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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현종호 |
(제8회)-3
통제사 이순신은 호각을 거듭 불어대고 초요기를 들어서 거제현령 안위와 중군장 김응함을 가까이 불러들인다. 안위가 주춤거리며 먼저 다가온다. 안위는 얼어붙은 채로 바다에 몸을 맡기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물결 따라 겨우 출렁이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통제사 이순신이 안위를 호되게 꾸짖었다.
“안위야, 억지 부리다 네놈이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놈이 진정 군법에 죽고 싶으냐? 네놈이 도망간들 대체 어디에서 살 것이냐?”
군인은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법. 무조건 받들어야 하는 상관의 명령이었다. 안위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급히 적진으로 들어가 교전하였다. 적장이 아다케부네 안택선(安宅船) 위에 앉아 지령을 내리자마자 왜선 서너 척이 거제현령 안위에게 즉시 달려드는 것이었다. 중군장 김응함이 가까이 와 있었다.
“너는 중군장(中軍長)이 되어서 피하기만 하고 대장선을 구하지 않으니 그 죄를 어찌 감당할 것이냐? 네놈을 지금 당장 처형하고 싶으나 형세가 일단 급하니, 네놈에게 우선 공을 세우게 해주겠다. 알겠느냐?”
“예…… 나으리…….”
“알았느냐?”
“예…… 통제사 나으리…….”
물 위에 뜬 전부를 집어삼킬 듯이 맹렬한 기세로 달려드는 물기둥에 맞아 안위가 탄 배에선 노가 무참히 부러져나가고, 세키부네 돌격 선으로 접근해 안위의 배에 마구 기어오르는 적들을 임준영이 긴 낫(장병 겸)으로 훑어낼 때마다 부지기수의 적들이 단말마에 비명으로 바다에 뚝뚝 줄줄이 떨어진다. 안위는 어느새 적에게 겹겹이 포위된 것이었다. 노가 부러져나간 안위의 배는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다시 달려드는 적들은 다시 칼을 받거나 방망이에 맞아 머리가 깨져서 피를 토하며 다시 바다에 고꾸라진다. 적들이 진저리 처지도록 다시 들이닥치고 있었다. 넌더리 나도록 꾸준히 달려드는 적들에 하얗게 질려 사색이 돼버린 안위였다. 궁지로 더 몰리게 되면 안위는 바로 자결할 것처럼 보였다. 이순신은 군관 송희립에게 다시 명령을 내린다.
“안위를 구하러 가자!”
서로의 죽음이 뒤엉켜 승패를 가늠할 수 없이 난전으로 치닫는 갑판 위에선 쉴 새 없이 피가 튀기고, 서로가 쏟아낸 피로 바다는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어 핏물로 소용돌이치고, 새들이 밤마다 찾아가는 안식처(피 섬)는 살인적 열기로 갈수록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밀물에 쉴 새 없이 들이닥치는 물결처럼 적들은 쉼 없이 잇달아 밀려왔다. 헤아릴 수 없이 몰려오는 적들을 헤아릴 수 없이 베고 나면 적들은 헤아릴 수 없이 다시 몰려왔다. 적장들은 이상한 짐승의 괴상한 탈을 쓰고 역류를 거슬러 무작정 계속 달려들었다. 죽으려고 정말 환장한 자들이었다.
이순신의 칼을 받고 찢어진 가슴으로 검붉은 피를 뿜어내며 황소 대가리 가죽을 뒤집어쓴 적장이 대장선 갑판 위에서 마침내 고꾸라진다. 칼이 목숨을 가로지르며 적장의 심장 깊이 찔러 들어갈 때, 삼도 수군 총사령관 이순신의 떨리는 손에 뭉클한 진동이 진하게 전해진다.
적장의 심장부 깊이 박힌 이순신의 칼은 이번에도 쉽게 빼지지 않았다.
“안위와 그의 배에 오른 나의 군사들은 사력을 다해 나무방망이와 긴 창과 돌덩어리 등의 무기로 적의 몸을 찌르고 머리를 찍어대며 적과 뒤엉켜 한나절 내내 싸웠다. 배 위의 군사들이 거의 힘을 다한 듯싶어지자 나는 뱃머리를 돌려 곧장 쳐들어가 적에게 화살을 빗발치듯 퍼부었다. 깨진 적선 세 척이 거의 뒤집혔을 때, 녹도만호 송여종과 대장 정응두가 내게로 달려와 협력하여 적을 사살하니 왜놈은 단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검은 연기는 연방 눈을 찌르고 하늘을 덮었다. 난전은 계속되었다. 안위의 배가 적의 포위망에서 겨우 벗어나고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울돌목의 물살이 마침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거센 바람이 또한 갑자기 미친 듯 휘몰아치기 시작하는데, 야속하기만 했던 바람도 이제부턴 점점 조선 수군의 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물살 역시도 그랬다. 어느덧 울돌목의 물길이 뒤집히고 요동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었다.
이물과 고물이 치솟아 오르다 갑자기 달려드는 물기둥에 맞아 좌표를 상실한 적의 주력함대는 지휘체계를 잃고 한동안 우왕좌왕하였다. 이순신이 바닷물 속에 전날 미리 숨겨두었던 쇠사슬에 적의 배들이 뒤엉키고 포개지고 역풍에 곧 뒤집힐 듯 서로 부딪히며 마침내 하나씩 깨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선체에 구멍이 뚫리자 적들은 황망한 눈길로 갈피를 못 잡고 바다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기우뚱거리고 출렁거릴 뿐이었다. 지휘체계를 잃고 사색이 돼버린 적들은 허둥대기만 할 뿐, 더는 공격해올 엄두도 못 내고 헤매기만 하는 것이었다. 조선 수군 총사령관 이순신이 그 순간을 놓칠 리 없었다. 그의 군사들은 용기백배하여 적을 향해 화살을 빗발처럼 날려대고 조란환 수백 발을 마구 퍼부어댄다. 우레처럼 날아오는 탄환과 화살을 맞아 피를 토하며 헤아릴 수 없이 적들이 바다에 고꾸라진다.
“항왜(降倭) 사야가는 안골에 있는 적진에서 우리에게 투항해온 준사인데, 바다를 굽어보고 물 위에 뜬 시체 한 구를 가리키며, 붉은 비단옷을 걸친 자가 안골진에 있던 적장 마다시(馬多時)라고 내게 알려주는 것이었다. 군사 김돌손을 시켜 마다시의 시체를 갈고리로 찍어 올리게 해서 투구를 쓴 채로 토막을 내 대장선 꼭대기에 걸었더니, 찌를 듯 등등하던 적의 기세가 마침내 크게 꺾였다. 나의 군사들이 일시에 북을 쳐대고 함성을 지르며 지자총통과 현자총통을 발사하니 그 소리는 산천을 흔들었고, 적함 31척을 깨부수고 화살을 또 우박처럼 쏘아대니 적들은 다시는 더 가까이 다가서지 못했다.”
짐승 수컷 뺨치게 정력이 왕성한 적장들은 조선의 얼굴 반반한 부녀자들을 열 명씩이나 한꺼번에 선실로 끌고 들어가서 번갈아 가며 겁탈하던 자들이었다. 구르지마 미치후사가 여색을 환장할 정도로 가장 밝혔고, 우두머리 마다시도 예외일 순 없었다. 가랑이 속으로 파고드는 그를 밀쳐내며 악을 쓰는 부녀자들 누구든 단칼에 목을 자르곤 했던 자가 또한 마다시가 아니었던가.
적장 마다시가 난도질당하는 동안 이순신은 부녀자들의 나신(裸身) 위에서 내내 꼴깍거렸을 난잡한 우두머리 마다시를 씁쓸히 떠올리고 있었다.
조선 수군에게 남겨진 배 겨우 13척으로,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적함 333척과 싸워서 전사자 두 명에 부상자 세 명으로 일궈낸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승리였다. 허울뿐인 이름의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신망국활(身亡國活)’의 일념으로 일궈낸 쾌거였다. 총사상자 다섯 명으로 적함 31척을 완파하였고, 90여 척을 또한 파손하였으며, 군사 겨우 120명으로 5천 명이 훨씬 넘는 적들을 수장시키고 1만여 사상자를 낸 쾌거였으니, 통제사 이순신의 완승임이 틀림없는 것이었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그의 일기에 한 줄을 추가한다.
“이번 일은 정말 천행(天幸)이었다!”
【편집부 해설|제8회-3】
제8회-3은 명량해전의 결정적 국면, 즉 공포·혼란·절망이 용기로 전환되는 순간을 집중적으로 포착한다. 이 대목에서 이순신은 더 이상 ‘전술가’가 아니라, 군의 심장부를 직접 두드리는 존재로 등장한다.
거제현령 안위와 중군장 김응함을 향한 이순신의 호된 질책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전열을 붙잡기 위한 최후의 언어, “명령 앞에서 사는 군인”이라는 군율의 본질을 다시 세우는 행위였다.
특히 안위의 위기는 개인의 공포를 넘어 조선 수군 전체의 붕괴 가능성을 상징한다. 이순신이 직접 “안위를 구하러 가자”고 명령하는 장면은, 지휘관이 최전선으로 뛰어들어 공포의 고리를 끊는 순간이다.
이후 울돌목의 물살이 바뀌며 전세가 역전되는 과정은 자연·전술·인간의 결단이 맞물린 명량해전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마다시의 죽음과 적장의 수급은 단순한 전과가 아니라, 적의 심리를 붕괴시키는 전장의 결정타로 기능한다.
이 회차는 묻는다.
“군대가 무너질 때, 그것을 다시 세우는 것은 무엇인가?”그 답으로 작품은 한 사람의 결단과 책임을 제시한다.
【본문 용어 해설】
• 초요기 初腰旗 Command Flag 전투 중 지휘관이 명령을 내릴 때 드는 신호용 깃발. 말과 북이 들리지 않는 전장에서도 지휘 의사를 전달하는 핵심 수단.
• 아다케부네 안택선 安宅船 Atakebune (Japanese Warship) 일본 수군의 대형 주력선. 갑판이 높고 병력이 많아 지휘선·돌격선으로 쓰였으나, 울돌목 같은 좁은 해협에서는 오히려 기동성이 떨어졌다.
• 세키부네 돌격 선 關船 Sekibune (Assault Boat) 중형 돌격선. 기동성이 좋아 백병전과 접근전에 특화된 일본 전투선.
• 난전 亂戰 Melee Battle 전열이 무너지고 아군·적군이 뒤섞여 벌어지는 혼전. 지휘보다 개인의 생존과 용기가 전투를 좌우하는 상황.
• 사력 死力 All One’s Strength 죽음을 각오하고 쏟아붓는 힘. 명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보여준 마지막 저항의 에너지.
• 용기백배 勇氣百倍 Courage Multiplied 공포를 넘어선 상태. 지휘관의 결단이 병사들의 심리를 뒤집을 때 나타나는 전환점.
• 조란환 鳥卵丸 Grape Shot 새알처럼 작은 탄환을 다수 발사하는 포탄. 근거리에서 적 병력을 대량 살상하는 데 효과적이었음.
• 항왜 사야가 降倭 Defected Japanese Soldier 일본군에서 이탈해 조선에 투항한 인물. 적의 내부 정보를 제공하는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 마다시 馬多時 Japanese Commander (Proper Name) 안골진 일대에서 활동한 일본군 지휘관.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의 상징적 인물로 묘사된다.
• 나신 裸身 Naked Body 옷을 벗긴 상태의 몸. 작품에서는 폭력과 인간성 파괴의 극단을 상징하는 표현.
• 꼴깍거렸을 (구어 표현) Gloating / Leering 탐욕과 음란함을 드러내는 표현. 적장의 타락한 내면을 드러내는 의도적 비속어 사용.
• 신망국활 身亡國活 One Dies, the Nation Lives “몸은 죽어도 나라가 산다”는 뜻. 이순신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희생의 철학.
• 천행 天幸 Heaven’s Blessing 하늘이 준 큰 행운. 이순신은 승리를 자기 공이 아니라 운과 백성의 힘으로 돌린다.
【현대적 의미】 제8회-3은 오늘의 사회에도 강한 질문을 던진다.
위기의 순간, 조직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책임을 피하거나 침묵하기 쉽다. 그러나 이순신은 정반대의 선택을 한다. 가장 위험한 곳으로, 가장 두려운 자리로 스스로 들어간다.
안위를 꾸짖는 장면은 폭력이 아니라 “도망칠 자유보다 지켜야 할 책임이 먼저”라는 선언이다. 그리고 곧바로 구조 명령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장면은 권위가 아니라 책임의 리더십을 보여준다.
또한 적장 마다시의 죽음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폭력적 권력이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상징한다. 민간을 유린하고 약자를 학대하던 권력은 전장에서 가장 먼저 심리적으로 붕괴된다.
오늘의 독자에게 이 장면은 이렇게 읽힌다.
진짜 리더십은 안전한 곳에서 명령하지 않는다.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가장 먼저 책임을 진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