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인도’ 비전트립(5회)】 유일신과 잡신의 간극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5회)----------

        어느새 자동차는 비자와라와 고다바리의 경계선을 넘고 있었다. 길쭉한 건물 한 채는 주정부에서 운영하는 은행. 남궁 선생이 정신없이 졸고 있는 사이 이 선생과 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한계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각자가 믿는 하나님을 가감 없이 소개하는 데 그치려 했던 계획은 부지불식간에 누구의 주님이 더 강한 분인가에 관한 논쟁으로 돌변했다. 그렇게 불필요한 쟁론으로 옮아가려 할 때 필자가 먼저 말을 거두었다. 상대에게 본의 아닌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존자(自存者) 하나님의 정체와 본체(출애굽기 3:14)는 명백하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참새 한 마리가 떨어지는 일마저 주관(마태복음 10:29)하시는 것처럼 지으신 영혼마다 구원의 일정을 섭리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구든지 소임이 남아 있다면 비행기가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게 나의 세계관인 데 반해 그는 항공기가 추락하면 예외 없이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복음의 본질이 아니면 얼마든지 양보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서둘러 마무리를 지었다.

        베이스캠프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전. 어둠을 뚫고 저녁 8시경에 도착하니 쿠마 집이 아닌 친척의 아파트였다. 우리를 위해 한껏 배려한 숙소. 하지만 우리네 현대식 주거시설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신을 신고 들어가는 것도 모른 채 의자에 앉아있다가 나중에야 알아차릴 정도였다. 그런데 참으로 기이한 일은 따로 있었다. 끼니때가 됐으니 응당 배가 고파 와야 정상일 텐데 어찌하여 허기가 도리어 눈 녹듯 사라지는가였다. 아마도 뱃속에서 받지 않는 음식을 앞에 놓고 타인에게 강권을 받다 보니 이런 심상치 않은 증세가 나오나 했다. 문제는 연일 강행군에 어디까지 버티느냐가 관건. 나는 막 저녁 식사가 나올 때를 기다려 잽싸게 샤워실로 향했다. 따가운 눈총을 받느니 차라리 그편이 나았기 때문이다. 아무거나 잘 먹고 소화해 내면 오죽이나 좋으랴마는 풍토가 전혀 다른 타지에 오니 도무지 입에 맞는 게 없어 이토록 고생할 줄이야. 첫 해외 나들이다 보니 미리 준비하지 못한 불찰이었다.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마다할 수밖에 없는 미안함을 애써 위장 속에 감춘 채 여러 눈을 피해 서둘러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새벽 5시 출출한 기운에 잠을 깼다. 행여나 들킬세라 살금살금 먼지가 뽀얗게 앉은 구두를 닦으려니 솔이 없었다. 그런데 미리 일어나 있던 동생 쿠마가 방에서 나오더니 천 조각을 휘둘러 대충 털어 줬다. 뽀얗게 흩날리는 잔해들. 식전에 이 선생과 나만 쿠마를 따라 시장 구경에 나섰다. 골목에서 마주친 변압기. 하도 생김새가 투박해 물어보니 식민지 시절 설치한 그대로였다. 재밌는 건 시장 입구에 오늘의 가격표가 내걸린 것. 투명하고 신선했다. 높아 봐야 5층 정도인 건물을 가리키며 쿠마는 한국에서는 통상 몇 층으로 건물을 짓느냐고 물었다. 서울의 63빌딩을 소개했을 뿐 앞으로 100층이 넘는 마천루까지 올려 지을 예정이라는 말은 일부러 생략했다. 우리가 걷고 있는 구역은 여기서는 고급 주택가. 어설프게나마 화단을 가꾸고, 번듯한 자가용도 갖췄지만 그리 좋아 뵈지는 않았다. 하긴 웬만한 연금이면 고대광실(?)에 운전기사, 관리인, 요리사까지 두고 살 수 있단다.

        우리 둘을 위해 아침 식사를 대접했다. 서너 가지가 나오는 코스요리. 확실히 무설탕 우유 맛은 고소했다. 튀김 한쪽을 곁들인 요기. 무엇보다 맘에 든 건 깨끗한 환경이었다. 식당을 나와 얼마큼 걸어갔을 때 계산에 착오가 있었다며 부리나케 종업원이 따라붙었다. 밀크값 10루피가 누락됐다는 것. 쿠마는 두말없이 추가 요금을 지불했다. 국제전화 가게 앞이었다. 60초를 약정하고 집을 향해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이 극히 드문 시절이어서 사랑하는 아내와 듬직한 남매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없이 푸근했다. 숙소에 돌아와 오랜만에 커피 맛을 보았다. 이 선생이 커피믹스를 꺼낸 것. 그 사이 집에 있던 남궁 선생에게도 밖에서와 똑같은 음식이 제공되었다. 쿠마는 역시 센스가 있었다. 내친김에 시금치 된장국까지 끓여 속을 풀었다. 평소에는 입도 대지 않던 인스턴트 식품의 위력을 새삼 절감한 터. 그토록 자연식만을 고집하던 나이건만 뜬 내 풍기는 즉석 국물을 칭송하고 있다니, 그러고 보면 나란 사람도 스스로 만든 식문화의 울타리에 갇혀 살았던 셈이다. 이를테면 내 사유의 지평이 이제야 문화상대주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엄혹한 생애의 사각지대로 남았을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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