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건 칼럼 연재 ①] ‘예수의 이웃사랑,’ 현대인은 고된 해석의 과정을 거쳐야 (1) 국가가 허용한 금융 관행, 왜 개인만 책임지는가 ― 연대보증은 은행의 구조적 특혜였고, 그 대가는 지금도 개인이 치르고 있다
    • 조종건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연대보증은 금융 정책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을 어떻게 정의해 왔는가라는 윤리의 문제다. 예수의 이웃사랑이 오늘 금융 앞에서 다시 해석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군가는 보호받았고, 누군가는 위험을 떠안았다. 문제는 그 책임이 어떻게 배치되었는가이다.

      연대보증은 한때 ‘어쩔 수 없는 금융 관행’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그것은 관행이 아니라 국가가 허용한 위험 전가 시스템이었다. 연대보증 채무의 가장 큰 모순은 여기에 있다. 보증인은 돈을 한 푼도 써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채무가 부실해지면 채무자와 동일한 책임을 졌고, 심지어 채무자가 파산해도 보증인의 채무는 끝나지 않았다. 

      이 구조를 금융기관은 알고 있었고, 금융당국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제도는 오랫동안 유지됐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책임이 개인에게 이전되는 방식을 사회가 용인해 온 역사였다.

      연대보증은 금융 특혜였는가

      연대보증은 겉으로는 ‘금융 안전장치’처럼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금융기관의 위험을 개인에게 이전하는 장치였다. 금융사는 담보가 부족해도 대출을 실행할 수 있었고, 상환 불능의 위험은 보증인에게 전가됐다. 이는 금융사 입장에서 보면 위험은 줄이고, 이익은 유지하는 구조였다.

      국가는 이를 명시적으로 설계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장기간 규제하지 않고 방치함으로써 사실상 용인했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금융 시스템의 안정 비용을 가장 약한 개인들이 대신 부담했다. 이 점에서 연대보증은 저금리나 보조금 같은 전통적 의미의 ‘특혜’는 아닐지라도, 위험과 책임이 개인에게 비대칭적으로 배치된 구조, 다시 말해 금융권에 유리한 구조적 특혜였다.

      선진국은 왜 연대보증을 버렸는가

      중요한 질문이 있다. 선진국 중 연대보증을 금융의 표준 제도로 유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미국·독일·프랑스·영국 등에서는 개인 연대보증이 일반화된 대출 관행이 아니며, 담보·신용평가·공적 보증 제도를 통해 위험을 관리한다. 일본 역시 과거 일부 연대보증 관행이 있었으나, 사회적 비용과 피해가 드러나면서 제도적으로 대폭 축소했다.

      연대보증을 폐기한 이유는 금융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제도가 개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책임을 전가한다는 윤리적 판단때문이었다. 즉, 연대보증은 현대 금융에서 이미 실패가 확인된 방식이다. 그 실패의 후유증을 왜 한국에서는 아직도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가. 

      10년을 갚았다는 건, 책임을 다했다는 뜻이다

      연대보증 피해자 중 다수는 도망치지 않았다. 파산을 택하지도 않았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자와 원금을 나눠 갚으며 사회적 의무를 이행해 왔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10년을 넘겼다면, 이자는 멈추고 원금만 갚게 해 달라.” 

      이 요구는 과하지 않다. 오히려 매우 보수적이다. 도덕적 해이의 여지가 없고, 상환 의지는 충분히 입증됐으며, 사회가 요구한 책임의 목적은 이미 달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자를 계속 요구하는 것은 회복을 막는 구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에 가깝다.

      채무에도 안식년이 필요하다

      대학에는 안식년이 있다. 오랜 기간 성실히 역할을 수행한 사람에게 회복의 시간을 주는 제도다. 왜 채무에는 이런 개념이 없는가. 특히 돈을 써보지도 못한 연대보증 채무에 대해 10년, 15년, 20년까지 이자를 요구하는 사회는 정의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성서의 안식년은 탕감의 제도가 아니라, 책임이 인간을 파괴하지 않도록 멈추게 하는 윤리 장치였다. 이제 구조를 바꿔야 한다. 연대보증 채무에 대해 10년 이상 성실 상환한 경우, 이자를 중단하고 원금 회수 중심으로 전환하자. 이는 자비가 아니라 국가 책임의 분담이다.

      “법이 없다”는 말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연대보증을 허용한 것도 법이었고, 그로 인한 피해를 방치한 것도 정책이었다. 그렇다면 회복의 제도를 만드는 것 역시 정치와 행정의 몫이다. 재혼자에게 주택구입시 2% 금리를 적용할 수 있다면, 국가의 감독 실패로 피해를 입은 연대보증 피해자에게 이자 중단이라는 최소한의 정의를 제공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한 문장으로 묻는다. 국가가 허용한 금융 관행의 대가를 언제까지 개인에게만 맡길 것인가. 연대보증은 끝났다. 그러나 이웃을 담보로 삼아 온 사회의 책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다음 회차 예고 (2) 

      예수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이웃은 오늘, 금융 계약서 속에서 어떻게 취급되고 있는가.

      연대보증은 합법이었지만, 정의로웠는가. 은행의 위험을 대신 짊어진 개인은 과연 ‘이웃’으로 대우받았는가, 아니면 계산 가능한 비용이었는가.

      2회차에서는 예수의 이웃사랑이 단순한 선의나 자선이 아니라 구조적 불의를 거부하는 급진적 윤리였다는 점에서 출발해, 현대 금융 시스템이 어떻게 이웃을 보호하기보다 이웃을 담보로 삼는 체계로 작동해 왔는지를 묻는다.

      이웃사랑은 개인의 미덕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제도와 정책으로 번역되어야 하는가. 신앙은 왜 금융을 외면해 왔는가. 금융은 왜 이웃을 책임지지 않는가.


    Copyrights ⓒ 주간시민광장 & www.gohuma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확대 l 축소 l 기사목록 l 프린트 l 스크랩하기
         신문사소개  |   시민사회재단 소개  |   보도자료등록  |  개인정보보호정책  |  청소년보호정책  |  오시는길
대표자: 조종건 | 상호: 시민사회재단 | 주소: 경기도 평택시 비전4로 175, 708-202 | 신문등록번호: 경기도 아52894 | 등록일자 : 2021-05-18 | 발행인/편집인: 조종건 | 편집장:조종건 | 청소년보호책임자: 조종건 | 전화번호: 010-7622-8781
이메일: master@gohuman.co.kr
Copyright © 2021 주간시민광장.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