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인도’ 비전트립(12)】 곤고한 한밤중의 여정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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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터미널이라야 비좁은 통로에 설치한 점방과 노천에 놓인 몇 개 의자를 제외하곤 별다른 편의시설이랄 게 없었다. 여독이 잔뜩 쌓여 몹시 피곤한 데다 속까지 진정되지 않아 음식일랑 아예 쳐다보기도 싫었다. 이렇듯 곤고한 나그네의 세세한 속사정도 모른 채 자국의 식단을 거부하는 외국인을 앞에 두고 노골적으로 경멸하는 듯한 작태를 보인 종업원의 무례와 무지는 또 무어람? 이제 더 이상 써먹을 에너지조차 죄다 소진한 듯 그들을 나무랄 기운마저 남아 있지 않았다. 이런 경우에는 냉큼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 그저 언짢은 마음에 있는 힘을 다해 벌떡 일어나 식당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바로 그때가 온몸이 완전히 고장이 났음을 감지한 시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올 게 오고 말았다며 체념은 했으나 남은 사흘을 버티자니 아무래도 역부족일 것 같아 잔뜩 긴장이 되었다.

        에라 모르겠다, 흙바닥에 철버덕 주저앉아 쉬고 있는 사이 따갑게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한껏 애달파 뵈는 인디아의 한 임신부가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물론 무슨 군 뜻이나 적의는 없으나 타인을 무안할 만큼 빤히 쳐다보는 이네들의 습성에 미처 적응하지 못한 탓이거니와 의자가 거의 없다 보니 차가운 날바닥에서 부랑자들이 떼 지어 잠을 청하는 품도 낯설었다.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공항에서도, 시방 목격하고 있는 터미널에도, 길가 어디서나 즐비한 노숙자들. 일 년 내내 비가 오지 않는 데다가 온도마저 별 변화가 없어 딱히 정해진 곳 없이 안팎이 지내기에 알맞은 여건이었다. 앞날이 없는 저들의 인생보다 궁상맞은 삶이 또 있을까. 그나마 이처럼 영혼마저 피폐해져 있는 모습을 보면서 잠시 정신적 무지와 육신의 굶주림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뭉뚱그려 헤아려 보았다. 기도가 절로 나오는 상황.

        “자애로운 주님이시여, 복음을 모른 채 헤매고 살아가는 불쌍한 영혼들을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인도의 천지간에 머문 짧은 시간을 통해 실로 수많은 것들을 사려해 알게 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은총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기실 천축국(天竺國)이야말로 뭇 여행가들이 자기 생애를 매듭지으려는 뜻에서 맨 나중에 가서야 택하는 코스라 하거늘, 나는 오히려 맨 처음 해외 나들이에서 열악하기 짝이 없는 구석구석을 샅샅이 훑어가고 있으니 주안에서 누리는 홍복이 못내 은혜롭고 송구스러울 수밖에. 잠시 몸살 기운이 전신에 퍼져 뼈마디가 쑤시던 증세를 잊을 만큼 영육 간에 상처를 떠안고 있었다.

        밤 10시 45분, 우리는 비자와라로 향했다. 모두들 심신이 노곤한 상태. 그래서인지 오늘따라 이상하리만치 운행 속도가 더뎠다. 아무래도 재빨리 돌아가 쉬고픈 마음 밭 탓일 터. 이런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자동차는 벌써 두 번째 시동을 껐다(인도에서는 기름이 귀해 신호등 앞에서도 자주 이러함). 또 느리고 기다란 열차 통과하기를 기다리는 건널목. 너무나 오래 걸렸다. 멈춰선 지 벌써 20분을 넘겼다. 인도인의 몸놀림 가운데 가장 준비성 있는 대처가 차단기 미리 내리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 차례에 걸쳐 지나가는 열차 칸에 끼어 타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매를 거쳐야 한단다. 짐작건대 각종 테러에 대비해 대형 사고를 사전에 막아보자는 취지에서 취하는 조치라고는 하나 그런다고 해서 테러를 미연에 방지할 거 같아 보이지는 않다는 게 필자의 판단력. 어느새 시계는 막 새날이 되었음을 알렸다. 오늘로써 현지답사 6일째. 자정을 넘어가면서 인도 비전트립의 대역사도 서서히 막을 내리려는 시점이었다.

        이윽고 통제가 풀리고 한 시간 반 남짓 달려왔을 때 기사는 길가에 차를 대고 잠을 청했다. 졸리면 자는 일이 최우선. 다 같이 웅크린 채 쪽잠을 잤다. 무겁게 눈을 뜨니 이른 1시 45분. 곧장 출발하여 내리 두어 시간을 내달렸다 싶을 즈음 다시금 잠을 청했다. 깨어나니 에누리 없는 4시 45분 00초. 그때였다. 그간 들었던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힌두교 박수무당이 아침 예불 드리는 소리. 곡조는 꼭 여러 교회에서 듣던 가락 그대로였다. 마치 상투적인 불자의 공염불처럼 감지되는 가사가 흡사 우리말처럼 “알아주거나, 알아주거나”인 양 들렸다. 이걸 연거푸 몇 번이고 되뇌었는데 마귀 루시퍼의 졸개인 잡신들에게 자기를 알아달라고 애원하는 청원인지, 아니면 알아주거나 말거나 자신들이 섬기는 귀신을 기쁘게 하면 고만이라는 넋두리인지는 모를 일이나, 결과적으로 허공에 떠돌다 사라지고 말 공허한 외침을 무려 한 시간이 넘도록 진저리나게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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