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사: 법의 지배는 가능한가 (1) 》법은 자유의 수호자인가, 권력의 도구인가 - ‘법에 의한 지배’와 ‘법의 지배’를 중심으로
    • 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한상희 건국대 헌법학 명예교수는 『윤석열정부 3년 검찰 종합보고서』에서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닌, 법의 지배(rule of law)”를 강조했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두 표현 사이에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가르는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법은 그 자체로 정당한 것이 아니다.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가에 따라 법은 시민의 자유를 지키는 방패가 될 수도, 권력의 칼날이 될 수도 있다.

      ‘법의 지배’란, 권력자와 시민이 동일한 법 아래 놓이고, 법이 권력을 제어하며, 정의와 기본권이라는 실제 내용을 담아야 함을 뜻한다. 반대로 ‘법에 의한 지배’는 권력자가 법을 통치 수단으로 삼는 상태다. 이때 법은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기보다는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 변질된다.

      이 구분은 단지 철학의 개념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제로 권력과 시민의 운명을 가른 기준이었다. 대표 사례는 나치 독일이다. 히틀러 정권은 합법 절차를 거쳐 유대인 학살 정책을 시행했고, 법에 근거했지만 정의롭지 않았다. ‘법에 의한 지배’가 인간 존엄과 생명을 무너뜨린 것이다.

      미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60년대 이전까지 남부 여러 주에서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법으로 보장되었다. 교통, 교육, 투표 등에서의 제약은 절차의 합법성을 거쳤으나 정의롭지 않았다. 결국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는 “악법도 법인가?”를 외치며 시민과 함께 거리로 나섰다. ‘법의 지배’를 회복하려는 투쟁이었다.

      한국의 역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헌법’은 헌법 개정이라는 형식을 갖췄지만, 국민의 동의 없는 폭력이었다. 대통령에게 무제한 권한을 부여한 이 법은 법이라는 껍데기만 남고, 자유와 공공성의 정신은 사라진 전형적인 ‘법에 의한 지배’였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그 전철을 밟고 있지는 않은가.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진 검찰권의 선택적 행사는, 법의 형식을 유지하면서도 적용과 해석의 자의성을 보여주었다.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수사와 기소가 집중되고, 공익 제보자와 언론에 대한 대응이 위축 효과를 불러오는 사례들이 반복되었다. “법대로 하라”는 말이 더 이상 정의를 의미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이다.

      자유주의자 존 로크는 『통치론』 제6장 제57절에서 말했다. “법의 목적은 자유를 억압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를 보존하고 확대하는 데 있다.”(The end of law is not to abolish or restrain, but to preserve and enlarge freedom.)

      이는 단순히 ‘형식 절차’를 밟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법이 자유를 지키는 실질적 역할을 하는가를 묻는 선언이다. 법은 결코 권력을 위한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며, 시민의 삶을 지키는 방패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은 현실 정치와 행정 전반에 반드시 구현되어야 할 시민의 방어선이자 민주주의의 조건이다. 다시 말해, ‘법대로 한다’는 말은 반드시 ‘정의롭게 한다’는 뜻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시민사회가 ‘법의 지배’를 회복하는 데 주체로 나서야 한다. 권력기관에 대한 감시 제도를 강화하고, 동시에 법조계가 정치적 중립성과 공공성을 자율적으로 지킬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정비해야 한다. 법의 정신을 살리기 위한 사회적 감수성과 공론장이 절실한 때다.

      법은 자유를 지켜주는 울타리인가, 아니면 어느새 자유를 가두는 경계선이 되었는가. 법은 정의를 바로 세우고 있는가, 아니면 때로는 그 정의를 잠재우고 있지는 않은가. 이 물음 앞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답을 준비하고 있을까.

      오늘날 법은 정의의 이름을 빌리지만, 그 이면에 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법은 과연 누구의 편에 서 있으며, 누구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는가. 법의 형식이 아닌 그 정신, 권력의 논리가 아닌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법. 지금 필요한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고, 침묵이 아닌 용기다. 우리는 그 법의 정신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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