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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
예수의 이웃사랑은 오늘날 지나치게 쉽게 호출된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이웃사랑이 더 이상 해석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사랑은 선행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이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를 읽어내는 해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했다. 이 문장은 자주 인용되었지만, 그 급진성은 반복 속에서 마모되었다. 오늘날 이웃사랑은 대체로 개인의 선의, 자선, 배려의 언어로 축소된다. 그러나 예수가 말한 이웃사랑은 그러한 미덕 윤리가 아니라, 책임 윤리였다.
“누가 그 사람의 이웃이 되어 주었는가.”(누가복음 11장 36절)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예수가 던진 이 질문은 감정의 상태를 묻는 질문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책임을 회피했고, 누가 책임을 떠안았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율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귀속되는 책임을 구조적으로 외면했기 때문에 비판받는다.
이웃은 ‘도움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이 발생하는 관계의 당사자였다.
연대보증(joint and several guarantee)이라는 제도 속에서 이웃은 누구였는가
이 질문을 오늘의 금융 시스템에 대입해 보자. 연대보증이라는 제도 속에서 이웃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었는가. 보호의 대상이었는가 아니면 위험을 대신 떠안는 담보였는가.
연대보증인은 대출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채무가 부실해지는 순간, 그는 계약서 한 줄로 위험의 최종 수용자가 되었다. 이것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책임이 재배치된 구조의 결과였다.
금융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금융의 비도덕성이 아니다. 문제는 금융을 규율해야 할 제도와 윤리가 이웃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책임을 조직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예수의 이웃사랑은 ‘합법성’으로 책임을 면제하지 않는다
예수의 윤리는 “나는 법대로 했다”는 말을 허락하지 않는다. 율법을 지킨 제사장과 레위인이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연대보증 역시 마찬가지다. 은행은 법대로 대출했고, 국가는 법대로 감독했고, 계약은 합법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이웃이 평생의 채무자로 전락하는 구조였다.
예수의 이웃사랑은 바로 이 지점에서 묻는다. 합법이었는가가 아니라, 책임이 누구에게 전가되었는가.
금융 정의는 신학의 외부에 있지 않다
신학은 오랫동안 금융을 ‘세속의 문제’로 밀어냈다. 구원은 영혼의 문제이고, 돈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식이었다. 그러나 예수의 사역은 빚, 세금, 소유, 분배의 문제와 맞닿아 있었다.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빚을 사하여 달라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마태복음 6장 12절)고 기도하게 한다. 빚은 개인의 도덕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특히 쓰지도 않은 빚이라면, 그것은 명백히 구조의 문제다.
이웃사랑은 제도로 번역되지 않으면 윤리가 아니다
연대보증은 은행의 구조적 특혜였다. 위험은 개인에게 이전되고, 금융의 안정 비용은 가장 약한 이웃에게 전가되었다.
이웃을 보호하지 않는 제도는 이웃사랑을 말할 자격이 있나. 이웃사랑이 개인의 미덕에 머무를 때, 불의한 구조는 언제나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수의 이웃사랑은 구조를 향해 묻는다. 누가 비용을 지고 있는가. 누가 보호받고, 누가 방치되는가.
금융 정의의 최소 조건 ― 자비가 아니라 책임의 재배치
연대보증 피해자 중에는 10년 이상 성실하게 채무를 이행해 온 이들이 있다. 그들에게 끝까지 이자를 요구하는 사회는 이웃사랑을 말할 수 없다.
이웃사랑을 제도로 번역한다면, 최소한 다음과 같은 책임의 재배치는 가능해야 한다. “10년 이상 성실 상환한 연대보증 채무에 대해 이자를 중단하고 원금 회수 중심으로 전환할 것” 이것은 탕감이 아니라 정의다. 자비가 아니라 책임의 재배치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예수의 이웃사랑은 선한 마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험의 담보로 삼는 구조를 거부한 윤리였다.
▶ 다음 회차 예고 (3) 이웃사랑은 왜 정치가 되어야 하는가 — 자비에서 정의로, 신앙에서 제도로
이웃사랑은 오랫동안 개인의 미덕으로 이해되어 왔다. 돕는 마음, 나누는 손길, 불쌍히 여기는 감정. 그러나 그 언어로는 구조적 불의를 멈출 수 없었다.
연대보증 문제는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성실히 책임을 감당한 이웃은 여전히 빚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금융과 국가는 “법대로 했다”는 말로 책임을 비켜선다. 이 지점에서 묻게 된다.
이웃사랑은 개인의 선의로 충분한가, 아니면 공동체의 책임이어야 하는가.
3회차에서는 이웃사랑이 왜 더 이상 도덕적 권고에 머물 수 없고, 왜 제도와 정치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하는지를 다룬다. 자비가 멈춘 자리에서 정의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신앙은 언제 구조를 향해 질문해야 하는가.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가 말한 것처럼, 도덕적 선의만으로는 역사 속 불의를 감당할 수 없다면, 이웃사랑은 이제 정치가 되어야 한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웃사랑이 ‘시장 실패 이후의 정치’로 확장되는 필연성과 국가와 금융이 져야 할 책임의 최소선을 본격적으로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