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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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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금 ‘산토메’ 성당까지 이동해야 했다. 결코 만만찮은 경로. 굳이 그 시신의 흔적을 기리고자 온 바는 아니었다. 다만 초대교회 시절, 이 척박한 땅에서 온갖 영적 박해를 뚫고 고군분투했던 토마스 사도의 족적을 확인보고 가리라는 호기심이 다였다. 오후 1시 40분, 템플과 나란히 세워놓은 대학캠퍼스를 지나 드디어 산토메 성당에 당도했다. 서양인 수녀 몇몇이 보였으나 우리 같은 과객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입구에 있는 입간판을 보니 ‘토마스 사도는 초대교회 당시 말라포(Mylapore)에 살면서 7개 교회를 개척하다가 끝내 순교하고 말았으니 그때가 주후 72년이었다’는 해설이 적혀 있었다. 때마침 교회 내부를 대대적으로 수리 중이어서 경내는 어수선했다. 그의 시체는 성당 안 강단 바로 아래 지하에 안치되어 순례객들을 맞았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임에도 그 길목만은 막지 않아 일단 돌아보긴 했으나, 이 또한 또 하나의 우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닌가 하여 뒷맛이 씁쓸했다. 그러고 보니 또 한 가지 궁금증이 일었다. 이렇게 공들여 조성하는 건 황금이 목적일 텐데 왜 관람료를 받지 않을까?
PM 2시를 넘긴 시각, 우리는 그 명성이 자자한 ‘마리나비치’에 들르기로 했다. 오래간만에 짧으나마 정교하게 단장한 보도블록 위를 걸었다. 해변 탐승에 앞서 점심부터 해결하자고 뭉쳤다. 식어 터진 카레밥에 얹어준 짠 꽁치 한 마리. 내 입맛에 맞을 턱이 없었다. 이 선생을 쳐다보며 도움을 청하니 그마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식단이 사흘을 먹으면 질린다나 뭐라나? 생선 살만 일부 발라먹고는 냅다 버리려 드니 쿠마 목사가 자신에게 달라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이 선생 말마따나 나 역시 사람인지라 마뜩잖기는 마찬가지. 뻔히 식성을 알면서도 저것만 고집하는 저의를 두고 짚었던 말이었다. 그랬더랬다. 인도 방문 이틀째인가 통 먹질 못하는 날 보고는 앞으로 큰일을 감당하려면 아무거나 잘 들고 소화해내는 훈련이 필수적이라는 충고를 쿠마에게서 들었었다. 백번 옳은 소리로되 속이 한번 뒤집히니 쉽사리 회복이 되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아직 ‘비천에 처할 줄은 모른 채 풍부에 처할 줄만 알고 있으니,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우려면(빌립보서 4:12) 갈 길이 먼 바로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시여, 능력이 부족한 저에게 성령을 부으시어 부디 주신 사명을 능히 감당케 하옵소서!” 널따란 백사장을 둘러보러 내려가는 길에 대뜸 동생 쿠마가 물었다. ‘한국에도 이런 해수욕장이 있느냐’고. 냉큼 ‘아무렴, 있고말고’라고 답했더니 어깨를 좌우로 움찔거린 건 이 사람이 한국 역시 삼면에 그림 같은 바다를 끼고 있는 걸 모른 채 그저 모래사장의 넓이야말로 국토의 크기에 비례하는가 보다 속단하는 거 같았다. 출렁이는 바닷물까지 걸어서 갔다 오는 데는 꼬박 10분이 걸렸다. 우리 동해안에 견줘 어림없는 물빛. 모래에 붉은 흙이 섞인 데다 장사꾼들에 의해 해변이 온통 과자봉지와 땅콩 껍질로 더럽혀져 있어 안타까웠다. 그만 차에 오르려 할 때 반가운 얼굴들을 만났다. 포항성남교회에서 선교차 방문한 대학생 봉사단. 만리타국에서 듣는 국어의 음성은 더없이 구수했다. 내 또래쯤 되어 보이는 선교사와 안부를 나눴다. 5분여의 짧은 해후를 뒤로 한 채 약속한 3시 반에 맞춰 그곳을 떠야 했다.
지금 우리는 첸나이라는 거대한 성곽 안에 갇혀 있었다. 이를테면 타밀어를 주어(州語)로 쓰고 사는 아주 배타적인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를 탐색하던 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재빨리 이곳을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라고 직감하는 순간 교통경찰이 차를 세웠다. 우습게도 운전자의 복장 불량이 벌칙 항목. 뇌물을 건네니 곧바로 풀어주었다. 문제는 그다음, 또다시 다른 경찰이 붙잡았다. 결국은 적지 않은 범칙금을 물어야 했다. 믿음의 정도(正道)를 벗어난 성령의 응징이었다. 화가 난 쿠마는 볼멘소리로 마드라스 사람들을 각별히 경계하라고 강조했다. 끝내 참기가 역겨웠던지 ‘질적으로 안 좋은 족속들’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이참저참 운전자의 페이스가 흔들려서일까, 기사는 기어코 접촉사고를 내고 말았다. 톨게이트에서 대기하다가 클러치를 놓치는 바람에 저지른 어이없는 실수. 이러쿵저러쿵 양측에 시비가 붙었다. 추돌을 당한 앞차 주인이 느닷없이 달려들어 키를 빼앗아갔다. 망연자실 울상을 짓던 사모가 황급히 뒷좌석에 납작 엎어진 채 울부짖으며 기도했다. 급기야 사건은 경찰로 넘어갔고 일행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먼길을 떠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