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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건 |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
조희대 대법원장을 둘러싼 최근 논란은 단순한 사법 판단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법치의 본질을 되묻고 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과연 ‘법의 지배(rule of law)’ 아래 살고 있는가, 아니면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에 길들여지고 있는가.
법의 지배란 법이 권력 위에 존재하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 법에 의한 지배는 권력이 법을 도구로 삼아 자신의 목적을 관철하는 체제를 뜻한다. 최근 제기된 ‘선택적 정의’, ‘속도전 재판’, ‘절차적 정당성 훼손’ 논란은 법이 공정한 기준이 아니라 권력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낳고 있다. 이 의심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국민 다수가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법의 위기는 판결이 아니라 신뢰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이 지점에서 반드시 짚어야 할 개념이 있다. 사법부의 독립과 재판의 독립은 같지 않다. 사법부의 독립은 입법부와 행정부로부터의 간섭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지만, 그것이 곧 책임으로부터의 면제는 아니다. 사법부는 국민과 헌법 앞에서 견제와 감시를 받아야 한다. 반면 재판의 독립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개별 판사는 어떤 권력, 어떤 조직, 어떤 여론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문제는 이 두 개념이 의도적으로 혼용될 때 발생한다. ‘사법부 독립’을 내세워 비판을 차단하려는 순간, 독립은 권력이 되고 만다. 반대로 재판에 정치가 개입하는 순간, 정의는 사라진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한 위기는 바로 이 경계의 붕괴다. 사법부는 외부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권력 집중과 불투명한 절차를 통해 또 다른 권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논란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재판의 속도와 방향, 사건 처리의 선택성과 절차적 논란은 단순한 법률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법부가 스스로 법의 지배를 지키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던진다. 법이 특정 시점에, 특정 대상에게, 특정 방식으로만 작동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법의 지배가 아니다. 그것은 법의 형식을 빌린 권력 행사일 뿐이다.
진정한 법의 지배는 독립과 책임이 함께 작동할 때 가능하다. 사법부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지만, 국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리고 재판은 어떤 권력에도 종속되지 않아야 한다. 독립은 면책이 아니라,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을 요구하는 이름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법부를 공격하거나 방어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법의 형식을 넘어 법의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다. 법은 누구의 편도 아니어야 한다. 오직 정의의 편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정의는 권력자가 아니라 시민의 신뢰 속에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