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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현종호 |
(제9회)-2
정유년(1597년) 10월 30일
맑았으나 동풍이 불고 비가 내릴 조짐이 많았다. 아침에 집 지을 곳으로 내려가 앉아 있자니 여러 장수가 보러 찾아왔다. 해남 현감 유형도 와서 적에게 붙었던 자들이 한 짓을 낱낱이 고하였다. 일찍 황득중을 시켜 목수를 데리고 섬 북쪽 산봉우리(고하도 당산) 밑으로 가서 집 지을 재목을 찍어 오게 하였다. 날이 저물어서, 적에게 붙었던 해남의 정은부와 김신웅의 계집과 왜놈들을 꼬드겨 우리나라 사람들을 죽이게 한 자들과 양가 처녀 두 명을 강간한 김애남 모두 목을 베어 효시하였다. 저녁에 양밀(梁謐)이 도양장의 곡식을 제멋대로 나누어 주었기에 곤장 60대를 쳤다.
정유년 11월 1일, 비가 내렸다.
아침에 사슴 가죽 두 장이 물에 떠내려와서 명나라 장수에게 선물로 주기로 했다. 괴이한 일이다. 오후 두 시경에 비가 멎었으나 북풍이 심하게 불어 뱃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괴로워했다. 나는 선실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심사가 매우 초조하여 하루를 지내기가 1년을 지내는 것 같았다. 비통함을 어찌 말로 다 하겠는가. 저녁에 북풍이 다시 심하게 불어와 밤새도록 배가 흔들리니 군사들이 안정을 취할 수가 없었다. 식은땀이 온몸을 적셨다.
정유년 11월 2일,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일찍 들으니, 전라 우수사 김억추의 배가 바람에 표류하다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졌다고 한다. 매우 통분한 일이다. 병선군관 당언량(唐彦良)에게 곤장 80대를 쳤다.
정유년 11월 3일 맑음.
아침 일찍 새로 집을 짓는 곳으로 올라갔는데, 선전관 이길원(李吉元)이 배설을 처단할 일로 들어와 있었다. 이미 성주의 본가로 도망간 배설을 잡으러 성주 본가로 곧장 가지 않고 이곳으로 오다니, 이는 배설이 도망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주려는 거나 다름없다. 사사로움을 따른 죄가 극심하다. 선전관 이길원을 녹도의 배로 보냈다.
그 뒤 이틀이 지나 선전관 이길원이 수하를 거느리고 목포 앞바다 고하도 수영에 다시 내려오게 되는데, 난생처음으로 바다를 구경하고 전쟁에 대한 상식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지렁이 선비가 감독관으로서 이순신의 수영으로 사뭇 당당히 내려온 것이었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정유년 11월 4일 맑음.
아침 일찍 새로 집 짓는 곳으로 올라갔다. 이길원이 그곳에서 아직도 머물고 있었다. 진도군수 선의문(宣義問)이 찾아왔다.
명량에서 크게 이기고 이순신이 장계를 올려보낸 지 한 달이 넘어서야 논공행상이 마침내 주어진다. 선전관 일행은 오지 않고 조정의 명에 따라 도원수의 군관이 상공(賞功)을 시행한다.
거제현령 안위가 정3품 통정대부에 오르고, 전투에 참여한 수령들과 군관들 모두 승진하게 되지만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에겐 은자 스무 냥이 주어진다.
상공에 대한 정경달의 불만은 이미 극에 달해 있었다.
“은자 고작 스무 냥이 전부라니, 이런 괘씸한 놈들!”
종사관 정경달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한참을 식식거렸다.
명나라 장수들이 명량대첩을 승리로 장식한 총사령관 이순신을 거듭 영웅으로 치켜세우자, “그저 작은 승리일 뿐입니다.”라고 일축하며 굽신거렸던 임금이 아니던가. 조선의 군사들이나 의병들이 세운 공은 그저 미미할 뿐이고 모두가 상국(上國)인 명나라가 구해준 덕분에 조선이 살아남았다는 갖가지 찬사를 줄줄이 늘어놓는가 하면, 위태로운 나라를 구해준 ‘재조지은(再造之恩)’의 은혜를 절대 망각해선 안 된다며 대신들 앞에서 몇 번이고 언명(言明)하던 임금이 아니던가.
고니시가 이중첩자로서 보낸 요시라(要時羅)에게 현혹돼 착수금으로 은자 80냥을 선뜻 건네던 임금이었다. 간사하기 짝이 없는 그자를 즉석에서 정3품 절충장군으로까지 승진시켰던 임금이었다. 여태 마음에 담아둘 만큼 이순신의 그때 그 항명이 그리도 서운했던 거였을까, 그 은자 스무 냥에 스며들었을 임금의 속내가 몹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부하 군관들이 그래도 어쨌든 모두 승진한 것만으로도 통제사 이순신은 그저 감읍할 따름이었다.
정유년(1597년) 11월 17일
비가 계속 내렸다. 양호의 파견관이 포고문 여러 장과 면사첩을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추적추적 비는 내리고, 쉴 새 없이 그어대는 빗줄기를 공허한 눈길로 바라보며 이순신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왜군에 협력한 자들까지도 용서해주겠다는 포고문과 통제사 이순신을 절대 죽이지 말라는 명나라 황제의 면사첩을 들고 양호의 파견관이 그를 찾아온 것이었다. 임금은 이순신의 포상에 인색했으나 수군 총사령관 진린과 경리이자 명군총사령관 양호와 마귀 등 명나라 장수들은 생각이 달랐다. 그들은 이순신을 조선 최고의 장군으로 꼽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치켜세웠다. 이순신의 포상에 그러나 조정이 내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까탈스럽고 선을 확실히 그을 줄 아는 명군총사령관 양호가 천자께 직접 아뢰고 면사첩을 보내온 것이었다.
명량에서 해전이 벌어졌던 정유년(선조 30년)은 명의 만력제 25년에 해당하는 시대로 명나라 연호를 스스로 채용하여 사용한 선조라는 사실을 참작하면, 명 천자의 면사첩은 형 집행정지 명령과도 같은 문서인 거였다. 공과 사를 분명히 하고 감정표현이 확실한 명나라 선전관(宣傳官) 양호가 조선의 임금에게 전해오는 그것은 일종의 경고와도 같은 명령인 거였다.
면사첩에 이순신의 황망한 눈길이 한동안 씁쓸히 머물렀다. 임금은 어느 날 갑자기 강해진 신하를 어떻게든 죽이려 혈안이 돼 있고, 명나라 천자는 서둘러 면사첩까지 내려보내 힘없는 조선의 신하를 살리려 애쓰고 있다니, 통탄이 절로 나오는 일이었다.
“이건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나으리?”
환도 위 벽에다 척 붙여놓은 면사첩을 고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줄곧 분을 삭이던 종사관 정경달이 마침내 따지듯 그에게 묻는 것이었다. 이순신은 그러나 아무 말이 없었다. 이순신이 한동안 딱히 답이 없자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정경달이 이윽고 불만을 토한다.
“정말이지 배은망덕한 것들입니다. 쓰러져가는 나라를 목숨 바쳐가며 지켜낸 충신의 공을 치하해주진 못할망정 고작 은자 스무 냥에, 죽이진 않고 다만 살려만 주겠다니…… 어쨌든 극형만은 면하게 해주겠다니…… 이런 몰상식하고 괘씸한 놈들을 다 봤나…….”
그의 불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의 분노는 이제 조정의 대신들과 임금을 향하고 있는 것이었다. 흐려진 눈으로 벽에 걸린 면사 문서를 그저 멍하니 올려다볼 뿐, 이순신은 그러나 오래도록 아무 말이 없었다. 몸을 한 번 더 부르르 떨어대고 나서 핏대를 세워가며 종사관 정경달이 결연한 어조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임꺽정이 완성하지 못한 혁명에 이 나라 백성들이 아직도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나으리. 나리를 무조건 믿고 추앙하는 백성들이 이렇듯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무수한 선비들이 날마다 혀를 차대며 잘못 돼가고 있는 이 나라의 현실을 개탄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겐 만 명이 넘는 군사들이 있습니다, 나으리! 명나라 천자와 장수들 또한 대감을 조선 최고의 장군으로 지금까지도 확실히 인정하고 있습니다, 대감!”
정경달은 한 번 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입술을 깨물며 하던 말을 다시 이어갔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우리에게 스스로 찾아온 겁니다, 나으리…….”
이순신은 그러나 말없이 잠자코 그저 듣기만 한다. 종사관 정경달은 계속 지껄인다.
“쓸데없는 당쟁으로 나라를 망가뜨리는 놈들을 척결하고 새판을 짜야 할 이때, 우리가 이젠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겐 강력한 군대가 있습니다, 나으리. 이 몸이 적어도 군사들 천 명 이상 더 모으는 건 여반장입니다, 대감…….”
이순신이 타이르듯 조용히 말했다.
“역성혁명은 단 한 번으로 족한 걸세.”
“썩어 문드러진 조정과 은혜를 망각한 임금을 그냥 이렇게 지켜보기만 하실 겁니까? 그냥 지켜보기만 하시다가 놈들에게 꼼짝없이 또 당하겠다는 겁니까, 대감?”
“…….”
“명나라가 뒤에 있고, 대감을 추앙하며 무조건 따르는 백성들이 대감의 뜻을 끝까지 존중해줄 겁니다. 목숨 걸고 우리에게 힘을 실어줄 장군들도 이 몸이 언제든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나으리…….”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식식거리며 거듭 부추기는 정경달을 노려보며 이순신은 그러나 호되게 꾸짖는다.
“나더러 만고의 역적이 되라는 건가! 이 나라 조선이 대체 누구 때문에 오늘까지도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허둥대는지 자네는 아는가……!”
“…….”
“역사의 물줄기는 누구든 함부로 바꿀 수 없는 법이네. 탐욕스러운 반역자들이 역사의 흐름을 뒤집었던 대가를 지금 이 나라 불쌍한 백성들이 톡톡히 치르고 있는 걸세.”
“…….”
“누군가 언젠가는 이 나라의 뿌리 깊은 부정부패를 말끔히 도려내야 하겠지만 반역이라는 역행으로 고질병과도 같은 이 부정부패를 자네는 과연…… 말끔히 도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자기만의 부귀와 영달을 누리려 부쳐 먹을 땅도 없는 저 불쌍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자들과 한낱 물거품과도 같은 권력을 움켜쥐려고 애처로운 저 백성들을 이용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자들은 결국 같은 선상에 있는 걸세. 백성들이 있어야 임금도 있는 법일세. 백성들은 언제든 뽑아버리는 그런 잡초가 아니란 말일세. 우리 역사의 진정한 주인은 저 힘없고, 소외되고, 홀대받고, 늘 가난하기만 한 이 나라 백성들이란 말일세. 내 앞에서 그런 헛소리 한 번만 더 함부로 지껄였다간 그땐 내가 자네를 직접 참할 것이야. 알겠는가?”
“…….”
“알겠는가?”
“…….”
“…….”
【편집부 해설|제9회-2】명량의 승리는 전쟁을 바꾸었지만 조선을 바꾸지는 못했다.
제9회-2는 전투 이후 드러나는 정치 현실을 정면으로 보여준다. 조정은 승리의 주인공을 환영하기보다 오히려 경계한다. 명량대첩의 영웅 이순신에게 내려진 포상은 고작 은자 스무 냥이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의 서운함을 넘어, 국가 권력이 지닌 불안을 드러낸다. 공이 큰 장수의 존재는 왕권에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었고, 대신들은 당쟁 속에서 국가의 운명을 소모하고 있었다.
소설은 이 대목에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과연 정치에서도 이긴 나라일까.
명량의 승리 뒤에 드리운 조정의 그림자는 이 질문을 더욱 깊게 만든다.
이 장면은 단순한 포상 문제를 넘어 조선 정치의 구조적 긴장을 드러낸다. 명량대첩의 실질적 승리자는 이순신이었지만, 조정은 그의 공을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이유는 분명했다. 전쟁 영웅의 권위가 커질수록 왕권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명나라 장수들은 이순신의 군사적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명 황제는 면사첩까지 내려 그의 안전을 보장하려 했다. 그 결과 역설적인 상황이 만들어진다.
자국의 왕은 충신을 경계하고, 외국의 황제는 그를 보호한다.
이 장면은 임진왜란의 군사역사뿐 아니라 조선 정치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순간이다.
【본문 용어 해설|제9회-2】
• 고하도 高下島 Gohado Island 전라남도 목포 앞바다에 위치한 섬으로, 조선 수군이 명량대첩 이후 임시 통제영을 설치한 전략 거점이다. 수심이 깊고 바람을 막아주는 지형 덕분에 함대를 정박하고 병력을 재정비하기에 유리한 천연 해군 기지였다.
• 당산 堂山 Dangsan 조선 시대 마을 공동체가 수호신을 모신 신성한 언덕이나 산을 가리킨다. 당산은 마을 의례와 공동체 질서를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 양가 良家 Respectable Family 범죄 기록이나 천민 신분이 아닌 일반 양민 가문을 의미한다. 문헌에서는 대체로 ‘평범하고 정당한 가문’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 효시 梟示 Public Display of Executed Criminal 반역이나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죄인을 처형한 뒤 그 머리를 공개적으로 내걸어 경고와 처벌의 의미를 알리던 형벌 방식이다. 국가 권력의 위엄을 보여주는 상징적 처벌이었다.
• 양밀 梁謐 Yang Mil 이순신 수군 진영에서 군량 관리와 행정 업무를 맡았던 인물로 보인다. 군량을 임의로 배분한 행위로 인해 군율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
• 도양장 導養場 Military Supply Depot 군량과 물자를 보관하고 분배하던 군사 보급 시설을 의미한다. 전쟁 수행에서 군량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행정 공간이다.
• 심사 心思 State of Mind 개인의 심리 상태나 마음속 깊은 생각을 뜻한다. 전쟁 상황에서 장수의 불안과 고민을 표현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 병선군관 兵船軍官 Naval Officer 군선의 운용과 병력 지휘, 전투 준비를 담당하던 수군 장교를 말한다. 함선 운영과 전투 지휘를 동시에 맡는 실무 지휘관이었다.
• 녹도 鹿島 Nokdo Island 전라남도 해안에 위치한 섬으로 조선 수군의 해상 방어 거점 중 하나였다. 만호가 주둔하며 남해 해역 방어와 정찰 임무를 담당했다.
• 수영 水營 Naval Headquarters 수군의 행정·군사 지휘 기능이 결합된 해군 기지. 장수의 거처, 군선 정박지, 군량 창고, 병사 숙영 시설 등이 함께 운영되는 군사 중심지였다.
• 논공행상 論功行賞 Rewarding Military Merit 전쟁이나 국가적 공적을 평가하여 관직 승진이나 포상을 내리는 국가 제도. 조선 왕조에서 공신 체계와 군사 포상의 핵심 절차였다.
• 상공 賞功 Reward for Merit 전투 공로를 평가해 포상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논공행상의 실제 시행 단계에 해당한다.
• 통정대부 通政大夫 Senior Third-Rank Official 조선 시대 정3품 당상관 관직으로 상당히 높은 행정·군사 직위였다. 지방 수령이나 군 지휘관의 승진 단계에서 중요한 관직이다.
• 재조지은 再造之恩 Grace of National Restoration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 국가를 다시 세워 주었다는 의미로 사용된 정치적 표현이다. 조선 조정이 명나라에 대한 외교적 예의를 강조할 때 자주 사용했다.
• 감읍 感泣 Deep Gratitude 큰 은혜를 받아 깊이 감사하며 눈물을 흘릴 정도의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 면사첩 免死帖 Imperial Pardon Order 황제가 특정 인물을 처형하지 말도록 명령한 문서. 사실상 형 집행을 중지시키는 보호 명령에 해당한다.
• 만력제 萬曆帝 Wanli Emperor 명나라 제14대 황제. 임진왜란 당시 조선 원군 파병을 승인한 황제로,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 환도 環刀 Korean Military Sword 조선 시대 군인이 사용하던 곡선형 군용 검. 기병과 보병 모두 사용한 대표적인 조선 군용 무기다.
• 고까운 Unpleasant / Resentful 못마땅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다.
• 천재일우 千載一遇 Once-in-a-Thousand-Years Opportunity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매우 드문 기회를 의미하는 표현이다.
• 혹세무민 惑世誣民 Deceiving and Misleading the People 거짓 주장이나 선동으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백성을 속이는 정치적 행위를 의미한다.
【현대적 의미|제9회-2】
이 대목은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국가를 위해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정치 권력 앞에서는 가장 위험한 존재가 되는 상황.
역사는 반복된다. 권력은 공을 두려워하고 진실은 종종 정치보다 늦게 인정받는다.
하지만 이순신의 선택은 분명했다. 정경달의 반란 제안을 그는 단호히 거부한다.
“역성혁명은 단 한 번으로 족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이 아니라 나라와 백성의 생존이었다. 그래서 명량 이후의 이순신은 전쟁 영웅이 아니라 권력을 거부한 장군으로 더 크게 남는다.
작가 소개
현종호 (소설가)
• 평택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외국어대학 영어학과 조기졸업
• 명진외국어학원 개원(원장 겸 TOEIC·TOEFL 강사)
• 영어학습서 《한민족 TOEFL》(1994), 《TOEIC Revolution》(1999) 발표
• 1996년 장편소설 『P』 발표
• 1998년 장편소설 『가련한 여인의 초상』, 『천국엔 눈물이 없다』 발표
• 전 국제대학교 관광통역학과 겸임교수 역임
• 현재 평택 거주, 한국문인협회 소설가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