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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6회)----------
주변을 돌아볼 겸 오토릭샤에 몸을 실었다. 세 바퀴인 만큼 퍽 위험한 교통수단. 두루 구경하다가 물고기를 사 오기로 했다. 그런데 넘치는 강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어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바닥에 이끼가 껴서 꽤 미끄러운 상태. 강물 가운데 늘어선 상인들은 손님을 부드럽게 이끌었다. 인도인들은 대체로 매매하는 과정에서 서로에게 눈을 흘기거나 무례를 범하는 법이 없었다. 고객에게 부담을 주는 과잉 친절이나 과다한 호객행위를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 쇼핑에 하등 부담이 없다는 건 중요한 지점.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한 17세 소녀에게서 큰 생선 2마리를 샀다. 푸드덕거리는 놈을 산 채로 들어보니 퍽 무거웠다. 둔탁한 식칼로 단숨에 비늘을 벗기고 내장을 꺼내 토막을 치는 솜씨가 어른 같았다. 그 나이에 벌써 삶의 한복판에 뛰어들다니. 짐을 들고 언덕배기를 오르면서 이 강 이름이 ‘크리스티나리버’인 걸 알았다. 역시나 힌두 여신이었다. 나온 김에 모터보트를 타보기로 했다. 이 선생의 주선이었다. 넷이서 시원스레 내달리며 보니 강줄기 한가운데 갈대 무성한 섬이 있었다. 지금까지 본 인도의 풍광 중 단연 으뜸이었는데 곧 개발에 들어간다고 했다.
왠지 오늘 일정은 한결 여유롭다며 담소를 나누기 무섭게 쿠마 목사가 로만 가톨릭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현장에 가보자며 길을 나섰다. 마리아는 여기서도 여신의 위상을 공고히 다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교황 밑의 까마득한 수하 한 사람이 이곳을 다녀간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고, 그가 나타나자 다들 감격에 겨운 나머지 그 발등상 아래 엎드린 채 앞다퉈 입을 맞추었단다. 그것도 돈을 내고 예약하지 않으면 아예 접근조차 가로막았다는 후문. 나는 그에게 비록 어눌했지만, “Mary is only, God's using instrument(Mary is only instrument used by God)”라고 전했다. 문제는 신부와 목사를 동일시하는 바람에 피해가 만만찮다는 하소연. 돌길을 돌아서 나오는 길에 뭉실뭉실 밟히는 것들이 있었다. 끔찍하게도 현대판 면죄부. 비싸게 티켓을 사서 사제에게 머리를 깎으면 지은 죄가 사해진다고 사기를 치는 현장이었다. 쿠마는 손을 벌리고 따라오는 어린이들을 매몰차게 나무라며 돌려보냈다. 동전 한 닢을 내밀어 보았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조금은 갸우뚱했다.
AM 11시가 넘어 다시 오토릭샤를 타고 쇼핑센터로 갔다. 가게 앞에는 시커멓게 썩은 물이 그냥 흘러갔다. 가능한 한 많은 걸 선물하고 싶어하는 쿠마 목사 부부와 한사코 사양하려는 우리 셋 사이에서 잠시 아름다운 실랑이가 일었다. 저렴한 가격에 인디안 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컵을 골라보자는 게 우리의 바람. 구석구석 돌아다닌 끝에 어렵사리 결정하고 나니 흐뭇하고 홀가분했다. 풍요로운 감성으로 창출한 조촐한 부요(富饒)랄까. 중간에 백화점과 포목점을 드나들며 재밌는 구경을 했다. 당연히 우리네 화려한 상점을 연상한다면 커다란 오산. 엘리베이터 같은 현대적 이기 대신 비좁고 가파른 계단을 능숙하게 오르내리는 현지인들의 발걸음을 색다른 즐거움으로 감각해야 한다. 여러 가게를 들락날락하며 상인들에게 자주 듣다 보니 그제야 나는 비로소 현지어 하나를 완전히 익힐 수 있었다. 텔루구어로 ‘감사합니다’를 “완다날루우!”라고들 했다. 길바닥에서 롤러스케이트 타는 아이들. 고르지 못한 시장터가 좀 걱정이긴 했으나 워낙 놀이기구가 전무한 형편인지라 속으로 응원이라도 보내주고픈 심정이었다.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타고 오던 오토릭샤가 엔진 고장을 일으켰다. 기사는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자 중간 요금에 대한 정산도 없이 냉큼 다른 차를 부르라고 종용했다. 한참을 기다려 집에 도착하니 쿠마는 대뜸 우리를 옥상으로 이끌었다. 그것도 밤새 시끄럽게 오르내리던 초기형 엘리베이터(1층에서 곧장 4층으로만 운행)를 타고서. 전망이 아주 좋았다. 주위 주택가를 한눈에 굽어보며 선선한 바람을 쐬고 있노라니 팜트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깡마른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슬아슬한 곡예. 현재 200여 개의 직업군 카스트 가운데 주스(일종의 알코올)를 채취하는 ‘고다스(gowdas)’였다. 그러니까 인도의 신분체계를 구분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단지 네 개가 아닌 터. 바로 거기에 카스트제도의 본질이 숨어있었다. 즉 지구상에 존재하는 신분제란 죄다 지배와 피지배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생겨난다는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