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2회)----------
일행이 당도한 곳은 크라이스트처치(도시명이 그리스도교회). 뉴질랜드 제2 도시의 인구는 40만 정도로 수도 웰링턴과 엎치락뒤치락 경쟁 관계에 있으나 숫자를 놓고 싸우는 양상은 아니란다. 첫눈에 품격이 있는 시가지. 영국 성공회 지도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뿌리내리게 하려는 의도로 건설했다는데 오늘날 그 이면은 어떠할까? 필자의 눈에는 그리스도의 향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인간의 위대성을 한껏 드높인 흔적은 곳곳에 흔했으나 전능자 하나님만을 높이고 피조물인 사람의 얼굴을 감추려는 겸허함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지독한 지진을 통해 보듯이 창조주께서 불어버리시면 한순간에 날아 가버릴 것을 미련한 인간들은 그걸 모른다. 미개한 마오리족에게 식인종이라는 멍에를 덧씌우고도 모자라 학살을 자행하고 평화를 빼앗은 합리화마저 끝내 죄악이 아니라고 부인한다면, 타락한 본성을 정당화하려고 원시인 중에 특공대로 뽑힌 자들의 혀를 잘라 수집했다는 끔찍한 뒷소문은 어찌할 셈인가? 타락한 영혼이 혼미한 채 저지른 자범죄라고 밖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노릇이다.
Garden Hotel에 들어서자마자 카운터에서 대뜸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언제 들어도 익숙한 우리말 자모(字母). 금연법에 따라 모든 실내에서는 금연이어서 몰래 피우다가 걸리면 적잖은 벌금과 함께 가혹한 제재가 따른다는 규정이 썩 맘에 들었다. 숙소에서 풍기는 질감에 호감이 간다 했더니 탁자와 천장이 원목이었다. 각종 접시며 주방 기구들이 콘도와 다름없이 완비되어 있었다. 저녁 식사는 한인 식당. 김치와 잡채가 먹을 만하고 질긴 고기 요리보다는 시원한 홍합 국물이 훨씬 좋았다. 입이 짧은 아내를 챙기며 실컷 즐기고 들어와 커피를 나눈 다음 예배를 드리고 잠자리에 들었다. 문제는 차가운 방안 공기. 나중에 들으니 담요 밑에 전기장판이 있었는데 고장이 났었단다. 단잠이 보약이거늘 온풍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위적 온기며 소음이 싫어 꺼버린 채 간밤을 지새우고 나니 몸은 으슬으슬할 수밖에. 속에 열이 많은 나야 어떻게든 버틴다지만 아내 상태가 심상찮다. 이역만리에서 병이 나면 큰일이니 간절한 기도와 보살핌으로 극복해야 한다.
이른 아침을 때우고 로마서를 묵상한 뒤 버스에 올랐다. 오늘 일교차는 섭씨 0~10도. 크라이스트처치의 도시구조는 영국을 본떠 Oxford TCE를 두었다는데 그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없었다. 104개의 공원을 포함한 휴식처가 전체 면적의 1/8을 차지해 얻은 별명이 Garden City(주민 3,500명당 1개꼴). 대지가 넓으니 대부분의 건물이 1~2층에 지나지 않아 용적률이 매우 높다. 초창기 구심점을 위해 교회(성공회)를 지었으나 지금은 명목상의 교인들이 일부 있을 뿐,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찾아보기 힘들다. 눈앞에 Money Change(환전소)를 지나 드문드문 3~4층의 건물들 한가운데 최고 8층 빌딩이 우뚝(?) 서 있었다. 곳곳에 흐르는 시냇물에는 장어가 돌아다닌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에이번강의 물줄기를 보니 과연 그랬다. 거기서 대략 15분 정도만 달려가면 관념 속의 남태평양이 펼쳐진다. 다만 아직은 남극에 가까이 다가온 기분을 느끼기에는 이르다.
Central Library라는 팻말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정중앙에 사진을 찍기에 알맞은 조형물이 있었다. Christ Church Cathedral이 그것. 그 앞을 장식한 동상에 새겨진 이름을 보니 John Robert Godley. 그 옆으로 트램이 오갔다. 한동안 없앴다가 21년 만에 복원해 2km 구간을 정해 운영하고 있었다. 하긴 빅토리아 건축양식을 보존하느라 하찮은 건축물에 리모델링을 결정할 때도 반드시 공청회를 거친다는 곳. 1850년대 최초의 이주자들이 5척의 배를 타고 들어와 캔터베리 협회를 세우고 도시를 건설하면서 그들이 다녔던 옥스퍼드의 크라이스트처치대학을 본떠 지금과 같이 개명했다고 한다. 곧바로 어린이도서관을 지나 들른 곳은 기대하던 보타닉(Botanic)가든. 54만 평의 헤글리공원 가운데 9만 평을 잘라 조성해 놓았는데 이 지역에서 자생하는 1만 여종의 식물을 가꾸고 보존한다는 말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가능한 한 반경을 좁혀 한 바퀴 걷는데 한 여성 직원이 어설픈 몸놀림으로 구슬땀을 흘리며 삽질을 하고 있었다. 개울을 자양분 삼아 자라는 거목은 어언 150년을 넘겨 살아온 원목. 그 장관 앞에 동상이 보였다. 몬트리올 St.에 있는 William Rollston. 유난히 기림비를 좋아하는 문화가 영국을 쏙 빼닮았다. 굵고 우람한 수종의 잔가지들이 마치 가느다란 녹색 실처럼 바람결에 하염없이 나부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