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건 칼럼 연재 ⑤] 예수의 이웃사랑, 왜 다시 해석해야 하는가? 이웃사랑은 왜 갈등을 감수해야 하는가 ― 책임 윤리는 왜 불편하고, 왜 환영받지 못하는가
    •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사람들은 정의를 말하면 불편해한다. 그 불편함은 우연이 아니다. 정의는 언제나 누군가의 손실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건 정치적인 문제다.” “이념을 들고 나오지 말라.” “갈등을 만들지 말라.” 그러나 이 말들은 갈등을 줄이기 위한 말이 아니다. 대개는 이미 존재하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언어다.

      연대보증 문제를 다시 보자. 누군가는 말한다. “계약은 자발적이었다.” “법적으로 문제없다.” “시장 원리다.”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은 중요한 사실을 가린다. 누군가는 17년째 이자를 갚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의는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법이 아니라, 계약이 아니라, 그 결과가 누구의 삶 위에 남았는가를 묻는 순간이다.

      미국 신학자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는 윤리를 이렇게 정의하지 않는다. “옳은 행동을 선택하는 것.” 그는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무엇에 응답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다. 왜냐하면 이 질문은 우리를 중립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때문이다.

      연대보증 구조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위치 중 하나에 선다.
       • 이익을 얻은 사람 
       • 비용을 떠안은 사람 
       •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

      문제는 마지막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중립처럼 보인다. 그러나 니버의 윤리에서 중립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주어진 책임 배치를 그대로 인정하는 선택이다.

      그래서 정의를 말하는 순간 갈등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정의는 묻기 때문이다.
       • 왜 이 위험은 개인에게 전가되었는가 
       • 왜 국가는 개입하지 않았는가 
       • 왜 금융은 보호받고, 이웃은 방치되었는가

      이 질문은 불편하다. 그러나 이 질문을 피하는 순간 사회는 조용해지지 않는다. 조용해지는 것은 단지 피해자의 목소리뿐이다.

      신앙은 종종 평화를 말한다. 그러나 그 평화는 때로 갈등을 제거하는 평화가 아니라 갈등을 숨기는 평화가 된다. 니버는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진짜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정의가 작동하는 상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다시 예수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누가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 이 질문은 감정의 질문이 아니다. 위험을 누가 나누었는가, 비용을 누가 감당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연대보증 문제에서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 누가 위험을 넘겼는가 
       • 누가 그것을 떠안았는가 
       • 우리는 그 구조를 그대로 둘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더 이상 신앙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는 선택이다.

      그래서 이웃사랑은 더 이상 편안한 윤리가 될 수 없다. 이웃사랑은
       • 누군가에게 비용을 요구하고 
       • 누군가의 이익을 제한하며 
       • 공동체 전체의 책임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갈등이 문제인가, 
         아니면 불의한 구조가 문제인가.

      연대보증 문제에 참여하는 것은 단순한 정책 지지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배치를 바꾸는 선택이며, 이웃사랑을 현실로 번역하는 행동이다.

      니버의 윤리는 우리를 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그는 묻는다. “당신은 그 구조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더 이상 중립은 없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웃사랑은 갈등을 피하는 윤리가 아니라 불의한 책임 구조를 바꾸는 윤리다.

      ▶ 다음 회차 예고 (6) 에필로그

      이웃사랑은 책임이다 — 신앙은 왜 더 이상 중립일 수 없는가

      마지막 회차에서는
       • 선의에서 책임으로 
       • 자비에서 정의로 
       • 신앙에서 제도로

      이 이동이 왜 불가피한지 정리한다. 이웃사랑은 더 이상 쉽게 말할 수 있는 언어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시 시작해야 하는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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