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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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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고속버스에 승차한 경험은 아주 특별했다. 대형 리무진이었으나 우리네 시외버스, 아니 시내버스보다 한참이나 뒤처진 질감. 외형도 많이 낡았을뿐더러 차량을 지탱하는 부품들은 거지반 딱딱한 쇠붙이에다가 창문엔 유리조차 없었다. 마구 달리다가 밤공기가 차가워져서야 승객들은 하나둘 차단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손수 내려보려고 시도했으나 손끝에 익지가 않아서인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다행히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의 도움을 받고서야 어렵사리 끌어내린 주름막. 뒷문은 아예 폐쇄한 채 다녔다. 거리를 둘러보니 앞 유리창이 깨진 채로 굴러다니는 차는 흔했고, 양옆 백미러나 전조등이 깨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달렸다. 재밌는 건 요금을 받는 차장이 따로 고용돼 있다는 사실. 참 인도의 모든 공용버스는 차표 제도나 정해진 시간표가 없었다. 하루 24시간을 쉬지 않고 운행하는 상시체제. 아마도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무이한 경우는 아닐까 갸우뚱했다.
문제는 울퉁불퉁한 노면을 과속으로 달리다 보니 차체가 극심하게 덜컹댄다는 사실. 게다가 엑셀레이터 밟는 소리가 하도 커서 고막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모르긴 해도 소음방지기 자체가 없는 듯. 의자에 앉아 있어도 전신이 요동치는 바람에 도무지 그대로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며칠간 전혀 영양 공급을 못한 데다가 여기저기서 고음의 경적소리들까지 겹쳐서 들려 심신이 심히 괴로웠다. 그렇다고 냉큼 앞으로 자리를 이동할 수도 없었다. 귀가 찢어져라 틀어 놓은 생음악 소리 탓이었다. 인내심이라면 일가견이 있는 나로서도 이제 속이 울렁거려 오기 시작했다. 과속도 과속이려니와 심한 요철이 주된 원인. 나는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더 이상 가누기조차 버거운 몸뚱어리를 안간힘을 다해 공중으로 솟구치지 않게 하려고 양쪽 손잡이를 꽉 틀어쥐었다.
그때 곧잘 달리는 차가 갑자기 급정거했다. 당연지사 펑크가 났단다. 곧장 수리에 들어갔지만 모두 느긋한 표정들. 내에겐 그것이 도리어 전화위복이었다. 일단 밖으로 기어 나와 노천에다 소변을 보면서 뒤틀린 내장을 다스리는 게 급선무. “오 주님, 감사합니다. 아픈 몸이 속히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그 짬을 놓칠세라 남궁 선생은 한 남자 고교생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이방인을 위한 열성적인 전도자. 부러운 건 어쨌거나 영어가 통한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의 언어가 짧은 연고로 입을 굳게 닫아걸고 사는 딱한 형편이었으니 말이다. 내심 의사소통의 부자유함으로 인해 풍성한 여정의 축적이 어려운 건 커다란 핸디캡. 겨우 옆에 앉은 깡마른 청년에게 웃으며 자일리톨 껌 한 개를 건네면서도 서툰 영어의 답답함을 가슴 깊이 느껴보는 일이 고작이었다.
이러구러 한 시간 남짓이 흘렀을 무렵 연신 담배를 태우던 기사는 신경질적으로 꽁초를 던져버리고 올라타더니 힘차게 시동을 걸었다. 버스는 금방 중간역에 정차. 앳된 소년들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발 빠르게 상행위를 펼쳤다. 안쓰럽기 그지없는 장면의 연속. 앵벌이나 아니면 좋으련만 열심일수록 그럴 확률이 높단다. 하지만 그런 모습 속에서도 어딘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구석이 있었다. 인도 일반사회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강매나 강요를 만날 수 없다는 점. 후진국치고는 상당히 합리적인 관습으로 굳어진 지점이었다. 그로부터 한 시간쯤 더 달려와서야 약속 장소인 ‘델루’에 도착했다. 거기서 헤어졌던 일행과 합류하기로 했단다. 비록 무전기같이 생긴 투박스러운 핸드폰일망정 서로들 연락을 취할 수 있다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문득 아까 사고와 관련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일처리하던 쿠마 목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극히 세속적인 태도였다. 그로 인해 그간의 신뢰감에 적잖이 금이 간 터. 대단히 독단적이고 세상 논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냥 반면교사로 삼고자 했지만 연약한 인간인지라 왠지 께름칙한 기분만은 금세 떨쳐내기 어려웠다. 가장 실망스런 태도는 그가 토사구팽 사고의 일단을 보였다는 대목이었다. 기사가 일으킨 사고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병가지상사가 아닌가? 그런데 대뜸 교통경찰에게 뇌물을 건네고 즉시 해당 기사를 해고해 버리는 발상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 고마운 일은 어쨌거나 다 죽어가는 마당에 새로운 지프차가 구급차 노릇을 감당하게 된 것. 대합실에 운전대를 빼앗긴 기사가 우두커니 앉아 있어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시무룩할 뿐 별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