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식 박사, 글로 남긴 ‘인도’ 비전트립(17)】 언제나 그리운 집으로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17)----------

        얼마 안 돼 -실상은 1시간 이상 지났지만- 누군가가 몸을 흔들었다. 곧바로 탑승을 준비할 시각. 또 화장실로 달려갔다. 기분 전환이 될 만치 향기롭고 깨끗했다. 볼일을 본 뒤 양치를 마치고 옷매무새를 다듬은 다음 집에 전화를 넣었다. 다행히 귀국 소식을 알려도 될 만큼 목소리는 회복되었다. 목청뿐만이 아니라 두 눈에 비치는 사물들마저 달라져 있었다. 온몸에 달가운 기운이 감도니 흡사 미수(米壽)를 앞둔 말년에 흐느적거리다가 인생의 봄을 새로이 맞는 듯한 기분이랄까. 빈틈없이 깔아놓은 붉고 푸른 깔판의 산란한 무늬마저 산뜻했다. 청사 한쪽에 만들어 놓은 실내 정원이 이다지 정겨울 줄이야. 조만간 네 식구가 꼭 함께 오리라 맘먹을 정도였다. 앞에서 이끄는 대로 일렁이는 설렘을 가슴에 안고 귀국 절차를 밟았다.

        상큼하게 웃음 짓는 아가씨들의 안내. 공교롭게도 구레나룻이 유난히 굵고 콧수염이 덥수룩한 인도인이 우리 셋 틈에 끼어들었다. 남궁 선생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는 사이 창가를 택해 앉았다. 비행기 창문 틈새기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마저 곰살맞았다. 오랜 진통 끝에 맛보는 맑은 정신. 시선을 냉큼 밖으로 돌렸다. 일군들이 보따리를 옮겨 실었다. 그런데 물건을 다루는 소행은 예상 밖. 가방들을 마구 집어 던지고 있었다. 저래 가지고야 견고한 물건인들 어찌 견디랴. 퍽 걱정 반 몹시 언짢음 반이었다. 소중한 것일랑 늘 내 손아귀에 꽉 쥐고 다녀야 한다는 평범한 교훈을 새삼 확인한 마당에 둔탁한 항체가 꿈틀거렸다. 서서히 동력을 모아 힘을 구축하는 중이었다. 오전 10시 24분 이륙. 앞으로 6시간 후면 그리운 고국에 도착하리라.

        왠지 마음이 가벼웠다. 천축국에서의 한 주간이 아스라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렇게 한동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또 2시간이었다. 깨어나자마자 기내식이 나왔다. 다행히 싱가포르 기내식은 역하진 않았어도 아직 먹을 수는 없었다. 아까와 같이 옆으로 인계했다. 둘 다 싫지 않은 기색들. 그 대신 승무원이 바쁘지 않은 시간을 틈타 신문을 요청했다. 중국계 일간지와 조선일보가 배달됐다. 한국의 수구세력을 대변한다는 그 언론매체. 국내 정세에 관한 그간의 궁금증이 조금은 풀렸다. 논조인즉 조중동의 선두 주자답다. 그러나 대만 신문은 한자문화권인데도 글자가 현저히 달라 어림짐작으로 훑어보았다. 그런고로 양안의 간체자와 백화체를 뭉뚱그려 가르칠 필요성은 충분조건. 꼼꼼히 보고 나니 어느덧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로다. 남궁 선생이 말을 붙였다.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하려면 건강한 모습을 보이라는 주문.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기이하리만치 나의 심신은 잠잠했다.

        인천공항은 추적추적 비를 뿌리고 있었다. 저녁 5시 10분. 조급한 마음에 대기 줄에 끼어들어 있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로 달려갔다. 대열이 길게 늘어나 있었다. 말없이 감수해야 했다. 힘겹게 출국 수속을 마치니 저녁 6시 정각. 그때 한 중년 남성의 추태가 뭇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한국인의 여전한 고질병. 화장실에서는 금지된 담배 연기가 자욱했고, 대기 선에서는 술 취한 남정네의 흐트러진 매무새가 처연했다. 어쨌든 이제 남은 일은 공항버스에 올라타는 일. 다시금 살펴봐도 공항청사는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다만 일부 뒤떨어진 시민의식이나 볼썽사나운 모습만 사라진다면 말이다.

        평택으로 가는 리무진. 늦어도 두 시간 남짓이면 사랑하는 식구들의 얼굴을 대하리라. 초대형차는 미끄러지듯 굴러갔다. 요철이 없었고 경적도 없었다. 그야말로 고요한 질서. 하지만 그러한 마음의 평화로움도 잠시뿐, 나는 금세 요사스러운 자신과 맞닥뜨려야 했다. 나의 눈높이가 저만큼 낮아져 있었다. 다름 아닌 인도와 견준 터. 아니나 다를까 올림픽대로의 정체에 짜증이 났다. 그러면 그렇지 서울을 관통하는 거리는 언제쯤 풀리려나 조바심이 났다. 또다시 쓸모없는 산술에 몰입하는 자아로 회귀하고 있었다. 인간의 성정이란 참으로 간사했다. 어쩌면 이같이 상황 논리에 민감할까. 그곳을 벗어나는 데만 꼬박 한 시간이 걸렸다. 이는 기실 어차피 각오해야 했던바, 변한 거라곤 나의 심사뿐, 주위 환경일랑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경부고속국도에 접어든 버스. 생각을 고쳐먹으니 한결 덜 지겨웠다. 어느새 오산 톨게이트. 이제야말로 거의 다 왔다 싶었는지 일순간에 긴장이 확 풀렸다. 잠깐 사이 낯익은 시가지가 두 눈에 들어왔다. 평택까지 가는 동행들과 악수를 나누고 택시 차례를 기다려 집에 도착하니 9시 1분 전이었다.
    Copyrights ⓒ 주간시민광장 & www.gohuma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확대 l 축소 l 기사목록 l 프린트 l 스크랩하기
최신기사
         신문사소개  |   시민사회재단 소개  |   보도자료등록  |  개인정보보호정책  |  청소년보호정책  |  오시는길
대표자: 조종건 | 상호: 시민사회재단 | 주소: 경기도 평택시 비전4로 175, 708-202 | 신문등록번호: 경기도 아52894 | 등록일자 : 2021-05-18 | 발행인/편집인: 조종건 | 편집장:조종건 | 청소년보호책임자: 조종건 | 전화번호: 010-7622-8781
이메일: master@gohuman.co.kr
Copyright © 2021 주간시민광장.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