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청문회는 검증의 장인가, 집단 갑질의 사냥터인가
    •      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헌법이 보장한 공적 검증의 자리다. 도덕성과 전문성, 정책 비전을 국민을 대신해 확인하는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이기도 하다. 그러나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검증이 아니라 단죄와 낙인의 무대로 전락하고 말았다.

      첫째, 일부 국회의원들의 질의는 사실관계를 묻기보다 이미 유죄를 전제한 공격에 가까웠다. “보좌진 몇 명 나갔는가?”, “변기 청소를 시켰는가?” 같은 질문들은, 해명이나 설명의 기회 없이 반복되었고, 정황을 맥락 없이 확대한 채 이미지를 덧씌우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예컨대 “보좌진 46명 면직”이라는 수치는 국회사무처 자료를 통해 중복 기록이 포함된 숫자였으며, 실제 인원은 27명 수준으로 국회의원 기준에 평균 이하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러나 이 수치는 정정되지 않았고, ‘역대급 갑질’이라는 프레임만이 청문회를 지배했다.

      도덕적 검증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도덕이 절차를 앞서고, 사실 대신 이미지가 우선할 때, 검증은 그 정당성을 상실한다. 정치적 단죄를 위한 이미지 조작이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때, 우리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능 중 하나를 스스로 훼손하게 된다.

      둘째, 언론의 책임도 크다. 초기에 경향신문을 비롯한 일부 매체는 정확한 수치 확인 없이 보도했고, 이후 수치 오류가 지적되었음에도 정정보도는 없었다. 이는 ‘초두 효과(primacy effect)’—즉, 최초 인상이 모든 판단을 좌우하게 만드는 심리 작용—를 통해 언론이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몰아가는 방식이었다. 또한 강의 무단 결강, 병원 면회 중 소란 등 청문회에서 거론된 개인 사안들 역시 맥락 없이 보도되며 피의사실 공표에 준하는 언론의 무책임한 태도가 반복됐다. 해명이나 반론은 배제되고, 자극적인 키워드만이 제목을 장식했다.

      셋째, 시민사회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회보좌진노조, 여성단체 92곳, 참여연대 등이 사퇴를 요구하며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 판단의 근거는 편집된 보도 내용과 청문회 일부 발언에 기초하고 있었다. 전면적 사실 확인이나 후보자의 정책 구상에 대한 검토 없이 '윤리적 유죄'를 선언한 것은, 결과적으로 도덕의 이름을 빌린 또 다른 형태의 집단 갑질일 수 있다. 윤리적 감수성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 주장 방식도 절차적 정의 위에 서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넷째,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책의 실종이다. 강 후보자가 제시한 성평등 정책, 발달장애 돌봄 대책, 가족정책 재구성 등은 여가부 존립 여부가 논의되는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의제다. 그러나 청문회와 언론 어디에서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다. 대신 ‘변기 청소 부탁’, ‘쓰레기 처리’ 같은 키워드만이 남았고, 청문회는 본래의 목적을 잃은 ‘마녀사냥 재판장’으로 변질되었다.

      도덕은 필요하지만, 절차와 균형을 잃은 도덕주의는 공포정치로 이어질 수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1789년 프랑스혁명 5년 후,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는 “덕 없는 공화정은 무능하고, 공포 없는 덕은 무력하다”(La République est impuissante sans la vertu, et la vertu est impuissante sans la terreur)고 말하며, 도덕의 이름으로 단두대를 가동했다. 결국 그는 그 단두대의 희생자가 되었다.

      글을 마무리하며,
      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단죄하면서, 정작 그 단죄의 방식은 비도덕적이 되어가고 있다. 사실이 아닌 이미지로 단죄하는 문화는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다음 희생자를 예고한다. 도덕적 책임을 묻는다면, 그 책임을 추궁하는 방식 또한 도덕적이어야 한다.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시민사회든 — 정의와 윤리를 말하는 이들이야말로 그 무기를 가장 조심스럽게 써야 할 책임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어느새 스스로 단두대를 정당화하며 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다음 희생자는 누구인가. 지금, 그 질문 앞에 우리가 서 있다.

      이제라도 청문회 제도에 ‘사실 기반 질의 원칙’을 명문화하고, 언론에 대한 ‘자율 심의 기제’ 같은 개선책을 논의할 때다. 그래야 우리는 도덕과 절차를 함께 지키는 성숙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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