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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현종호 |
(제10회)-1
강화도에서 석 달을 먹고 마시며 죽 때리고, 동작 나루에서도 사흘을 또 먹고 마셔대며 흥청망청하던 명의 군사들을 태우고 명나라 수군 함대가 마침내 한강에서 발진하였다는 소문이 이순신의 마지막 통제영 고금도에 이미 퍼져 있었다.
명의 수군들이 강화도 인근 백성들에게 끼친 피해를 통제사 이순신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조선을 왜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내려왔다는 명의 군사들은 가난하고 주릴 대로 주린 백성들의 곡식과 불쌍한 백성들의 물고기마저도 빼앗아 먹었을 뿐만 아니라, 강화도에 거주하는 현지인들을 시도 때도 없이 붙잡아 노예 부리듯 노역(奴役)시키는가 하면, 주리고 가난한 백성의 딸들을 숙영지로 끌고 들어가 내키는 대로 겁탈하였다는 소문도 그에게 종종 들려왔었다. 수륙 합동작전으로 병력을 집중하여 적의 기지를 하나씩 깨부수면 될 것을 유정의 육군은 적의 육상기지를 공격해 그를 돕긴커녕 검단산성에 주둔하는 수준에만 만족하며 아까운 군량만 허비하는 꼴이었다.
사천성 1만2천 병력을 인솔해 압록강을 건너와 도망하는 적들을 그저 멀리서 밀며 교전 한번 없이 순천까지 무탈하게 내려온 유정이었다. 유정은 검단산성에 포진해 고니시 유키나가의 순천기지 후방을 압박하고는 있었으나 석 달 동안을 검단산성에 머물며 적의 육상 전진거점을 공격하긴커녕 주둔하는 것만으로 전쟁을 꾸역꾸역 수행하고 있으니, 이순신은 간담이 타들어 가고 복장이 터질밖에.
명량에서 육군이 이기고 직산에서도 이김으로써 적들의 북진을 어쨌든 저지하긴 하였으나 유정은 남의 나라 전쟁에서 피를 흘리며 싸울 생각이 아예 없는 자였고, 유정의 육군병력만으로는 섬마다 포진해 눌어붙은 요망한 왜군들을 소탕할 길이 없었다. 도원수 권율의 수군 지원 요청으로 명나라가 마침내 본격적으로 합세하는데, 그때 명의 수군을 이끌고 조선반도에 사상 처음으로 내려온 수군 총사령관이 바로 명나라 도독 진린이었다. 명군 최초의 수군 지원을 조정이 이젠 오히려 걱정하고 있으니, 반길 수만은 없는 상국의 은총인 거였다. 조정은 그런 명나라 군대의 군량을 강화도에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실어다 주었고, 정3품 접반사(接伴使)를 채용하면서까지 명 장수들의 주색을 뒷바라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동작 나루에선 조정의 신료들이 술과 안주를 나르고, 한양의 미기(美妓)들은 줄곧 술을 따라가며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쓴다는 소문도 그에게 여러 번 들려왔었다.
“조선의 장수 중에 군율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내가 직접 혼쭐낼 것이오.”
그래도 한 나라의 국왕인 임금 앞에서 이런 말을 거리낌 없이 불쑥 내지를 정도로 진린은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자였다.
중국 광동성에서 태어나 1562년, 군에 입대하여 소수민족의 반란을 수차례 진압함으로써 혁혁한 전공을 세운 무장이긴 하나 고약한 성질머리와 각종 비리와 뇌물수수로 한시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탓에 명나라에서도 늘 따돌려지던 명나라 장수 진린. 군사를 일으킨 반란군을 여러 번 막아내 천자를 지켜낸 공은 컸으나 탐욕스럽고 난폭하고 까탈스럽기 짝이 없는 데다 병사들을 함부로 다루며 장수들과 융화하지 못하던 그는 명의 천자에겐 어쩌면 계륵(鷄肋)과도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陳璘)이 고금도로 내려와 이순신과 합세하게 되었다. 진린은 그러나 성격이 포악한 데다 남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라 모두가 그를 꺼렸다. 그가 출발할 때, 임금은 청파(지금의 용산) 들판까지 나와 그를 전송하셨다.
진린의 군사가 고을 수령들을 함부로 때리고 욕하며, 찰방(察訪, 종6품의 관원) 이상규의 목을 새끼줄로 묶어 끌고 다녀서 피투성이를 만드는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통역관에게 그를 풀어달라고 통사정했으나 그들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류성룡의 『징비록』)”
명나라 수군 총사령관 진린(陳璘)에게 조정이 바짝 긴장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통제사 이순신은 잘 알고 있던 터였으나 류성룡은 불안감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조선 장수들을 함부로 대하는 진린의 포악한 성질머리로 인해 그가 곧 곤욕을 치르게 될 테고, 대쪽같은 이순신과 포악한 진린이 서로 멱살잡이하지 않을 거란 법도 없으니, 조선이 결국 전쟁에서 패할 거라며 류성룡마저 연달아 혀를 차댈 정도였다.
안하무인으로 포악한 진린이 그의 군권마저 빼앗아 횡포를 부릴 것이 뻔한데, 무슨 수로 진린의 무례와 무도(無道)를 이순신의 군사들이 감당하겠느냐며 대신들 또한 탄식만 할 뿐이었다. 비에 곤룡포를 적셔가면서 진린의 함대를 동작 나루에서 울며 맞았던 임금이, 명나라 도독을 잘 받들며 어떻게든 구워삶으라는 전교를 서둘러 내려보낼 만큼 조정 역시도 바짝 긴장하고 있던 터였다. 무술년 6월에, 두 차례씩이나 다례(茶禮)와 주례(酒醴)를 베풀고, 동작 나루에서 또 울먹이면서 고금도로 향하는 진린을 임금은 친히 전송하였다.
그런 도독 진린이 500여 척의 함대를 이끌고 수군 5천여 명과 더불어 지금 고금도 덕동 수영으로 내려오고 있다니, 갑호비상에 버금가는 심각한 비상이 수영 전체에 걸릴밖에.
통제사 종사관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졸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병졸들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아가며 해산물을 바쁘게 준비하였고, 사슴과 멧돼지 등 살아 있는 짐승들을 닥치는 대로 사냥하며 술잔치를 성대히 준비하느라 장수들마저도 시종 정신이 없었다.
종사관 정경달이 슬금슬금 이순신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류성룡 대감도 그렇고, 전하께서도 일이 잘못될까 걱정이 크옵니다, 나으리…….”
“정말 그런가……?!”
“예…… 나으리…….”
이순신이 허공을 바라보며 씁쓸히 웃었다. 백성들의 억울한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직을 보존하려 애쓰는 조정의 눈물겨운 노력이 그는 가엾었다. 비록 외세를 끌어들여서라도 곳곳에 눌어붙은 적들을 박멸하는 것만이 이 나라 조선이 궁핍과 남루와 도탄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이순신 역시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이순신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쓸데없는 걱정일랑 붙들어 매라 그러게. 자네 또한 대의를 망각하지 말아야 할 걸세. 알겠는가?”
“예…… 나으리……”
“…….”
“…….”
【편집부 해설|제10회-1】
명량 이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제10회-1은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동맹과 권력 사이의 긴장을 전면에 드러낸다. 조선을 돕기 위해 온 명나라 군대는 기대와 달리 보호자가 아니라 또 다른 부담이었다.
명군은 백성의 식량을 빼앗고 노역을 강요하며 민간을 유린했다. 조선을 구하러 온 군대가 조선 백성을 또다시 고통에 빠뜨린 것이다.
이 장면은 단순한 군율 문제가 아니다. 전쟁 속 약소국이 겪는 구조적 현실이다.
이순신이 처한 상황은 더욱 복합적이다. 적(왜군)은 바다에 있고 아군(명군)은 통제 불가능하며 조정은 외세에 의존하고 있다. 즉, 그는 지금 적·동맹·권력 사이에서 동시에 균형을 잡아야 하는 삼중의 전쟁 속에 놓여 있다.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의 등장은 이 긴장을 극대화한다. 진린은 전투 경험은 뛰어나지만 성격은 포악하고 권력 의식이 강한 인물이다.
조선 조정이 그를 두려워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쟁을 도우러 온 존재가 언제든 지배자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은 이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의 태도는 단호하다. “대의를 잊지 말라.” 이 한 문장은 그가 선택한 전략을 보여준다.
• 감정 대신 목적
• 분노 대신 질서
• 불신 속에서도 협력 유지
즉, 그는 전쟁을 “승리”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균형”의 문제로 보고 있다.
제10회-1은 묻는다. 전쟁은 누구를 위해, 누구의 방식으로 수행되는가. 그리고 그 답은 단순하지 않다. 이순신은 싸우면서도 동시에 견디고 있었다.
【본문 어구 해설|제10회-1】
복장 腹臟 Internal Organs / Guts :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 극도의 분노·답답함을 표현할 때 쓰는 말.
상국 上國 Suzerain State / Superior Nation : 외교적으로 자신보다 위에 있는 나라. 조선에겐 명나라를 의미하며, 형식상 ‘존중’이지만 실제로는 종속적 관계를 내포한다.
접반사 接伴使 Diplomatic Reception Officer : 외국 사신이나 군대를 맞이하고 접대하는 관직. 여기서는 명나라 군대를 위해 조선이 부담한 외교·접대 창구.
미기 美妓 Courtesan / Entertainer : 아름다운 기생. 단순한 예능인이 아니라 외교·접대·정보 수집에 활용되던 존재.
계륵 鷄肋 Chicken Rib / Something of Little Value but Hard to Discard : 버리기엔 아깝고 취하기엔 쓸모가 적은 것. 진린은 명나라 입장에서 쓸모는 있지만 부담스러운 인물이라는 의미.
안하무인 眼下無人 Arrogant / Overbearing : 눈 아래 사람이 없다는 뜻. 타인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태도.
무례 無禮 Rude / Discourteous : 예의가 없음.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
무도 無道 Tyrannical / Immoral Rule : 도리가 없음. 권력이나 힘을 함부로 쓰는 상태. 단순한 무례를 넘어 정당성 자체가 없는 행위를 의미.
곤룡포 袞龍袍 Royal Robe : 임금이 입는 옷. 왕권과 국가 권위를 상징. 비를 맞으며 입었다는 표현은 왕의 굴욕적 상황을 강조한다.
다례 茶禮 Tea Ceremony : 차를 대접하는 의식. 예를 갖춘 공식 접대.
주례 酒醴 Wine Ceremony / Banquet Ritual : 술을 대접하는 의식. 외교적 환대의 방식. 명나라 장수를 위해 반복적으로 시행된 과도한 접대 정치를 보여준다.
종사관 從事官 Staff Officer / Aide : 지휘관을 보좌하는 실무 책임자. 행정·군사·연락을 담당하는 핵심 참모.
남루 襤褸 Ragged / Wretched Condition : 옷이 해지고 누더기가 된 상태. 단순한 가난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피폐한 현실을 상징.
【현대적 의미】 제10회-1은 오늘 우리에게 네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1. 도움은 언제든 ‘지배’로 바뀔 수 있다
명나라는 조선을 돕기 위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군대는 민간을 침해했고 권력은 통제를 벗어났으며 도움은 부담으로 변했다. 외부의 지원은 항상 조건을 동반한다.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 한, 도움은 언제든 지배로 전환될 수 있다.
2. 가장 어려운 리더십은 ‘적이 아닌 아군을 다루는 것’이다
이순신이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존재는 왜군이 아니라 명군과 조정이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쟁자는 상대적으로 단순하다. 하지만 내부와 협력 관계는 훨씬 복잡하다. 진짜 리더십은 적을 이기는 능력이 아니라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능력이다.
3. 위기의 시대일수록 ‘대의’가 흔들리기 쉽다
조정은 외세에 의존하고 과도한 접대를 하고 내부 기준을 흔들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는 원칙보다 생존이 우선되기 쉽다. 하지만 이순신은 다르게 말한다. “대의를 잊지 말라.” 이 말은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전략적 기준이다.
4. 국가의 위기는 전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명량에서 이겼지만 조선은 여전히 위기다. 경제는 무너졌고 정치는 흔들렸으며 외교는 종속적이다. 진짜 위기는 전쟁이 끝난 뒤 시작된다. 승리 이후의 체계가 없으면 그 승리는 오래 가지 않는다.
제10회-1은 전쟁의 본질을 이렇게 다시 정의한다. 전쟁은 단순한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권력·외교·내부 질서가 얽힌 총체적 충돌이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