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종호 연재소설 (제10회)-2】 노량에 피는 꽃
    • 소설가 현종호
      소설가 현종호

      (제10회)-2

        진린의 함대가 고금도에 당도하기에 앞서 명의 수군 선발대가 먼저 찾아온다. 먼저 온 명나라 장수가 통제영에 뜬금없는 소식을 전하니 통제사 이순신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휘둥그러진 눈으로 이순신이 대뜸 물었다.
        “히데요시가 이질에 걸려서 한참을 앓다가 결국은 죽었단 말인가……?!”
        “…….”
        “…….”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며칠을 시름시름 앓더니 급기야 모든 접견을 마다하고 끙끙 앓다가 절명시(絶命詩) 하나 달랑 남긴 채, 조선 백성들의 철천지원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끝내 죽은 것이었다.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는 인생이여
      오사카의 영화 또한
      꿈속의 꿈이런가





        통제사 이순신은 고금도 선착장까지 친히 나아가 진린을 맞는다. 고금도에서 가까운 섬 묘도(猫島, 고양이 섬)를 명 수군의 숙영지로 이순신이 선뜻 내주니, 전망이 꽤 좋은 섬을 선물로 받았다며 진린이 크게 기뻐한다. 그러나 이순신이 선뜻 내준 명의 숙영지 묘도는 명나라 수군의 일거수일투족을 조선 수군이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자리한 섬이었다.
        명나라 장수들은 물론이요 진린이 이끌고 내려온 5천여 명의 명나라 수군까지도 배불리 한껏 먹게 음식을 장만해 이순신이 또한 극진히 대접하니,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정성으로 잘 차려낸 산해진미를 난생처음으로 맛본다며 진린이 또 크게 기뻐한다.
        “공의 소문을 내 익히 들었소만, 과연 공은 구멍 난 하늘을 메우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살필 수 있는 인재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소. 고맙소, 통제!”
        “도독께서 만족해하시니 나 역시 고맙기 그지없소이다.”
        “공에게 조선의 이 바다는 너무 좁은 게 아니오?”
        “…….”
        “왜 이 좁은 나라에서 늘 억울한 모함에 휘말려가며 살아가시오. 나와 같이 대국으로 갑시다. 공의 재주와 위용이 나는 무척 아깝소. 공은 대국의 오랑캐(여진족)들을 충분히 물리칠 만한 인재요. 전쟁이 끝나고 나면 나와 함께 대국으로 갑시다. 천자께 내가 공에 대해 잘 말씀드리리다.”
        “무슨…… 과찬의 말씀을…….”
        “…….”
        “…….


        명나라 수군 5천여 명이 고금도에 합류한 사실을 적들도 잘 알고 있던 터였다. 아직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하였을 연합함대의 전투력도 떠볼 겸 적들은 마침내 침략을 감행하는데, 정보력 좋은 이순신이 그들의 계략을 모르고 있었을 리 만무했다. 옥포와 명량에서 굴욕을 맛보았던 도도 다카도라와 안골포에서 역시 혼쭐났던 가토 요시아키 등 해전에 능한 왜장들이 100여 척의 함대와 1만6천여 명의 병력을 이끌고 갑자기 고금도로 쳐들어온다는 정보였다.
        이순신이 진린에게 물었다.
        ”먼 길을 오시느라 여독도 안 풀리셨을 터인데, 도독은 그냥 지켜보기만 하시고 이번에 우리 조선 수군이 단독으로 나가서 싸우는 건 어떤지요, 도독?”
        “…….”
        “…….”


        이순신이 빌붙지 않을 뜻을 표명하자 진린이 크게 기뻐하였다. 조선 수군의 단독출정은 조선의 바닷길이 어떤지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진린에겐 너무도 반가운 제안이었다.
        무술년 1598년 7월 19일, 도도 다카도라와 가토 요시아키가 이끄는 왜 수군이 기습해오자 절이도와 북서쪽 금당도 사이 해역에서 조선 수군과 마침내 해전이 펼쳐진다. 그들의 싸움을 멀찍이 금당도 안전해역에서 관망만 하던 진린은 이순신이 변화무쌍하게 펼쳐 보이는 전술에 경악을 금하지 못한다. 절이도에서의 승리로 이순신은 이제 고흥반도까지 제해권을 다시 장악할 수 있게 되고, 여수반도를 끼고 펼쳐진 순천만과 남해도의 광양만만 앞으로 더 확보하면 빼앗겼던 전라도를 드디어 온전히 회복하게 되는 셈이었다.
        이순신이 바다에 깔아놓은 첩보망에 왜군의 움직임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포착되었다. 망군(望軍)과 척후를 통해 적함 100여 척이 금당도(金塘島)로 침범해온다는 정보를 듣고 나서 이순신은 길목인 절이도(折爾島)에 미리 복병을 심어둔다. 거금도를 돌아서 소록도 쪽으로 쳐들어오는 적을 이순신은 재기불능으로 만든다. 왜 수군 100여 척을 상대로 집중포격을 가하여 해전의 달인이라는 적들을 반격 불가의 궁지로 몰아넣고, 녹도만호 송여종과도 협공하여 적선 50여 척을 분파하고 그는 왜군 수천 명을 마침내 수장시킨다.
        전투 중이라 급한 나머지 송여종은 적의 머리 71급만을 취하는 데 그쳐야 했다. 진린은 금당도 안전해역에 멀찍이 떨어져서 조선 수군의 그런 활약상을 그저 관망만 할 뿐이었다.

        군사들은 ‘어란정’에서 목을 축이고 ‘세병관’에서 병기를 씻었다. 세병관(洗兵館)에서, 적의 피로 얼룩진 칼이나 예기(銳器)를 물로 씻어내며 떠벌이듯 한 가지씩 무용담을 늘어놓는 병졸들의 얼굴엔 달빛 아래서도 희색이 완연했다. 절이도(고흥군 거금도)에서 한나절 내내 싸워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또 이긴 것이다. 단연 압승이었다.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군사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한참을 들떠 있었다.
        통제사 이순신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자네가 활약해준 덕분에 우리가 또 이길 수 있었네. 수고 많았네, 송여종 장군!”
        녹도만호 송여종(宋汝悰)이 얼굴을 붉혔다. 병졸들이 고리짝을 들어서 줄지어 저벅저벅 창고로 옮기고 있었다. 주릴 대로 주린 병졸들의 얼굴엔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리짝 틈새로 죽은 자의 머리카락이 삐져나와 있었다. 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군사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끈적끈적한 물이 바닥에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상당량의 수급이 고리짝 안에 들어가 있을 것이었다. 녹도만호 송여종이 갑자기 우쭐해져선 흥분을 달래며 겨우 답했다.
        “싸움이 우선인 까닭에 적의 머리는 71급밖에 못 가져왔습니다, 나으리…….”
        “그만하면 됐네. 적의 머리는 이제 충분하니 수급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내가 저번에도 그랬잖은가.”
        “적의 수급은 그러나 곧 전과가 아니겠습니까, 나으리…….”
        “내가 뒤에서 자네들 모두를 다 지켜보고 있다니까. 수급이 적더라도 싸움에서 이기면 우린 그만인 걸세. 자네들의 전과를 소상히 적어서 내가 수시로 올려보내고 있네. 신경 쓰지 마시게.”
        “예…… 나으리…….”
        “…….”
        “…….”

        명나라 수군 도독 진린은 두주불사(斗酒不辭)로 독주를 한껏 즐기는 사내였다. 폭음에, 폭식에, 폭언을 일삼는 명나라 사내 진린. 그는 무지막지하게도 먹어대고 마셔댔다.

      【편집부 해설|제10회-2】전쟁은 끝나가고 있었지만, 권력의 게임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제10회-2는 단순한 해전 서사가 아니다. 이 장면은 전쟁의 막바지에서 드러나는 외교, 권력, 인간 심리의 복합 구조를 정면으로 보여준다.

      가장 먼저 등장하는 사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이다. 전쟁의 최상위 결정자가 사라졌다는 것은 전쟁의 종결을 의미할 수도 있는 중대한 사건이다. 그러나 이순신은 흔들리지 않는다.
         적의 죽음보다 중요한 것은 전쟁이 어떻게 끝나는가이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장면에서 이순신은 명나라 도독 진린을 맞이한다. 이 장면은 겉으로는 ‘환대’지만, 실제로는 정교하게 설계된 통제다.
        • 숙영지 제공 → 감시 가능한 위치
        • 식사 제공 → 관계의 주도권 확보
        • 예우 → 그러나 종속 거부
      묘도는 선물이 아니라 전략적 배치였다.
        이순신은 동맹을 믿지 않았다. 대신 동맹을 관리했다.

      진린의 제안은 더욱 노골적이다. “대국으로 오라.” 이 말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다. 그 안에는 명확한 의미가 담겨 있다.
        • 인재 흡수
        • 조선 내부 권력 약화
        • 명 중심 질서 강화
      즉, 이 제안은 전쟁 이후 권력 재편의 신호다. 하지만 이순신은 거절한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싸움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나라의 존재를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절이도 해전은 이 관계를 완전히 뒤집는다.
        • 이순신: 단독 출전
        • 진린: 관망
        • 결과: 압도적 승리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다. 누가 ‘주도권’을 쥐었는가다. 이후 진린의 태도는 완전히 바뀐다.
        • 존칭 사용 (“노야”, “이야”)
        • 행동의 격하 (앞서지 않음)
        • 의사결정 의존
      군사적 권위가 외교적 권위를 압도한 순간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장면이 있다. 진린이 부하를 죽이려 할 때 이순신은 ‘수급’을 건네며 그를 달랜다. 이것은 타협이 아니다. 폭력을 멈추기 위해 상대의 욕망을 읽고 활용한 것이다. 이순신은 칼이 아니라 심리와 구조로 상황을 제어한다.

      제10회-2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의 승패는 전장에서 결정되지만, 질서는 인간과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본문 어구 해설|제10회-2】

      고금도 古今島 Gogeumdo Island : 전남 강진 앞바다의 섬. 물길이 복잡하고 방어에 유리해 이순신의 마지막 통제영이 위치한 전략 거점.

      절명시 絶命詩 Death Poem : 죽음을 앞두고 남기는 시. 삶과 권력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문학적 표현.

      망군 望軍 Lookout Soldier / Observer : 적의 동태를 살피는 감시 병력. 해상에서는 조기 경보 역할 수행.

      척후 斥候 Scout / Reconnaissance : 적의 위치와 움직임을 탐지하는 정찰 활동 또는 병사.

      분파 分破 Break Apart / Split : 적의 전열을 나누어 붕괴시키는 전술.집중 공격으로 전투력을 분산시킴.

      어란정 於蘭亭 Eoran Pavilion : 해남·진도 일대의 지명적 공간. 수군이 휴식하거나 병력을 재정비하던 장소.

      세병관 洗兵館 Pavilion for Washing Weapons : 전투 후 무기를 씻는 장소. 승리 후 정리와 재정비의 상징적 공간.

      예기 銳器 Sharp Weapon : 날카로운 무기. 칼·창 등 살상용 병기.

      고리짝 (固里-) Straw Basket / Container : 물건이나 수급을 담는 바구니. 전쟁에서는 전과를 담는 도구로 사용됨.

      수급 首級 Enemy Head / War Trophy : 적의 머리. 전과를 증명하는 기준. 조선 군제에서 공적 평가의 핵심 지표.

      두주불사 斗酒不辭 Heavy Drinker / Never Refuses Wine : 한 말의 술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 과도한 음주와 방종한 성격을 상징.

      【현대적 의미】 제10회-2는 오늘 우리에게 네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1. 동맹은 믿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이순신은 명나라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척하지도 않는다. 현실의 협력 관계는
        • 감정이 아니라 이해관계로 움직이며
        • 신뢰보다 구조로 유지된다
      성숙한 리더는 협력하면서도 통제한다

      2. 진짜 힘은 ‘보이지 않는 설계’에서 나온다
      묘도 배치, 단독 출전, 전투 유도, 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힘(권력, 규모)이 아니라 판을 설계하는 능력이 진짜 힘이다

      3. 외세는 도움인 동시에 위험이다
      명나라는 조선을 돕지만 동시에 위협이 된다.
      강한 동맹은 언제든 지배 구조로 변할 수 있다
      (Suzerain State, 종주국 구조의 위험성)

      4. 승리는 ‘전투’가 아니라 ‘질서’에서 완성된다
      절이도 해전의 승리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관계 변화다.
        • 조직에서도
        • 정치에서도
        • 국제 관계에서도
      진짜 승리는 싸움 이후의 구조를 누가 장악하느냐에 달려 있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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