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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하식 (칼럼니스트, 기독교철학박사) - |
-----------(3회)-----------
모처럼 평평한 도로가 나왔다. 선명한 차선을 따라 차체의 떨림이 잦아드니 메모장의 글씨들이 제자리를 잡는다. 기록하기를 ‘허름한 종이 공장’. 차량 통행이 뜸한 진입로에는 잡초만 무성했다. 작업복 차림의 여인 둘이서 바구니를 들고 번갈아 드나들었다. ‘라지멘드리’시 경계로 진입하자마자 나타난 커다란 교도소. 감옥치곤 담장이 낮아 왠지 허술해 보였다. 시내로 접어드니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가 진동했다. 쿠마의 발 빠른 생중계. 1991년 총선 유세 중 비명횡사한 라지브 간디의 부인 소니아 당수가 이끄는 제1야당 의회당이 당기를 치켜들고 집회 중이었다. 안내 경찰의 통제에 따라 걷는 군중들. 그들의 활기찬 모습 속에서 표를 결집해 끝내 정권을 갈아치우는 인도인의 정치적 기질이 읽혔다. 그녀는 이탈리아 태생의 여걸로서 세 명의 수상을 배출한 인도 정치 명문가의 며느리. 1947년 독립에 발맞춰 시조부 자와할랄 네루를 필두로 1984년 시어머니 인디라 간디가 총리를 지냈고, 뒤를 이어 남편 라지브가 집권하던 중 모친의 전철을 밟듯 불의의 총격사를 당하고 말았다. 이제는 그 4세대인 아들 라울 간디마저 이립(而立)의 나이에 의회로 진출했다니 대대로 집안의 전통을 이어가는 정치 명문가임이 틀림없다.
여기 역시 여느 도시처럼 옆으로 삐져나온 머플러에서 내뿜는 매캐한 매연만은 지독했다. 희뿌연 연기 탓에 안 그래도 낮은 하늘이 더더욱 낮아 보였다. 아무래도 낙후된 정유시설에 하자가 있음이 분명한 터. 시내 한복판 ‘라자문드리’ 기차역 앞에 내려 10루피씩이나 하는 사탕수수 차 한 잔씩을 들이켰다. 낡은 기계를 돌려 다디단 즙을 짜내느라 철분? 아니 쇳가루가 녹아들었지만 그런대로 마실 만했다. 방문객을 위한 배려였으나 그때마다 부담스러운 감정까지 숨기기는 어려운 참.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루터란 교회는 주목할 만한 규모였다. 일반적 교회를 지칭하는 가톨릭(Catholic)을 개혁하려고 95개조 논제의 기치를 드높이 치켜들었던 마틴 루터의 교리를 중세로부터 이어가는 곳. 작지 않은 병원과 학교까지 딸려 있었다. 사족처럼 나붙은 커튼 경 기념박물관만 아니었다면 나름대로 정통파 교회당이 뿌리내린 것 같아 흐뭇했을 것이다. 핵심은 늘 형식이나 현상이 아닌 본질에 숨어있으니 말이다.
중간에 궁금해서 들른 자그마한 ‘배카스로발렘’ 교회. 꾸물거리며 나오는 이에게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고 향한 예배당이 있었다. 한눈에 꽤 크고 세련된 건물. 들어가자마자 일행 앞에 트랜스 달린 대형선풍기를 틀어댔다. 재질 좋은 의자며 각종 장식에다 와상이 놓인 휴식공간까지 이전 교회들과는 달리 전후 사정이 윤택해 보였다. 건물 덩치에 걸맞은 대지. 바닥을 보니 양질의 시멘트였다. 하지만 두 쪽 난 출입문의 형태만은 똑같았다. 인도 가옥은 창문까지 양쪽에서 여닫도록 반반씩 나누어 놓는다. 언감생심 외형을 보고 사역지를 평가하자는 의향은 추호도 없다. 혹여 우리의 선교 여정이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온통 건물 짓는 일에만 치중할까 봐 역설적으로 짚고 넘어가려는 것뿐이다. 원체 시간개념이 없다 보니 오후 3시가 넘어서야 점심이 나왔다. 여신도들이 볶음밥에 닭고기를 튀겨 내놓았다. 밥알의 입자가 푸슬푸슬하고 육질은 딱딱했지만 들인 정성을 생각해 맛있게 먹었다. 외국인의 행차가 자못 신기한 듯 구멍 뚫린 울타리를 둘러싸고 쳐다보는 동네 어린이들의 눈길과 한 처자의 따가운 시선. 우리의 지원이 넉넉했다면 온 동네 사람들을 불러 조촐한 잔치를 베풀었으면 좋으련만 그렇질 못했다.
그곳을 떠나자마자 만난 곳은 ARRG 주립대학. 영문 약자가 무슨 뜻인지는 미처 확인할 겨를이 없었다. 설립 주체가 주정부여서 그나마 형편이 나을 법한데 부지 자체가 별반 없어 보였다. 대학뿐만 아니라 각급 학교에 이르기까지 상업적 논리에 오염된 결과물이란다. 외곽이든 도심이든 달랑 건물 한 동 또는 한 개 층을 임대해 학사를 운영하다 보니 십상팔구 운동장 없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 교육 내용의 충실성 또한 담보하기 힘들다는 설명이었다. 국가의 앞날을 대비한 육영사업마저 예외 없는 시장경제의 이론에 놀아난다면 그 과정인들 진지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레 교육의 질을 논하기에는 때가 이르다. 초등학교에 재직 중인 마르달로를 통해 교원 임용 절차를 확인했더니 일정 학력 이상자들을 대상으로 엄격한 자격시험을 치러 뽑는다고 자신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천만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