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인도’ 비전트립(13)】 창궐한 우상숭배 현장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13)----------


        힌두교(Hinduism)는 광의로는 인도에서 발생한 모든 종교 형태를 통틀어 가리키는 전문용어. 중앙집권적인 권위나 위계 조직에 의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정한 교종이나 교리가 없다고 알려졌지만, 실은 경전인 ‘탄트라’(Tantra, ‘날실’이라는 뜻)를 통하여 이른바 삼신일체를 주장한다. 창조자인 ‘브라마’, 보존자인 ‘비시누’, 파괴자인 ‘시바’가 그네들. 가증스럽게도 삼위일체 논리를 어설피 표절은 했으되 엉뚱하게 파괴자가 있다니 해괴한 귀신의 괴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한 몸뚱어리에 박힌 머리가 셋이라는데 그야말로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이란 게 무색할 지경. 말하자면 스스로 해괴망측한 괴물임을 실토한 셈이다. 그러고 보니 시바가 파괴의 당사자였다. 우매하기 짝이 없는 우상 놀음일랑 들여다볼수록 구슬픈 헛웃음이 나올 정도. 심히 애처롭고 안타까운들 온전한 영(靈)이 아니니 그 혼(魂)인들 어쩌지 못하는 형국이로다.

        우상숭배에 찌든 백성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조상 대대로 자기 스스로를 우상시하며 산다는 것이다. 곧 겁도 없이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에서 보듯 신앙이 아닌 탐심에 따라 언행과 심사를 제멋대로 구현하며 살아간다는 특징이 있다. 애당초 길을 잘못 들어 일생을 바쳐가며 진리가 아닌 걸 붙들고 씨름하다가 종국엔 멸망을 자초하는 자들을 보면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 성도가 된 사실 자체가 기적 중의 기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아 아는 참이랄까. 그런데 인도인들에게 베다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단순히 찬가, 기도문, 제례에 대한 종교적 의식뿐만 아니라 출생, 결혼, 장례 등 인간의 삶과 계절제와 관련된 의례 및 제식을 총망라하기에 고대 인도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상을 보여준다는 게 요지.

        이른 6시가 넘어 출발한 차내에서 찬란한 아침 햇살을 맞았다. 가다가 어느 동네 입구에서 축제 인파와 마주쳤다. 글자 그대로 야단법석. 온 마을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온갖 악기를 동원해 한껏 들떠 있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문제는 음산하게 그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악령의 기류였다. 역시나 창궐한 우상숭배의 현장. 갖가지 음침한 형상들을 앞세우고 엎드려 빌고 절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님, 죽어가는 영혼들이 벌이는 사망의 광란을 어찌하오리까? 저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죄악을 미처 알지도 못하나이다.” 그렇게 차량을 가로막은 채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듯 울려 퍼진 장송곡이 얼마큼 잦아들 즈음 시야를 가리던 자욱한 안개가 걷히고 버스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뒤 고을을 몇 겹의 능선들이 보듬어 아우르는 그림. 하지만 우리네 동양화 병풍을 감상하듯 즐길 만한 산수화는 아니었다. 황량한 대지에 간간이 박힌 열대 수목 행렬. 그래도 이 남국의 정취를 흐물흐물하나마 자아낼 존재는 몇 그루 야자수(palm)뿐이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마른하늘엔 미처 숨지 못한 별들이 총총했다.

        이어서 펼쳐진 푸르른 초원. 안내자에 따르면 이것이 원래 인도의 산야였단다. 아닌 게 아니라 간간이 박혀있는 민가들이 하나둘 보이는가 싶더니 널따란 들판이 나왔고, 들판이 끝났다 싶을 때 메마른 황무지가 이어졌다. 이를테면 풍요와 빈곤을 오가는 반복적 사물의 군상(群像). 한 가지 우리네와 다른 면이 있다면 여기저기 널브러진 채 울룩불룩 흩어져 있는 묘지와 봉분들이 전혀 안 보인다는 사실. 그나마 국토의 효율적 이용이라는 측면에서도 한국보다 몇 단계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의 경우 오래전 기고문을 통해 죽은 자가 차지하는 면적이 산 자가 쓰는 넓이보다 넓은 기형적 현상을 시정하려는 법적 조치, 제도적 대안이 나와야 하는 당위를 소상히 밝힌 적이 있었다. 잘못된 장묘문화를 하루빨리 바꿔야 한다는 소신에서였다.

        일행은 출출한 김에 차에서 내려 길가 좌판으로 다가갔다. 수박 한 통 값이 여자 노동자의 하루 공공임금과 맞먹는 물가. 주머니 사정이 이러하니 서민들에게는 과일이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 자갈들이 나뒹구는 토양에서 식물인들 어찌 온전히 자랄 수 있으며, 필수영양분마저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어찌 발랄한 생기를 기대할 수 있으랴. 그러니까 늘 근원적인 문제는 영적 자양분. 고갈된 영혼에 생명을 살리는 양식을 공급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처방인들 백약이 무효인 걸 모르고 있으니 안타깝다. 야속한 건 날로 자생력을 잃고 변해가는 황무지. “오 주여, 아직도 우상숭배의 대가가 아래로 삼, 사대까지 내려가는 죄악인 줄을 모르는 백성들을 일깨워 주시옵소서!”
    Copyrights ⓒ 주간시민광장 & www.gohuma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확대 l 축소 l 기사목록 l 프린트 l 스크랩하기
         신문사소개  |   시민사회재단 소개  |   보도자료등록  |  개인정보보호정책  |  청소년보호정책  |  오시는길
대표자: 조종건 | 상호: 시민사회재단 | 주소: 경기도 평택시 비전4로 175, 708-202 | 신문등록번호: 경기도 아52894 | 등록일자 : 2021-05-18 | 발행인/편집인: 조종건 | 편집장:조종건 | 청소년보호책임자: 조종건 | 전화번호: 010-7622-8781
이메일: master@gohuman.co.kr
Copyright © 2021 주간시민광장.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