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건 칼럼 연재 ⑥ 에필로그] 예수의 이웃사랑, 왜 다시 해석해야 하는가? 이웃사랑은 책임이다 — 신앙은 왜 더 이상 중립일 수 없는가
    •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이 연재는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이웃사랑은 여전히 가능한가. 우리는 오랫동안 이웃사랑을 말해 왔다. 돕는 마음, 나누는 손길, 불쌍히 여기는 감정. 그러나 그 말이 반복될수록 이웃은 사라지고 책임은 흐려졌다.

      연대보증이라는 구조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보았다. 누군가는 돈을 쓰지 않았지만 평생 빚을 갚으며 살아가고 있었고, 그 삶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결과였다. 그 앞에서 우리는 말해 왔다. “안타깝다.” “어쩔 수 없다.” “법적으로는 문제없다.” 그러나 이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구조 앞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었는가.

      이 연재는 계속해서 질문을 바꾸어 왔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에 응답할 것인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가. 누가 불쌍한가가 아니라 누가 비용을 떠안고 있는가. 이 질문을 피하는 순간 신앙은 더 이상 신앙이 아니다.

      예수는 말하지 않았다. “착하게 살아라.” 그는 물었다. “누가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느냐.” 이 질문은 감정의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위험을 누가 나누었는가, 책임을 누가 감당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우리는 이제 알게 되었다. 이웃사랑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문제다. 이웃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구조를 바꾸는 질문이다. 이웃사랑은 개인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의 결정이다.

      그래서 이웃사랑은 더 이상 편안한 언어로 남을 수 없다. 그것은 누군가의 이익을 제한하고, 누군가의 책임을 다시 묻고, 공동체 전체의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갈등이 문제가 아니라 불의한 구조가 문제라는 것을.

      이 연재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에 도달한다. 연대보증 문제 앞에서 침묵하는 신앙은 중립이 아니라 책임의 회피였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 문제에만 머물지 않는다.

      신앙이 책임을 묻지 않을 때 국가는 책임에서 물러나고, 금융은 중립을 가장하며 위험을 개인에게 넘기고, 사회는 조용해진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서 사라지는 것은 갈등이 아니라 이웃의 삶이다.

      이제 질문은 더 이상 남지 않는다. 남는 것은 선택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웃사랑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이웃사랑을 책임으로 살아낼 것인가.

      이 연재는 이웃사랑을 더 어렵게 만들기 위해 쓰인 글이 아니다. 오히려 이웃사랑을 다시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해석이다. 선의에서 책임으로, 자비에서 정의로, 신앙에서 제도로. 이 이동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이웃사랑은 계속 말해질 것이고 이웃은 계속 구조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만 남긴다. 이웃사랑은 선택이 아니다. 이웃사랑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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