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조하식(칼럼니스트•문인, Ph.D.) - |
------------잠시 조망해본 빌딩숲(6회)------------
첫 탐방지는 록펠러센터의 중심인 Top of Rock. 한창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체이스 맨해튼은행(Chase Manhattan Corporation)의 소재지답게 고층 건물의 허우대가 멀끔했다. 혁신적인 예약 티켓 시스템에 따른 간편한 입장은 퍽 인상적. 향기로운 화장실이나 NBC의 시대별 뉴스를 게시한 전시 공간 또한 합격점이었다. 이어 반짝이는 별자리를 연출한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초고속으로 70층 꼭대기. 바로 위 77층에는 크라이슬러 자동차회사 사무실이 있단다. 가이드는 믿거나 말거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분은 하늘을 쳐다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다물어 보라고 권했다. 전망대는 일명 Top of the Rock. 비록 상대적 높이는 낮지만 뉴욕에서 가장 조망하기 좋은 곳이란다. 현지여행사에서 제공한 팸플릿에 따르면 360도 스카이라인을 따라 전혀 막힘없이 펼쳐지는 뉴욕시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데 과연 하늘로 치솟아 오른 빌딩가가 빽빽한 숲 지대를 이루고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건 자유의 여신상. 그 너머 대서양 물결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그에 비해 개방한 옥상은 정교함에서는 일본만 어림없었다. 동선의 구조는 물론 우천시 대비책과 햇빛 가리개 등 관람객을 위한 편의시설 자체가 전무. 바닥에 붉은 벽돌을 밟을 때마다 꿈틀거린다면 알만한 일 아닌가. 좁아터진 공간을 비집고 사방을 돌며 사진 몇 장을 카메라에 담은 뒤 얼른 내려오고 말았다.
기실 4대에 걸친 록펠러가의 돈벌이 과정에 대해서는 세간의 촌평에서부터 명암이 엇갈린다. 근검절약하는 가운데 성실한 자세로 냉혹한 비즈니스의 현실을 이겨냈다고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19세기 말 미국 석유의 95%를 독과점하여 키운 정유업을 바탕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재벌이 되었다는 혹평을 듣기도 한다. 일례로 당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Theodore Roosevelt, 1858~1919)은 “그런 부를 가지고 아무리 선행을 꾀한들 어찌 그 많은 악행을 덮을 수 있겠는가?”라고 한탄했단다. 심지어는 본시 프랑스어였던 ‘리베이트(rebate)’라는 단어가 창업주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 1세로 인해 영어로 둔갑했다는 설이 있을 지경 그도 한 인간이기에 감춰진 내력을 들추자면 한이 없을 테지만, 한 가지 주목할 일은 그 일가가 기부를 일상처럼 즐긴 기독교 집안이었다는 사실이다. 55세가 되던 해 앞으로 1년 이상을 더 버티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기점으로 무려 4,928개의 교회를 비롯해 12개의 종합대학과 단과대학을 세웠다는 실적을 일일이 들지 않더라도 대대로 주일성수를 하고, 가정을 최우선에 두었으며, 아예 사내에 따로 십일조를 계산하는 직원까지 채용하고 있었다면 그래도 전자에 좀 더 무게를 두는 편이 보다 객관적이지 않나 하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오늘날 서로들 쟁점이 충돌하는 과거청산의 문제 역시 그 공과(功過)를 저울질하되 과보다는 공을 부각시키는 아량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다.
거대한 터미널 앞, 버스와 지하철을 한 지점에서 연결함으로써 각지로 이동을 극대화한 발상이 돋보였다. 그 옆은 영화 ‘스파이더맨(Spider Man)’을 촬영한 곳. 아닌 게 아니라 도심을 에워싼 빌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뉴욕의 명물로 자리 잡은 BMW 다리. 흔히들 알고 있는 Bus, Metro, Walk를 이용하자는 교통 캠페인이 아니라 세계 최초의 석조다리인 브루클린 브리지(Brooklyn Bridge, 맨해튼 브리지(Manhattan Bridge), 윌리엄 브리지(William Bridge)를 가리키는 약자를 말한다. 강 건너 뉴저지에는 그 유명한 골드만삭스 그룹(Goldman Sachs Group)이 있고, 다시 베로자로네로우 다리를 건너면 유럽대륙과 맞닿은 대서양을 만난다. 전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거대한 벽 월가를 뒤로하고 지금은 시들해진 제2 월가를 지나 케네디와 재클린이 결혼식을 올렸던 St. 패트릭성당 앞에서 내렸다. 도심 소공원 옆 중세 고딕양식의 건물로써 공교롭게도 같은 곳에서 케네디의 영결식이 열렸다니 과연 인생이란 무엇일까? 패트릭(Patrick, 385~461)은 스코틀랜드 출신 사제의 이름을 땄다는데 고개를 디밀고 들여다보니 물씬 절 냄새가 났다. 어젠가 동남아를 돌아볼 때 마리아 얼굴에 석가모니의 몸을 접합한 조각품을 본 적이 있었는데 죽은 케네디의 영혼을 생각하니 왠지 씁쓸한 혈류가 전신에 맴도는 듯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맨 처음 당선된 가톨릭 신자로서 모든 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성경 교육을 일거에 없애버린 조치의 전말을 아는 이가 정작 몇이나 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