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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현종호 |
(제11회)
이번에도 관아 대청에 상을 길게 놓고 양측이 마주 보며 앉아서 먹고 마셨다. 조선의 장수들에게 술잔을 돌리며 술자리를 주도하던 진린이 취하여 갑자기 안색을 바꾸더니 곁에 앉은 유격장 계금(季金)을 마치 잡아먹을 듯이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묻는 것이었다.
“너희 놈들은 바다에서 무엇을 하였느냐?”
“…….”
“……”
진린이 얼굴을 씰룩거리며 다시 다그쳐 물었다.
“너희 놈들은 바다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는 말이냐?”
“…….”
“너희들이 내 첫 출정을 생각하는 마음이 이리도 모자란단 말이냐!”
“…….”
“한심한 놈들!”
진린은 버럭 화를 내며 그 자리에서 술상을 엎어버린다.
통제사 이순신의 상기된 얼굴에 산나물과 고깃점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순신은 그때에서야 두어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콧잔등에 미나리와 시금치를 덕지덕지 붙인 채 쓰게 웃으며 이순신이 말했다.
“도독께서 장거리포로 엄호해준 덕분에 우리가 적들을 가뿐히 제압할 수 있었잖소. 내가 어찌 그런 도독과 공을 다툴 수 있겠소이까.”
이순신은 점잖게 웃으며 식식거리는 진린을 한 번 더 달랬다. 받은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나서 애써 웃어 보이며 적의 수급 40통을 진린의 행정관에게 당장 보내라고 이순신은 부하 군관 송여종에게 지시하였다. 그리고 진린에게 한마디로 일축했다.
“앞으로도 왜놈들의 수급은 전부 도독의 것이외다.”
“…….”
“…….”
자신이 바다에서 목숨 걸고 적과 싸워 애써 얻은 적의 수급 모두를 명나라 도독 놈에게 거저 주다시피 하다니, 송여종은 불만이 꽤 많았다. 홧김에 혼자서 독주를 연거푸 퍼부어대는 부하 군관 송여종을 흘금거리며 그러나 이순신은 속삭이듯 조용히 말한다.
“왜놈들의 수급은 썩은 고깃덩이와 다를 게 없는 것이네.”
유격장 계금(季金)이 곁에서 머리통을 탐내는 눈치였다. 명나라 유격장을 힐끗거리며 이순신은 송여종에게 추가로 지시한다.
“계금 장군에게도 왜놈 머리 다섯 통을 갖다 주게. 멀리 가야 할 물건이니 소금을 아주 많이 쳐야 할 걸세.”
그러자 계금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명의 장수 계금이 붉게 단 얼굴로 흥분을 달래며 말했다.
“공에 대한 소문은 내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소만…… 공은 조선을 위기에서 구할 인재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소…….”
“…….”
“…….”
긴장감 속에서 과음하고 너무 과로한 탓일까, 얼근히 취해서 내아 숙소로 돌아온 그 날 밤에 이순신은 또 코피를 쏟고, 토하고, 식은땀을 흘리며 곽란으로 밤새 괴로워한다.
요 위에 엎드린 채 잠시 졸았던 것 같은데, 빠르고 강한 무엇이 스쳐 간 느낌에 그는 퍼뜩 눈을 뜨고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바짝 긴장하며 숙소 밖으로 뛰쳐나가 달아난 얼굴 없는 그림자를 찾았다. 얼굴 없는 그림자는 그러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누군가 잠시 머물다 간 듯 방 밖에는 이상야릇한 냄새가 아물거렸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휘영청 달이 밝았다. 달빛에 촉촉이 젖은 땀수건 한 장이 툇마루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었다. 언젠가 한 번 맡아본 듯한, 한참 그리워하던 여인의 야릇한 분 냄새가 콧속으로 은은하게 스며들었다.
이튿날 새벽부터 이순신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각기 다른 내용의 장계 두 통을 써서 조정으로 올려보낸다. 명나라 도독이 하도 졸라대는 바람에 적의 수급 40통을 빼앗기다시피 진린에게 주었다는 내용의 장계와 진린이 장거리포로 엄호해준 덕분에 조선 수군이 절이도에서 이윽고 대승을 거두었다는 상반된 내용의 장계였다. 진린의 요청에 따라 거짓으로 이순신이 써낸 장계가 그러나 명나라 감찰관에게 들통나게 되는 날엔 황상(皇上)을 기만한 죄로 진린은 이제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 대의를 생각해 고분고분하기만 하던 이순신이 졸지에 진린의 목숨줄을 거머쥐게 된 셈이었다.
다음 날, 통제사 이순신은 명나라 사선과 호선보다 성능 등 모든 면에서 월등히 앞서는 판옥선을 도독 진린에게 주고, 부총관 등자룡에게도 선물로 선뜻 내준다. 판옥선을 선물로 받고 나더니, 자기 인생 최고의 선물이라며 등자룡(鄧子龍, 덩샤오핑의 선조)은 또 크게 기뻐하였다.
적의 머리 40급을 선뜻 건넨 그 날 이후로 도독 진린은 이순신을 ‘노야(老爺)’ 혹은 ‘이야(李爺)’라는 극존칭으로 불러가며 신임하는가 하면, 술자리에 매번 그를 불러 앉히고, 모든 일에 있어 이순신과 상의하며, 둘이서 어디를 가든 진린이 앞서 걷는 일이 절대 없을 정도로 조선의 장군 이순신을 끔찍이 아꼈다. 전시 재상 류성룡에 따르면, 그의 가마가 한 번을 앞서가는 일이 없을 정도로 진린은 이순신 장군을 소국의 하급지휘관이 아닌 전우로서 극진히 모시고 배려하였다.
적의 편인지 아군의 편인지 식별할 수 없는 적의 팽팽한 바다는 시시각각으로 색깔을 바꾸었으나 백성들의 논과 밭은 늘 푸르렀다. 풍년이 점쳐지는 것이다. 군량의 걱정에서 드디어 벗어나는가 싶었다. 눈앞에 쫙 펼쳐지는 고금도 너른 경작지에서 힘껏 자라는 저 백성들의 작물을 그러나 적들이 차지할 거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순신의 불안과 걱정은 커져만 간다.
무술년(1598년) 11월 8일
진린의 도독부를 찾아가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종일 술잔을 기울이다가 밤이 늦어서야 돌아왔다. 다음날, 도독이 만나기를 청하여 즉시 나갔더니, 순천의 적들이 10일경에 철군할 거라는 기별이 뭍으로부터 왔다며 적의 퇴로를 즉각 차단하자고 했다.
무술년 11월 9일
도독과 같이 움직여 백서량(지금의 여천군 남면)에 당도하여 진을 쳤다.
무술년 11월 10일
좌수영 앞바다에 진을 쳤다.
무술년 11월 13일
적선 10여 척이 장도(지금의 광양)에 형체를 드러내었으므로 도독과 약속하여 추격하였더니 적선은 움츠러들어 종일 나오지 않았다. 도독과 함께 장도로 돌아와 진을 쳤다.
눈앞이 희미해지는 듯싶더니 앞서간 아들이 어른거렸다. 또 그 환영이었다. 이순신은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왜 또 나타나 아비를 힘들게 하는 것이냐!”
“…….”
“…….”
시퍼런 비늘을 무겁게 뒤채며 바다는 오늘도 출렁거리고, 하늘에선 하얀 눈송이들이 잇달아 떨어졌다. 먹이를 찾아 갈매기들은 흰색으로 빽빽해진 하늘을 아직도 헤매고, 출렁이는 바다가 따뜻할 리 없건만 물 위에 내려앉자마자 눈송이들은 흔적도 없이 녹아서 사라졌다. 그의 복잡한 머릿속에 스며든 아픈 기억들까지도 눈송이처럼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길 이순신은 간절히 원했다.
【편집부 해설|제11회】 이순신은 이제 전쟁이 아니라 ‘권력의 바다’를 건너고 있다
제11회는 전투의 연장이 아니다. 이 회차는 명량과 절이도 승리 이후, 이순신이 맞닥뜨린 더 거대한 전장 — 동맹, 권력, 그리고 인간 내부의 균열을 다룬다.
술자리에서 폭발한 진린의 분노는 단순한 취기가 아니다. 전공에 대한 집착, 체면 유지, 권력 과시. 이 장면은 명나라 수군의 본질을 드러낸다.그들은 조선을 돕는 존재가 아니라 전쟁의 성과를 가져가려는 또 다른 권력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의 대응은 전혀 다르다. 그는 맞서 싸우지 않는다. 대신 한 걸음 물러난다. “수급은 모두 도독의 것입니다.” 이 말은 굴복이 아니다.
• 수급 = 보여지는 공
• 전장 통제 = 실제 권력
이순신은 이미 알고 있었다. “겉의 공은 줘도, 실질은 내가 쥔다.”
이 회차의 핵심은 장계 두 통이다. 하나는 사실, 하나는 전략. 이순신은 동시에 두 개의 현실을 만든다. 그리고 그 결과는 치명적이다. 진린은 이제 이순신이 만든 기록 속에 갇힌 존재가 된다. 만약 진실이 드러나면, 진린은 황제를 기만한 죄로 죽는다. 즉, 칼이 아니라 정보로 상대의 목숨을 쥔 것이다
이어지는 판옥선 선물 또한 결정적이다. 군사 기술 제공, 신뢰 구축, 동시에 종속 유도. 결과는 분명하다. 진린의 변화: “노야”, “이야” 극존칭, 앞서 걷지 않음, 모든 일 협의. 외세의 지휘관이 조선 장군에게 주도권을 넘긴 순간이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이순신은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곽란, 과로환영(죽은 아들). 이 장면은 이 회차의 가장 깊은 층이다. 국가는 버티고 있었지만 인간 이순신은 무너지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은 상징적이다. 풍년이 드는 들판, 여전히 불안한 바다, 사라지지 않는 기억. 전쟁은 끝나가지만 불안과 책임은 끝나지 않는다.
제11회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승리는 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전쟁 이후의 질서를 누가 지배하느냐에 달려 있다
【본문 어구 해설|제11회】
대청 大廳 Main Hall / Audience Hall : 관청의 중심 공간으로, 공적 의례·회의·접대가 이루어지는 권력의 상징적 장소. 외교와 정치가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이다.
유격장 遊擊將 Field Commander : 기동부대를 이끄는 실전 지휘관으로, 전술 수행의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도독 都督 Naval Commander / Admiral : 명나라 수군 최고 지휘관 직위. 군사권과 외교권을 동시에 행사하는 권력자다.
수급 首級 Enemy Head (War Trophy) : 전공을 증명하는 물리적 증거이자 보상 체계의 기준. 그러나 이순신은 이를 ‘전략적 교환 수단’으로 활용한다.
내아 內衙 Inner Residence (Official Quarters) : 관료의 사적 거주 공간으로, 공적 권력과 개인의 삶이 교차하는 장소. 외부의 긴장과 내부의 고통이 드러나는 영역이다.
곽란 霍亂 Cholera / Acute Illness : 급성 소화기 질환을 의미하며, 전시 환경의 피로·스트레스·영양 부족이 결합된 신체 붕괴의 징후다.
장계 狀啓 Official Report to the King : 군사·행정 상황을 보고하는 공식 문서로, 사실 전달을 넘어 정치적 해석과 권력 조정의 도구로 작동한다.
황상 皇上 Emperor : 명나라 최고 권력자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조선이 속한 국제 질서(조공체계)의 최상위 권위를 의미한다.
사선 私船 Private Ship : 국가 소유가 아닌 민간 선박으로, 전시에는 보급·수송·군사 지원에 활용되는 전략 자산이다.
호선 胡船 Foreign-style Ship / Barbarian Ship : 중국·왜 등 외래 기술로 제작된 선박을 지칭하며, 해상 전력 비교에서 기술 격차를 드러내는 용어다.
판옥선 板屋船 Korean Warship (Panokseon) : 다층 구조와 안정성을 갖춘 조선 수군의 핵심 전투함으로, 화포 운용과 방어에 최적화된 해상 플랫폼이다.
노야 老爺 Honorable Sir / Master : 중국식 극존칭으로, 단순한 존대가 아니라 권력 인정과 복종의 표현이다. 진린이 이순신에게 권위를 인정했음을 보여준다.
이야 李爺 Lord Yi : 성(李)에 존칭을 붙인 표현으로, 개인을 넘어 가문과 권위를 함께 인정하는 호칭이다.
백서량 白西梁 Baekseoryang Strait : 여수·광양 인근 해역으로, 순천 왜군의 퇴로를 차단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장도 長島 Jangdo Island : 광양만 인근 섬으로, 해상 이동과 추격 작전의 거점 역할을 하는 전술 지점이다.
좌수영 左水營 Left Naval Headquarters : 조선 수군의 지역별 지휘 체계 중 하나로, 해역 방어와 작전 수행의 중심 기지다.
절이도 折爾島 Jeolido Island : 고흥 거금도 인근 해역으로, 이순신이 복병과 기동전술로 승리를 이끌어낸 전략적 전장이다.
【현대적 의미】 제11회는 오늘 우리에게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동맹은 협력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다. 명나라는 동맹이지만 동시에 위험이다. 국제 관계, 정치 연합, 조직 협력의 동맹은 신뢰로 유지되지 않는다. 구조와 힘으로 유지된다.
2. 진짜 권력은 ‘보이지 않는 설계’에서 나온다. 이순신은 싸움보다 판을 설계한다.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사람이 승리한다
3. 기록과 정보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장계 두 통이 전장을 바꾼다. 보고, 데이터, 서사. 누가 기록을 쓰느냐가 역사를 결정한다.
4. 리더십은 감정을 통제하는 능력이다.
• 진린 → 분노
• 이순신 → 절제
리더는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순신은 적을 이긴 것이 아니라 동맹과 권력, 그리고 질서까지 통제한 전략가였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