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뉴질랜드’ 풍경(8회)】 하늘에 그린 수채화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8회)----------

        사방의 초지가 죄다 골프장인 나라. 아닌 게 아니라 이곳 골프장의 연회비는 환상적이었다. 매일 쳐도 1회에 기껏 1달러에 불과한 비결이 뭘까. 경비행기로 풀씨를 뿌려 국토 전체를 초원으로 뒤바꾼 덕택이었다. 주어진 땅을 가꾸며 생태계를 유지하면 자연은 반드시 인간에게 열매를 돌려준다는 게 이들의 지론. 그러고 보니 곳곳에 토양을 정화하는 수종들이 눈에 띄었다. 그걸 보답이라도 하듯 맘껏 자란 잔가지들이 나풀거리는 실가지를 늘어뜨린 채 분홍빛으로 한껏 빛을 발하고 있다. 한겨울 알몸을 드러낸 나목들까지 저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다. 가장 부러운 건 부득불 잘라놓은 통나무나 나무토막들마저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연거푸 터지는 탄성들. 하나같이 흡사 조각품처럼 예술미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Airfield를 지나면서 가이드는 만남과 대화의 문화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눈치도 없이 줄곧 떠드는 문제아 뒤에는 심각한 문제 부모가 있다는 교육관. 그밖에 병적일 만큼 난개발에 알레르기를 보이는 자연관 등이 일치하는 데도 영적으로 서로 맞지 않으니 더는 가까워지기 어려웠다.

        Queen's Town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고표지판. 좌우 협곡을 오가며 양들이 풀을 뜯고 평평한 캠프촌이 나오더니 돌탑을 닮은 돌산이 이어졌다. 그곳 나무들을 보자마자 하마터면 만리장성에 심은 수종으로 착각할 뻔했다. 고깔모자를 뒤집어쓰고 힘겹게 서서 흩날리는 먼지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모양새. 깡마른 계곡에 녹아내린 눈물[雪漏] 자국을 보노라면 영락없는 바닷속이다. 누구라도 노아 홍수를 떠올릴 만하되 이보다 확고한 증거는 없으리라. 우주 만물이야말로 제2의 성경이니까. 초지 위를 흐르는 물길 자국이 임도(林道)인 양 길게 뻗어있다. 문득 나무 전봇대를 따라 나란히 묻은 호스의 쓰임새가 궁금했다. 대답은 양들에게 수분을 공급하기 위한 것. 그때 중턱에 산토끼 한 마리가 뛰어갔다. 육중한 차체는 노란 능수버들 가지를 스치면서 내달리고, 줄지어 늘어선 홀쭉한 미루나무들을 훑고 지나간다. 뾰족한 침엽수들이 부실한 바위를 뚫고 뻗어 올라가듯 능선을 따라 산지를 개간하며 살아가는 자연인들. 그 거처를 찾아가는 건지 작다란 다리가 나오더니 이정표에 크롬웰 마을이라고 씌어 있다. 한 농부가 포도나무단지의 나뭇가지를 다듬는 예사롭잖은 솜씨. 오래전 금을 캐던 광산이 종막을 고한 뒤 그 일부가 눌러앉았단다. 아까 보았던 푸카키 운하마을처럼.

        농산물 직판장에 차를 세웠다. 가게에 들어서니 갖가지 과일로 풍성하다. 이를테면 공동으로 운영하는 협동조합 상점. 재배에서 판매까지 함께 책임을 지는 형태였다. 응당 싱싱한 생과일이 많고 체리나무의 묘목도 판매했다. 둘러보다 딸내미가 잘 먹는 말린 과일을 한 움큼 샀다. 뉴질랜드 화폐로 9.6 달러. 리무진에 오르니 공중전화 서비스 차량이 지나간다. 드물게 보는 공공차량을 비켜 매장 뒤 과수원으로 가니 전지 작업이 한창이었는데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하나는 기기를 조작하고 다른 하나는 전지를 담당하는 기계화 시스템. 주위에 두루 연기가 퍼져 쳐다보니 우리네처럼 한쪽 구석에서 낙엽을 태우고 있었다. 그 옆을 가로질러 흐르는 카라호 강줄기. 과연 래프팅하기에 최적지답다. 그 역시 태고의 바닷속을 연상케 하는 풍경. 길가 가게의 이름은 'Jones's fruit stall', 한참 때 영어 공부를 게을리 한 탓에 끝 낱말이 낯설어 사전을 뒤적이니 ‘마구간, 매점, 상품진열대’라는 뜻이었다.

        간간이 만나는 “Please Drives Slow”는 나라의 운전문화를 드러내는 교통 표지판. 곧바로 시야에 교회당이 빨려 들어왔다 사라졌다. 광부의 도시인 ‘Arrow town’은 카나오강 최초의 번지점프장을 재현한 곳. “Home of Bungy”의 이미지를 팔아 세계 35개국 250군데로부터 로얄티를 받고 있다니 놀랍다. 고개를 내밀어 굽어볼 만치 깊은 계곡의 높이는 43m. 순간의 전율을 위해 목숨을 거는 놀이가 지극히 비성경적인 행위임을 안 지는 필자 또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얼핏 단단해 뵈는 바위를 뚫어 대형 철근을 박은 일 자체가 대단한 역사(役事)인 듯싶어 요금을 물어보니 20만 원 상당. 그때 아내의 몸에 갑자기 오한이 엄습했다. 지난밤 추위에 시달린 게 급기야 탈이 난 터. 일단은 안정을 요하는 게 필요해 보여 서둘러 다리 건너에 대기하고 있는 리무진에 올라 차가워진 몸을 감쌌다. 간절히 기도한 뒤 창밖을 내다보니 옛 탄광촌의 정취가 남아있는 Arrow Town에는 정적이 감돌고, 저 멀리 구만리 장천에는 경비행기 한 대가 십자선을 그리며 날아간다. 기울어 가는 햇빛을 받아 안으며 미묘한 색조를 자아내는 은빛 물결. 맑은 호수가 깊디깊은 마을을 벗어난 전용 버스는 속도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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