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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
경기도가 2026년 3월 위임국도 제도를 15년 만에 재평가하겠다고 밝혔다. 교통량이 전국 평균의 다섯 배에 달하는 구간이 등장하면서, 더 이상 지역도로라는 이름으로 관리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지역 연결도로였지만 지금은 광역 교통축이 된 것이다. 현실이 바뀌면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판단이다.
이 장면은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도로는 15년 만에 재평가하는데, 사회는 언제 재평가하는가라는 질문이다.
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점점 깊어지는 균열이 존재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OECD 최고 수준의 자살률, 심화되는 자산 격차, 청년 세대의 절망, 중장년층의 고립, 노년 빈곤까지. 어느 하나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문제들을 개별 정책의 실패로만 설명해 왔다. 저출산 정책, 청년 정책, 복지 정책을 각각 따로 고치려 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단편적 처방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대한 재평가일지도 모른다.
사실 선진국들은 이미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독일은 정기적으로 ‘사회보고서’를 통해 사회 구조의 변화를 분석하고, 영국은 국가 차원의 삶의 질 조사와 사회복지 지표를 통해 정책 방향을 조정한다. 일본 역시 국민의 생활 패턴과 사회 변화를 장기적으로 조사하는 ‘사회생활 기본조사’를 실시한다. 사회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고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이런 작업이 거의 없다. 우리는 통계는 많지만 사회 상처에 대한 진단은 부족하다. 정책 평가 보고서는 있지만, 사회가 어디에서 균열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총체적 조사는 드물다. 그 결과 정책은 계속 늘어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보자. 청년 문제는 단순히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다. 주거, 교육, 경쟁 구조, 사회 이동성까지 연결된 복합적 문제다. 저출산 역시 육아 지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노동시장 구조, 주거 비용, 삶의 전망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자살 문제 또한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고립과 공동체 붕괴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한국 사회의 위기는 서로 연결된 구조적 문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문제를 개별 정책 단위로 나누어 해결하려 한다. 이는 마치 광역 교통축이 된 도로를 여전히 ‘지역도로’라고 부르며 관리하는 것과 같다. 현실과 제도가 어긋나는 순간, 정책은 힘을 잃는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한국 사회 전수 진단 프로젝트」다. 과거 정책과 제도가 어떤 상처를 남겼는지, 어느 시기에 어떤 사회적 균열이 발생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떤 구조적 문제가 누적되어 있는지를 전면적으로 조사하는 작업이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통계 조사가 아니라 사회적 기억을 복원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노동 구조 변화, 금융 관행, 교육 경쟁, 주거 정책, 복지 제도의 변화를 장기적으로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집단이 어떤 상처를 겪었는지를 기록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사회가 스스로를 이해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시기별 상처 조사다.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 유연화가 어떤 영향을 남겼는지, 부동산 정책 변화가 세대 간 격차에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금융 관행이 개인에게 어떤 부담을 남겼는지 등을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책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사회는 자연스럽게 무너지지 않는다. 작은 균열이 오래 방치될 때 파국이 시작된다. 지금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저출산, 고립, 양극화 문제 역시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누적된 결과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 몇 개가 아니라 사회에 대한 집단적 성찰이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묻는 과정이다.
경기도의 위임국도 재평가는 이런 점에서 상징적인 사건이다. 현실이 변했으니 제도를 다시 보자는 것이다. 도로조차 그렇게 점검한다면, 사회 역시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도로는 15년 만에 재평가된다. 그러나 사회는 수십 년 동안 제대로 된 재평가를 받지 못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정책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다시 바라보는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