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종호 연재소설 (제9회)-3】 노량에 피는 꽃
    • 소설가 현종호

      소설가 현종호

      (제9회)-3

        불안감이 너무나도 컸던 때문일까, 이튿날 새벽 꿈에서, 적을 무리칠 계책과 비책을 상세히 알려준 신인(神人)을 이순신은 다시 만난다. 순신이 다시 만나보는 신인은 그러나 후덕하고 자상하기만 하던 그때 그 신인이 아니었다.
        “어르신께서 적을 물리칠 비책과 방책을 알려주신 덕분에 왜놈들을 가뿐히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잠시 후, 장중한 음성이 안갯속에서 묵직하게 들려왔다.
        “무슨 겸손의 말씀을…… 난 자네한테 다만 방법만을 일러줬을 뿐…….”
        “그 계책 안에 적을 무리칠 비책이 들어 있었습니다, 두고두고 잊지 못할 은혜입니다, 어르신!”
        순신이 머리를 조아렸다. 한동안 말이 없던 신인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런데 자네 안색이 꽤 안 좋구나. 왜 그러느냐?”
        “…….”
        “네 낯빛이 왜 이리도 불안한 것이냐?”
        “…….”
        “…….”

        “내게 또 무슨 청이 있는 것이냐?”
        “…….”
        “말해보아라. 네 불안의 원인이 무엇이냐?”
        신인이 다시 다그치자 순신은 고개를 들고 띄엄띄엄 말하기 시작했다.
        “임금의 칼끝이 저를 향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그게 무슨 소리냐?”
        “…….”
        “그게 무슨 소리냐니까!”
        “금부도사가 사약을 들고 말을 타고 달려 내려오는 악몽에 밤마다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르신.”
        “걱정하지 마라. 네 뒤엔 명나라 천자가 있느니라.”
        “제가 왜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더라도 임금은 저를 그냥 놔두지 않을 겁니다, 어르신.”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거라!”
        “그게 아니라니까요, 어르신.”
        “한심한 놈! 그런 썩어빠진 정신머리로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한 것이냐!”
        “…….”
        “…….”


        신인이 혀를 차며 안갯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순신은 눈을 들어 신인을 쳐다본다. 이순신은 순간 경악한다.
        “아…… 아……아버지……!……”


        보화도(寶花島)에서 108일을 머물며 겨울을 보낸 이순신은 1598년 2월 17일, 다시 남해로 내려와 삼도수군통제영을 전라도 강진의 고금도 덕동 포구로 옮겨가는데, 남해도 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가 절실한 시점에서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내린 결단이었다.
        순천에 전진기지를 두고 포진하여 버티는, 임금과 신료들과 백성들의 원흉 고니시 유키나가 왜군의 심장부와 인후를 찔러 들어가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왜군들 태반이 부산과 울산 언저리에 포진한 시점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오른팔로 부산성과 동래성을 가장 먼저 깨뜨리고 백성들을 무참히 학살한 부산 백성들의 철천지원수 고니시 유키나가. 상주, 탄금대, 그리고 한양을 가장 먼저 점령하고 임금을 의주까지 도망하게 한 조정의 원흉이 고니시 유키나가가 아니던가. 조선반도 서쪽 순천에 전진기지를 두고 넌더리 나게 버티는 임진왜란 1선발 고니시는 따라서 이순신이 가장 먼저 잡아서 책임을 물어야 할 상징적인 존재인 거였다.
        이순신이 새로 둥지를 튼 고금도는 보화도보다 훨씬 넓고 사람들도 꽤 많았다. 완도의 청해진에 가깝고 장흥에서도 가까운 강진만 어귀의 섬 고금도. 주변에 크고 작은 섬들이 겹겹으로 포개져 물길이 복잡하고 사나워 적들이 쳐들어오기도, 적의 척후가 척후하기도 까다로운 요새와도 같은 삼도수군통제영 고금도. 적들의 서진을 막아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날카로운 단애로 둘러싸인 산으로 온전히 막힌 요새. 이순신이 애써 찾아간 덕동 삼도수군통제영 고금도는 우선 함대를 숨기기에 좋았고, ‘덕을 베푸는 동네 덕동(德洞)’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농토가 꽤 넓고 토양이 기름져 조정에 올려보낼 식량을 확보하기가 수월하고 농부들이 기꺼이 농사해볼 만한 섬이었다. 통제사 이순신의 마지막 통제영 고금도 너른 경작지에선 양질의 흙을 빌려 작물이 아주 잘 자랐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백성들이 가진 구리와 쇠를 모아 총통을 주조하고, 나무를 베어다 배를 만들었다. 모든 일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병화를 피해 백성들이 모두 이순신에게 와서 의지하여 집을 짓고 막사를 만들고 장사하며 살아가니, 온 섬이 그들을 다 수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류성룡의 『징비록』)”

        이순신의 기적과도 같은 승리 소식을 듣고 흩어졌던 군사들이 속속 다시 돌아온다. 이순신에게 가면 얼마든지 목숨을 건질 수 있다는 소문이 연해와 내륙 곳곳으로 퍼져나가니, 백성들은 어선을 얻어타고 함대의 뒤를 악착같이 따라와 그가 있는 고금도로 구름처럼 모여든다. 헐벗고 주린 채 솥단지를 짊어지고 어떻게든 생존하겠다는 일념으로 끝없이 모여드는, 오도 갈 데도 없는 불쌍한 백성들을 이순신은 마다하지 않는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 의지해 고금도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이 수만 호에 이르렀다. 무려 10만 명이 훨씬 넘는 백성들이 고금도에 모여서 살았던 셈이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도 동분서주하며 열 일하는 이순신을 딱하게 여긴 원주민들이 오도 갈 데도 없는 피난민 백성들에게 묵은 땅과 어장 일부를 선뜻 내주게 되니 어장을 놓고 벌어지던 격한 싸움과 갈등까지도 마침내 사라지게 된 셈이었다. 조선 수군의 가난과 궁상과 궁핍은 그러나 잠시도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해가 떠오르자마자 이순신은 또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의 고군분투(孤軍奮鬪)는 가여웠다.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그의 군사들이 잡은 물고기를 백성들의 쇠붙이와 맞바꿔 대장간에서 편전 등의 무기를 꾸준히 만들어내고, 병든 군사들을 처지와 상황에 맞게 교체하고, 군사를 모집하며 수군 재건에 꾸준히 박차를 가한 끝에, 80여 척에 이르는 판옥선과 협선(挾船) 등 200여 척을 보유하고 1만 명에 이르는 군사까지 어느덧 확보하게 되니,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완전히 다시 일어나는 것이다. 군세는 한산도 시절의 수준을 능가하고도 남았다. 계사년의 한산 통제영 수준 이상으로 수군 전력을 마침내 이순신은 회복해내는 것이다.


        대체 얼마만의 재회였던가. 새벽 악몽에서 겨우 만나보는 아들은 안쓰럽고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이순신의 등판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꿈속에 다시는 얼씬거리지 말라며 호되게 아들을 꾸짖던 아비의 몰인정함이 그는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의 공허한 눈길이 벽에 걸린 칼에 줄곧 꽂혀 있었다. 휴가까지 반납하고 대장장이들이 애써 만들어준 칼이다. 그런 그의 칼이 지금 차갑게 우는 것이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려 적의 피로써 산하(山河)를 물들이라고 그의 칼이 차갑게 울고 있는 것이었다.


      【편집부 해설|제9회-3】명량 이후, 이순신은 전쟁을 이끈 장군이 아니라 체제를 견디는 인간으로 등장한다.

      제9회-3은 전장의 서사가 아니라 내면과 구조의 서사다. 이순신은 꿈속에서 ‘신인’을 다시 만나지만, 그 존재는 더 이상 위자가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라고 꾸짖는 존재로 변한다. 그리고 그 신인의 정체가 아버지로 드러나는 순간, 이 장면은 단순한 신화적 장치가 아니라 윤리적 각성의 순간으로 바뀐다.

      이순신의 두려움은 적이 아니다. 그는 이미 알고 있다. 전쟁이 끝나면, 칼끝은 바깥이 아니라 내부를 향할 것이라는 사실을.

      금부도사와 사약의 악몽은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권력이 영웅을 제거해온 역사적 기억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그는 무너지지 않는다. 보화도를 떠나 고금도로 이동하는 선택은 단순한 군사 이동이 아니라 전쟁을 ‘지속 가능한 체계’로 전환하는 전략적 재설계다.

      이순신은 전투에서 이기는 것을 넘어서 군대·백성·생산·보급을 하나의 구조로 묶는다.

      고금도에서 벌어지는 일은 명확하다.
          • 백성 유입 → 공동체 형성
          • 금속 수집 → 무기 생산
          • 농경 확보 → 식량 자립
          • 병력 재편 → 전력 복원
      즉, 그는 전쟁을 ‘생존 시스템’으로 재구성한다. 이 장면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문장—“일휘소탕 혈염산하” 이것은 단순한 전투 의지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결단의 언어다.

      【본문 어구 해설|제9회-3】

      계책 計策 Strategy / Plan : 상황을 분석해 세운 전반적인 전략. 전쟁의 큰 방향과 설계.

      비책 秘策 Secret Strategy : 남에게 알리지 않는 핵심 전술. 승패를 가르는 숨겨진 방법.

      금부도사 禁府都事 Royal Inspector / Arrest Officer : 의금부 소속 관리. 왕의 명령으로 죄인을 체포하거나 처벌을 집행하는 인물. 사약 전달도 담당.

      천자 天子 Emperor : 하늘의 뜻을 받았다고 여겨진 최고 통치자. 여기서는 명나라 황제.

      보화도 寶花島 Bohwado Island : 현재 목포 앞 고하도의 옛 이름. 수심이 깊고 바람을 막아주는 천연 항구로, 이순신이 수군을 재건한 회복의 거점.

      고육지책 苦肉之策 Desperate Measure : 스스로 고통을 감수하면서 선택하는 마지막 방법. 선택지가 없을 때의 결단.

      단애 斷崖 Cliff / Steep Rock Face : 깎아지른 절벽. 외부 침입이 어려운 천연 방어 지형.

      병화 兵禍 War Disaster : 전쟁으로 인한 피해. 약탈, 학살, 피난 등 모든 전쟁의 고통.

      고군분투 孤軍奮鬪 Lone Struggle :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싸우는 상태. 극도의 고립 속에서의 노력.

      편전 片箭 Armor-Piercing Arrow : 짧고 강한 화살. 갑옷을 뚫기 위해 만든 조선의 특수 화살.

      협선 挾船 Support Vessel : 전투를 보조하는 작은 배. 정찰, 보급, 기동 지원 역할 수행.

      일휘소탕 一揮掃蕩 Sweep Away in One Stroke : 한 번 휘둘러 모두 쓸어버린다는 뜻. 압도적 공격 의지.

      혈염산하 血染山河 Blood-Stained Land : 피로 물든 산과 강. 전쟁의 참혹함과 결전의 의지를 함께 담은 표현.

      【현대적 의미|제9회-3】 제9회-3은 오늘 우리에게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1. 외부의 적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부 구조’다

      이순신은 왜군보다 조정을 더 두려워한다.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정치 구조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직·국가·사회에서 가장 큰 위기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의 불신과 권력 구조에서 시작된다.

      2. 진짜 리더는 ‘전투’가 아니라 ‘시스템’을 만든다

      명량은 전투의 승리였다. 하지만 고금도는 시스템의 승리다. 이순신은 군사만 모은 것이 아니라 백성과 생산을 함께 묶었다리더십은 결과가 아니라 구조다. 한 번 이기는 것보다 계속 버틸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더 어렵다.

      3. 분노는 혁명이 될 수 있지만, 정의는 절제가 만든다

      정경달은 혁명을 말한다. 이순신은 거부한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잘못된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이 반드시 더 나은 질서를 만든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분노는 변화의 시작이지만 지속 가능한 질서는 절제와 책임에서 나온다.

      4. 영웅은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다

      이순신은 아들을 잃었고 권력에 위협받고 군량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다. 진짜 리더십은 ‘강함’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지속성이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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