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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깨어있는시민과동행 사무총장 |
“진정한 도시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의 체취로 이루어져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의 이 말은 도시의 본질을 정확히 드러낸다.
그렇다면 질문은 분명해진다. 지금 평택은 무엇으로 만들어지고 있는가. 건물인가, 아니면 사람의 삶인가. 속도인가, 아니면 방향인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그 방향을 누가 결정하고 있는가.
선거는 늘 익숙한 얼굴들 사이에서 치러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 판을 바꾸는 인물은 따로 있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어느 순간 흐름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사람, 우리는 그를 ‘다크호스(a dark horse)’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지금 평택에서 진짜 물어야 할 것은 누가 더 익숙한가가 아니다. 누가 이 도시의 방향을 감당할 수 있는가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Plato)은 말했다. “정치에 무관심한 대가는 더 나쁜 사람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정치에 등을 돌리는 순간, 공동체의 방향은 결국 더 무능하거나 더 위험한 손에 넘어간다. 이 말은 단지 고전의 한 구절이 아니다. 지금 이 선거의 본질을 꿰뚫는 경고다. 지금은 단순한 경쟁의 시간이 아니다. 평택의 다음 30년을 결정하는 선택의 시간이다.
그렇다면 기준은 분명해야 한다. 도시를 말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도시를 만들어 본 사람인가. 정책을 설명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결과로 증명한 사람인가.
좋은 리더십은 거대한 구호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언제나 시민의 삶에서 시작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불편한 지점, 가장 먼저 손이 가야 할 곳에서 출발한다. 쓰레기 문제, 주차 문제, 통학로 안전, 생활 속 불편 같은 사안은 작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도시는 바로 이런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시민의 신뢰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실제로 평택 정치에서 주목해야 할 기준도 여기에 있다. 시민의 작은 불편을 외면하지 않고 해결해 본 경험, 생활 행정을 통해 시민이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어낸 경험은 결코 가볍지 않다. 방치된 공간을 생활 공간으로 바꾸고, 수거 방식과 주차 정책을 바꿔 불편을 줄이며, 시민의 안전을 위해 현장에 직접 개입하는 행정은 도시를 추상적으로 다루는 태도와는 다르다. 도시는 결국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의 삶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 행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평택이 지금 요구하는 리더십은 문제 해결형 행정가를 넘어, 도시의 방향을 읽고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고덕국제신도시와 산업 구조의 연결, 성장과 정주 환경의 균형, 장기 표류 사업의 정상화 가능성, 산업과 교육, 교통과 정주를 함께 보는 시야는 단순한 행정 처리 능력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것은 도시의 구조를 이해하고 미래의 흐름을 내다보는 능력이다.
여기서 다시 질문해야 한다. 비전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다. 비전은 말로도 만들 수 있다. 슬로건도, 공약도, 선언도 누구나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도시는 말로 바뀌지 않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행력이다. 위기 상황에서 결과를 만들어본 경험, 복잡한 정책을 실제 행정 성과로 전환해본 경험, 갈등과 재난의 순간에 현장을 지휘해본 경험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평택은 산업도시이면서도 생활도시이고, 성장도시이면서도 정주도시여야 한다. 이 두 과제를 함께 풀 수 있는 리더십은 단순히 화려한 언어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민의 삶을 바꿔본 경험, 도시의 미래를 설계할 전략, 위기 속에서 결과를 만들어낸 실행력, 그리고 중앙정부와 정책적으로 협력하며 도시의 자원을 끌어올 수 있는 연결 능력까지 함께 갖춘 인물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최원용 예비후보의 경우 생활 민원 해결 경험과 도시 개발·산업 구조 조정 경험, 위기 대응 사례가 함께 축적되어 있다는 점에서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에 대한 선호보다, 유권자가 이러한 기준 위에서 각 후보를 냉정하게 비교하고 판단하는 일이다.
결국 이번 선택은 사람 하나를 고르는 일이 아니다. 평택의 다음 30년, 그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다. 그래서 시민은 더 익숙한 이름이 아니라, 누가 이 도시의 미래를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