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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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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 40분, 함께 모여 기도를 드린 다음 어두컴컴한 여관을 벗어났다. 영국인들이 17C 초부터 300년 남짓 머물다 물러간 곳답게 그럴싸한 말 마차가 다녔다. 식민 통치 기간 국왕 부처가 사용하던 물건들. 그 옆구리에 커튼 경의 애마상이 우뚝 서 있었다. 순간 뭔가 의아하다고 생각했다. 그 몸서리쳐질 식민지 시절의 잔해 같은 물건들을 저토록 정성껏 보관하고 있다니, 어쩌면 이들의 의식 속에는 대영제국의 영화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건 아닐까? 오랜 찬반논란 끝이긴 했으나 예술미 넘치던 조선총독부 청사마저 폐기 처분할 유물로 취급하여 와장창 허물어버린 전례가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치욕스럽든 영예롭든 역사란 과거의 한 장으로 보존하고 관리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필자의 사적(史的) 인식이다. 말하자면 앞으로는 어떤 사안이든지 간에 가치 중립적 처결을 중시하려는 노력들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그런 각도에서 보니 후발국인 인도가 OECD 가입국인 한국보다 몇 걸음 앞선 측면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분야가 기초과학이라고 알고 있다.
거리 곳곳에서 현대 차들이 눈에 띄었다. 곧바로 시티뱅크에 바렛 석유회사 간판이 동공을 지배했다. 앞으로 인도 대륙에 불어 닥칠 급속한 산업화의 전조였다. 작년 세계은행의 통계를 보아도 중국 다음가는 고성장 국가가 인도였다. 더욱이 4/4분기의 실적만 보자면 당당히 수위. 그렇지만 기대와 우려가 반반씩이다. 우리도 한때는 연간 7~8%대 이상의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시기가 있었다. 한국의 오늘을 보건대 고용 없는 산업구조가 굳어지면서 때 이른 조로현상이 경제 전반을 짓누르고 있지 않은가. 그럴수록 내실을 다지고 속 실력을 쌓아야 살아남는다. 기초가 단단할 때라야 전도가 창창한 젊은이들이 거리로 내몰리지 않을 테니까. 인도의 경우 수학과목을 선호하고 IIT(인도공과대학) 출신들이 실리콘밸리에서 맹위를 떨치는 일도 부러운 지점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지 오늘에 안주하고 자만한다면 가까운 미래에 어쭙잖은 애늙은이로 전락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한국의 경우 대학교육까지 마친 고등실업자가 해마다 누적되어 가는 현실이 몹시 안타까워 보태는 충고다.
번잡한 첸나이 시가를 헤맨 지도 벌써 한 시간이나 흘렀다. 우리 목적지는 도마 순교지. 열두 제자의 행적 중 유독 뭇 세인의 관심을 끄는 이가 디두모라 하는 토마스였다. 그가 누구인가? 무슨 일로 그리 바빴는지는 모를 일이나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함께 있지도 않았고, 주님을 본 다른 제자들에게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하여 스스로 믿음이 없는 자였음을 드러냈던 장본인이 아닌가. 하지만 도마는 여드레가 지나 다시 살아 돌아오신 예수님을 뵙고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회개했고,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시는 주의 말씀(요한복음 20:24-29)을 마음 깊이 새긴 뒤에 인도라는 영적 척지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한 광신적 힌두교도에 의해 살갗이 벗겨진 채 장렬히 전사했던 것이다. 이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산이 이 고을을 맴돌고 있는 이른바 구비(口碑)요 전승(傳承)이라니 내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각 우리는 피정의 집에 도착했다. 수많은 가지를 거느린 거목의 갈라진 모습이 한껏 이채로웠다. 금방 내려앉을 것 같이 낡은 지붕을 잔뜩 뒤덮은 채로 허름한 벽을 휘감고 붙어있는 새카만 줄기들을 보노라니 마치 인도인들의 복잡다단한 영혼을 대변하는 듯했다. 공들여 고지에 오르니 예상한 그대로였다. 그곳은 이미 천주교에 의해 장악되어 성지라는 이름으로 다듬어져 있었다. 도마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기도했던 처소를 성역화했음은 물론 딸린 터에 번듯한 학교까지 세워 우상숭배를 조직적으로 전수한 지 오래였다. 쿠마 목사의 지적처럼 ‘Roman Catholic Business’의 일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그리스도의 형상 앞에서 손에 손을 맞잡고 기도를 올렸다. 잠시 뒤 쿠마 목사가 퍽 상기된 얼굴로 바로 오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년 전, 그는 여기 이 자리에 엎드려 간절히 간구했단다. “주님, 1년 뒤 당신께서 보내신 후원자들과 함께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도록 인도하옵소서”라고. 참으로 뜻깊고도 가슴 시린 현장이었다. 그러나 정작 도마의 무덤은 딴 데 있었다. 이왕지사 여기까지 왔으니 쌓인 궁금증일랑 풀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