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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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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엘룰루(Erulu)’ 40km 이정표. 우리가 머물기로 한 지역이었다. 인도에서 만나는 표지판들은 글씨가 깨알 같은 데다 그림 문자 티가 나는 힌두어와 지역어까지 병기한 영문자가 적혀 있어 알아보기 어려웠다. 동행자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인도인들이 자랑하는 ‘동부해안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편도 2차선. 심혈을 기울여 포장한 흔적이 뚜렷했다. 중앙분리대 위에 푸석한 열대 잔디를 촘촘히 심고 띄엄띄엄 꽃들을 배치했다. 군데군데 키 작은 나무들도 보였다. 한마디로 엉성하고 허접한 길. 어쨌거나 자동차는 때를 만난 듯 전속력을 냈다. 계기판을 보니 시속 80Km. 이상하다 싶어 자세히 들여다보니 고장이었다. 곳곳에 세운 이름 모를 동상들. 저 멀리 드문드문 열대 과목들이 줄지어 있었다. 코앞을 스치는 가느다란 사각형 전봇대. 물자 부족은 비단 어느 한 부문에 국한하지 않는다. 공사판을 봐도 철근 굵기가 지나치리만치 가늘었다. 지붕을 떠받치는 기둥마저 둥근 원통 나무를 반으로 쪼개 쓸 지경. 그러니 터졌다하면 대형 사고일 수밖에. 그때였다. 운동장 있는 학교가 보였다. 우선 학생들의 외모부터가 깔끔했다. 얼른 물어보니 귀족학교였다.
오후 4시를 넘겨 또 한 교회로 향했다. 침례식이 예정된 곳. 어디나 그렇듯이 무척이나 시끄러웠다. 환영 나온 인파도 인파려니와 온 마을이 가스펠송으로 꽉 찬 느낌. 이전부터 힌두교도들과의 세력다툼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예배 순서 가운데 우리 셋의 특송이 울려 퍼졌다. 찬송가 172장. “빈들에 마른 풀 같이 시들은 나의 영혼 주님의 허락한 성령 간절히 기다리네. 가물어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리시듯 성령의 단비를 부어 새 생명 주옵소서” 이 땅에 이보다 더 갈급한 찬양이 있으랴. 예배 후 차를 대접했다. 융숭했지만 선뜻 마실 수는 없었다. 무설탕을 주문했음에도 너무 달았다. 마당으로 나오니 모퉁이에 자리를 깔고 앉아 아이들 다섯이 공부에 열중했다. 수학이었다. 영어 교과서를 펼쳤다. 초등학교 5년 수준이 우리 중2보다 높았다. 영어가 경쟁력임을 다시금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한 인도의 경우 영어 회화 숙달 정도가 장래 엘리트를 가름하는 척도. 칭찬을 듬뿍 쏟아낸 뒤 침례 장소로 이동했다.
걸어서 10여 분 거리였다. 길가 수문 근처로 모여든 사람들. 지켜보노라니 쿠마 목사의 카리스마(charisma)가 돋보였다. 걸출한 외화(外畵) ‘십계’에 출연하는 모세처럼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려 기도를 올리고, 본 교회 담임목사의 도움을 받아 한 영혼, 한 영혼에게 혼을 실어 침례를 베풀었다. 손으로 코를 막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개울물 속에 완전히 잠수했다 일어서는 방식이었다. 난생처음 목격하는 의례. 세례를 받은 나로서도 경건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이 선생은 뒷전에서 바라보는 일로 족한 반면 남궁 선생은 그들 틈에 섞여 차례차례 의식을 도왔다. 한껏 은혜로운 낯빛이었다. 그날 열예닐곱 명가량이 세례교인이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요단강도 이랬을 터.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셨던 말씀(마태복음 3:16~17)이 생생히 떠올랐다.
어느덧 황혼. 아시아 대륙의 중앙에서도 태양은 어김없이 뜨고 진다. 인도 땅끝에서 바라보는 작열하는 태양. 그 뜨거운 물체가 서서히 하루의 종막을 고했다. 그 옛날 찬연했던 인더스문명의 단초라도 발견한 듯한 감동. 가까이 뵈는 호수에 나준녘(저녁때의 평안도 사투리)의 해그림자가 반쯤은 잠겨있도다. 나의 예민한 감성에 물든 감상의 편린들도 더불어 물속에 녹았다. 문득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서해대교의 행담도를 떠올렸다. 이런저런 상념을 끌어모아 대학 시절 수상도 했고 지역신문에 기고도 하고 책도 펴냈다. 그 제목은 ‘노을 수상(隨想), 그 황홀한 향연’과 ‘그리운 행담도 -섬 매립계획의 철회를 꿈꾸며-’였다. 붉디붉은 노을에 휩싸여 한 힌두병원을 지날 무렵 때마침 저 건너편에서 검붉은 하늘을 가르는 굵은 연기가 솟아올랐다. 언뜻 큰불이 난 듯 보여 물으니 가을걷이 후 병충해 방지를 위해 행하는 통과의례. 오묘한 일치였다. 텅 빈 들판에 군불을 지르는 일이 이곳 농촌 마을의 마무리 행사라는 설명 가운데 동행자들이 쏟아놓는 해낙낙한 웃음소리로 뒤덮였다. 무거운 해낭(亥囊)을 걸머진 채 지구촌을 걷고 있는 이들의 입가에 아주 흐뭇이 넉넉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