기사화하고, 여론이 그것을 다시 인용한다. 이 과정에서 사실의 원형은 점점 사라지고, ‘갑질’, ‘보좌진 유출’, ‘결강’이라는 키워드만 남는다. 문제는, 그 키워드들이 사실에 기반했는가, 맥락 속에 해석되었는가, 원문에 가까운가라는 질문이 빠졌다는 점이다. 마치 역사학자들이 하비의 해석을 반복하듯, 청문회와 언론은 다른 해석자의 말만 반복하고 있다.

      둘째, ‘원문을 읽는 용기’ 없는 사회, 해석이 권력이 되는 사회다.

      하비와 갈렌의 사례는 진실이 반드시 먼저 전파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선우 후보자에 대한 비판 역시 그 맥락을 무시한 채 반복되면서, ‘정황’이 ‘증거’로, ‘이미지’가 ‘본질’로 둔갑하고 있다. 보좌진 면직 수가 과장되었다는 정정은 반영되지 않았고, 사적인 부탁이라는 해명은 악의적 의도로 편집되었다. 결강 논란은 사실확인 이전에 이미 결격 사유로 낙인찍혔다. 이는 진실의 지체(lag of truth) 현상이다. 우리가 하비에게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다음 피해자는 또 다른 이름으로 반복될 것이다.

      셋째, 지성 없는 반복은 진실을 왜곡한다.

      우리 사회가 사실 대신 프레임을 반복할 때, 청문회는 검증이 아니라 낙인이 되고, 언론은 관찰자가 아니라 선동자가 된다. 지속적으로 인용된 해석이 진실처럼 굳어질수록, 원문은 묻히고 맥락은 지워진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하비를 칭송하기보다 갈렌의 글을 다시 읽는 태도, 즉 직접 확인하고, 스스로 판단하며, 다수의 말보다 근거와 진실을 우선하는 지성의 민주주의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하비가 처음이 아니었다면, 강선우는 갑질이 아닐 수도 있다."

      이 한 문장은 우리가 지금 되새겨야 할 모든 것을 압축한다. 진실은 되묻는 자에게만 열린다. 그 물음을 회피하는 정치와 언론은, 결국 또 하나의 오역을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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