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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7회)----------
우리의 선교여행도 막바지에 접어든 느낌. 일행은 오늘 비자와라를 떠나 데칸고원으로 향한다. 마드라스(Madras)에서 ‘첸나이(Chennai)’로 명칭을 바꾼 거대도시를 향해 가려는 참이었다. 기도를 마치고 출발하며 시계를 보니 막 저녁 7시를 넘어가는 시점. 교통이 워낙 막히다 보니 시간 절약을 위해 주로 야간을 이용해 이동계획을 짰기 때문이다. 연약한 육신인지라 힘에 부치는 현상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며칠째 에너지원이 될 만한 탄수화물을 도통 섭취하지 못한 탓에 이제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 버렸다. 이따금 얻어먹는 것이라곤 몇 알의 과일뿐이니 이만큼 버티는 것도 전적인 주님의 은혜였다. 포도는 알갱이가 잘아 껍질째 먹을 수 있었고, 바나나는 짤막하지만 맛은 더 있었으며, 오렌지는 인도산 과실 가운데 가장 맛이 좋았다. ‘워터멜론(water-melon)’이라고 부르는 수박은 국산품과 거의 비슷했다. 문제는 재배기술이 뒤떨어져 수량이 귀한 까닭에 한결같이 비싸다는 점. 어찌 됐든 나로 인해 예정한 계획에 차질이 생겨서는 아니 될 말이다. “주님, 부디 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하옵소서!”
차 안에 한가득 자스민[茉莉] 향이 감돌았다. 꽃 이름은 뜻 모를 ‘말레부불루’.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또한 감미로웠다. 시내 한복판에는 LG를 홍보하는 입간판이 있었다. 여기서는 LG가 삼성보다 우위를 점한 상태. 어제 들렀던 시장엘 다시 가고 있었다. 선물용 컵에 기념 글자를 새겨 넣느라 맡겨놓았던 선물 꾸러미를 찾기 위하여. 얼마를 지체한 뒤 외곽으로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탔다. 현지인의 말로는 최고급 간선도로. 차선이 명확하고 점점이 야광판까지 박아 구색을 갖추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균형 감각이 떨어졌다. 우스운 광경은 중간 분리대에 놓여야 할 시멘트 블록이 길 가장자리에 있는가 하면, 어느 지점에 가서는 정반대로 바뀌어 도로 경계석의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거였다. 그나저나 서둘러 달려가는 마당에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쿠마의 조카)이 몸살이 나서 더는 함께 갈 수가 없게 되었다. 첸나이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를 대동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 것. 타밀어를 구사하는 똑똑한 청년으로 도합 4개 국어를 소화한다는 영특한 학생과의 동행이 무산돼 다들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두 눈에 총기가 돌고 매사를 신속 정확히 처리하던데 건강이 허락지 않으니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오 주님, 벌써 나흘째 먹지 못하고 견디는 저에게 건강의 축복을 내려주옵소서!” 작별 인사를 나눈 후 한동안 말들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시계 바늘은 밤 11시경. 조금은 이른(?) 시각이다 싶을 때 저녁 식사를 위해 길섶 가게에 들렀다. 물론 나는 도무지 동참할 수 없었다. 입맛이란 게 하루아침에 금방 돌변하는 요물이 아니어서다. 저만치 비껴있는 사이 난간 위에 놓인 TV 화면에 눈길이 갔다. 쿠마 목사는 이를 가리켜 악하고 더러운 마귀의 통로라면서 아예 시청하지 않는다고 했다. 인도의 가수들이 출연한 오락프로그램. 아닌 게 아니라 현란한 몸짓이 음란에 가까웠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볼 때 그 지향점이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인 건 확연하다. 문화라는 첨단무기를 통해 침투하는 마귀의 전략이 졸개인 귀신이 곡할 만큼 치밀하고 첨예함을 느낀다. 연예인의 이상야릇한 움직임은 우리와 대동소이. 다만 의상이며 백댄서의 세련미는 물론 무대장치나 조명만은 어림없었다.
이 선생이 유리상자 안의 과자를 권했다. 하지만 너무 달아 목젖에 걸렸다. 판매대를 훑어보다 한 귀퉁이에서 팔고 있는 날계란을 발견했다. 사모가 말없이 네 개를 사더니 가스 불에 익기를 기다렸다. 어휴, 15분[一寸光陰]이 이렇게 길 줄이야. 은근한 눈총들. 차에 올라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못마땅한 듯이 넘겨주는 걸 받아 혼자 먹기가 미안했다. 네 개 중 둘은 둘에게 나눠주고 나머지 두 개로 요기했다. 이곳 달걀은 삶은 다음 굳이 찬물에 담그지 않아도 곧잘 벗겨진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 와중에 문득 아재 개그 하나가 떠올랐다. 보릿고개 시절 어느 만원 열차에서 오가던 사제 간의 대담이었단다. 앞자리에 앉은 제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사부님께 여쭈었다. “선생님, 산다는 게 뭘까요?” “음, 삶은 계란일세!” 그러고 보니 바로 이 순간 내 자신을 ‘삶은 계란’에 내맡기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렇더라도 그 옛날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참혹한 삼순구식(三旬九食)보다야 형편이 폈다며 스스로를 위무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