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시대, 누구의 성장인가 ①회》 조종건 칼럼연재] 2026년 5월 3일, 한국은 AI 시대의 불평등을 처음 보았다 ― ‘반도체 6억 성과급’ 논란에서 시작된 새로운 분배갈등
    • 조종건  꺠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조종건 |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2026년 5월 3일, 한 언론보도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반도체는 6억 성과급 요구…세트부문은 구조재편 위기.” 처음에는 삼성전자 내부의 성과급 갈등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이 보도를 보면서 전혀 다른 질문을 떠올렸다. AI가 엄청난 부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면 그 부는 과연 누구에게 돌아가는가. 돌이켜보면 이날은 한국사회가 AI 시대의 새로운 불평등을 하나의 구체적인 숫자를 통해 들여다본 상징적인 날 가운데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5월 3일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026년 1분기 연결기준 57조2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반도체를 담당하는 DS(Device Solutions = 반도체)부문이 53조7천억 원을 차지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AI 데이터센터용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요 증가가 실적 급증의 주요 배경으로 지목됐다. 당시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DS부문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사용하고 기존 성과급 상한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고, 실적 전망을 단순 적용한 계산에서는 임직원 1인당 약 6억 원이라는 숫자까지 등장했다. 나는 6억 원이라는 액수가 많으냐 적으냐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왜 AI 시대에 이런 숫자가 등장하기 시작했는가이다.

      같은 회사 안에 서로 다른 세계가 생겼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같은 삼성전자 안에서도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AI 반도체 호황의 중심에 있는 DS부문은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냈지만, 스마트폰·TV·생활가전 등을 담당하는 DX(Device eXperience)부문은 반도체 가격 상승과 수익성 악화, 구조재편의 압박을 걱정하고 있었다.

      같은 날 보도에서는 삼성전자 비반도체 부문 조합원들이 노조가 DS부문의 이해관계에 지나치게 집중하고 있다며 탈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내용까지 나왔다. 여기서 우리는 AI 시대의 중요한 특징 하나를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경제적 불평등을 주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문제로 보았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에서도 거대한 격차가 만들어질 수 있다. AI를 만드는 노동자와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큰 노동자. AI 반도체 산업에 있는 노동자와 전통 제조업 노동자. AI를 통해 생산성을 급격히 높일 수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AI 관련 주식과 생산자산을 보유한 사람과 노동소득에만 의존하는 사람. AI는 기존의 계층격차 위에 새로운 격차를 하나씩 포개놓을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에서 나타난 DS와 DX의 갈등은 어쩌면 앞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질 일의 작은 예고편인지 모른다.

      그래서 5월 9일 국민청원을 제기했다

      나는 이 문제를 삼성전자 담장 안에서 벌어지는 노사문제로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5월 9일 국민청원을 통해 질문을 던졌다. “삼성노조 ‘40년치 성과급’ 논란, 왜 평택 시민과 경기도민, 그리고 국민이 사회적 비용을 떠안아야 합니까?”

      청원의 취지는 노동조합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노동권은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중요한 기본권이다. 기업이 큰 성과를 냈다면 그 성과를 만들어낸 노동자가 정당한 몫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경제민주주의의 질문이 기업과 노동자 사이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업 담장 밖에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공장 앞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가 있다. 반도체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가 있다. 하청노동자가 있다. 소비자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산업시설을 받아들이고 그에 필요한 도시적·환경적 부담을 함께 감당하는 지역주민이 있다. 국민청원에서도 같은 회사 내부에서조차 ‘40년치 성과급’이라는 박탈감과 DS·DX 간 갈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노사갈등의 사회적 비용이 다시 평택 시민과 협력업체·자영업자·국민에게 전가돼서는 안 된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익은 내부화하고 비용은 사회화하는 구조

      대기업은 진공 속에서 성장하지 않는다. 국민의 세금과 사회적 투자로 구축된 전력망과 도로를 사용하고, 산업용수를 이용한다. 국가의 연구개발 지원과 산업정책, 지방정부가 마련한 산업단지와 교통·주거·도시기반시설도 기업 성장의 중요한 토대가 된다. 그리고 지역주민은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발생하는 교통혼잡과 환경부담, 용수문제, 주거환경의 변화 등을 함께 감당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기업에 들어오는 인재가 어느 날 기업 안에서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가족의 오랜 양육과 돌봄이 있었고, 개인 자신의 학습과 노력도 있었다. 여기에 공교육과 대학을 통한 사회적 교육투자가 더해져 한 사람의 전문성이 형성된다. 기업은 이렇게 형성된 인재를 고용한 뒤 다시 기업 내부의 교육과 현장훈련, 기술투자를 통해 능력을 발전시키고 생산성을 높인다.

      따라서 기업의 성장을 기업 내부의 노력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개인의 노력, 부모와 가족의 돌봄, 공교육과 대학의 교육투자, 국가와 지방정부의 기반시설과 산업정책, 지역사회의 부담, 그리고 기업의 자본·기술·경영과 추가적인 인재투자가 서로 결합해 만들어낸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물론 그렇다고 기업이 창출한 이익을 사회가 모두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업은 자본을 투자하고 기술을 개발하며 시장의 위험을 감수한다. 주주는 투자위험을 부담하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과 전문성을 제공한다. 각각의 기여에는 정당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성장의 과정에는 수많은 사회적 기여와 비용이 들어가는데, 성과를 나누는 단계에서는 그 관계가 지나치게 좁아지는 경우다.

      기업이 성공하면 성과는 기업·주주·노동자 등을 중심으로 배분된다. 이것 자체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산업성장의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과 충격의 비용은 협력업체와 자영업자, 지역경제와 지역주민, 나아가 국민 전체에게까지 확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익을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사회 전체가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데, 왜 위험과 비용은 사회가 넓게 부담하고 성장의 과실에 참여할 통로는 상대적으로 좁은가.

      국민청원에서 내가 문제 삼은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위험과 비용은 사회가 나누어 부담하지만 이익은 담장 안으로 집중되는 구조. 이를 나는 ‘이익은 내부화하고 피해와 비용은 사회화하는 구조’라고 보고자 한다. 국가가 구축한 전력망과 기반시설, 연구개발과 산업정책, 지방정부의 지원, 부모와 가족의 양육, 개인의 오랜 노력, 공교육과 대학의 인재양성, 그리고 지역주민이 감당하는 각종 사회·환경적 부담이 기업 성장의 넓은 토대를 형성한다. 그런데 성과배분의 구조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기여가 충분히 보이지 않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그 비용이 다시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면 성장의 책임구조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AI 시대에는 이 문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AI와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자본과 기술뿐 아니라 전력·물·데이터·고급인재·공공 연구개발·도시 인프라를 필요로 한다. 기업의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할수록 그 성장의 기반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성장의 과실과 전환비용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따라서 쟁점은 기업의 정당한 이익을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기업의 정당한 몫을 인정하면서도, 성장에 기여한 노동자·시민·지역사회와 공공의 역할 역시 경제의 장부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AI 시대의 새로운 분배갈등은 결국 여기에서 시작된다. 누가 성장에 기여했는가. 누가 위험을 부담했는가.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기업의 담장 안에서 만들어지는 성과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담장을 떠받치고 있는 사회 전체의 기반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AI가 처음으로 ‘돈의 얼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람들은 AI를 기술의 언어로 이야기했다. AI가 얼마나 똑똑한가. 어떤 직업을 대신할 것인가.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가 앞설 것인가. 한국의 반도체 경쟁력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지만 2026년 5월 3일의 보도는 AI를 매우 현실적인 언어로 보여주었다.

      돈이다. AI 데이터센터가 증가한다. HBM과 첨단 메모리 수요가 급증한다. 반도체 회사의 영업이익이 폭발한다. 주가와 기업가치가 상승한다. 그리고 엄청난 부가 만들어지는 순간 새로운 분배갈등이 시작된다. 기업은 얼마를 가져갈 것인가. 주주는 얼마를 가져갈 것인가. 노동자는 얼마를 가져갈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의 목록에서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주체가 있다. 시민이다.

      시민은 단순한 소비자가 아니다

      시민은 그저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가전제품을 사주는 소비자만이 아니다. 산업을 떠받치는 사회를 함께 만든 사람이다. 세금을 냈다. 도로와 전력망을 만들었다. 아이들을 교육했다. 대학과 연구기관을 지원했다. 산업시설을 받아들였다. 평택시민이라면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중심으로 도시 전체가 변화하는 과정도 함께 경험했다.

      그렇다면 AI·반도체 산업에서 막대한 새로운 부가 만들어질 때 시민과 지역사회에 돌아가는 몫이 무엇인지 묻는 것은 시혜를 요구하는 일이 아니다. 경제적 가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묻는 일이다. 물론 기업가의 혁신은 보상받아야 한다. 투자자의 위험부담도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의 기여 역시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분배 논의를 끝내서는 안 된다.
      경제민주주의는 그 바깥에 있는 사람까지 바라보아야 한다.

      노동조합도 이 질문에서 예외일 수 없다

      나는 노동조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자는 거대한 기업을 상대로 개인 혼자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어렵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중요한 민주주의 제도다. 그러나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해서 모든 요구가 언제나 자동적으로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조합 역시 힘을 가진 조직이 되는 순간 자신의 결정이 다른 약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돌아봐야 한다.

      같은 기업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사업부가 있다. 협력업체 노동자가 있다. 하청노동자가 있다. 공장 주변의 영세 자영업자가 있다. 갈등이 길어질 경우 생계에 직접 타격을 받는 시민들이 있다. 국민청원에서도 “싸움은 담장 안에서 벌어지고 청구서는 담장 밖 시민에게 날아오는 구조”를 문제 삼으며, 시민을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피해 당사자로 보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제기했다. 노동권을 제한하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권과 함께 공동체에 대한 책임까지 생각하자는 것이다.

      AI 시대에는 성장과 분배의 연결고리가 달라진다

      산업화 시대에는 기업이 성장하면 많은 경우 일자리도 함께 늘었다. 공장을 더 짓는다. 사람을 더 뽑는다. 노동자는 임금을 받는다. 소비가 증가한다. 지역상권도 성장한다. 그래서 기업의 성장이 시민의 소득증가로 연결되는 통로가 비교적 분명했다.

      AI 시대에는 이 연결고리가 약해질 수 있다. AI와 로봇을 활용하면 적은 인력으로 훨씬 많은 생산이 가능해진다. 기업의 생산성과 영업이익은 몇 배 증가하는데 고용은 같은 비율로 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일자리가 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제성장의 과실을 시민에게 전달하는 새로운 통로가 필요해진다.

      앞으로 경제민주주의는 단순히 임금을 얼마 더 받을 것인가만 묻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가야 한다. 누가 생산자산을 소유하는가. 누가 AI 기업의 지분을 갖는가. 누가 데이터의 경제적 가치를 갖는가. 누가 데이터센터와 에너지시설을 소유하는가. 그리고 그 자산이 만들어내는 장기적인 수익을 누가 가져가는가. AI 시대에 불평등의 핵심은 점점 소득격차에서 자산격차로 이동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5월 3일과 5월 9일 사이에서 시작된 질문

      5월 3일 언론은 하나의 현상을 보여주었다. AI 반도체의 폭발적인 성장과 6억 원 성과급이라는 상징적인 숫자, 그리고 같은 기업 안에서도 나타난 커다란 격차였다. 나는 그로부터 며칠 뒤인 5월 9일 그 질문을 기업의 담장 밖으로 가져오고자 했다. 기업과 노조의 성과배분만이 아니라 그 산업을 떠받치는 시민과 공동체의 몫까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었다.

      이 문제는 삼성전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AI가 법률, 의료, 금융, 교육, 언론, 제조, 행정으로 확산되면 생산성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비슷한 문제가 수없이 나타날 것이다. AI를 소유한 기업은 더 커질 것이다. AI와 가까운 일부 직종의 소득은 크게 증가할 수 있다. AI 관련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훨씬 빠르게 부유해질 수 있다.

      반대로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일자리와 생계를 걱정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더 공부하라.” “더 열심히 일하라.” “AI를 배우면 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개인의 능력만큼 운동장의 구조를 보아야 한다.

      AI 시대의 첫 질문

      나는 2026년 5월 3일을 AI 시대 대한민국의 경제적 불평등이 하나의 구체적인 얼굴을 드러낸 상징적 장면으로 기억하고 싶다. 그날 우리가 본 것은 단순히 ‘6억 원 성과급’이라는 충격적인 숫자만이 아니었다. AI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부의 크기였다. 그 부를 둘러싼 내부의 갈등이었다. 그리고 그 분배구조 바깥에 시민과 공동체가 놓여 있다는 사실이었다.

      AI가 인간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국가와 기업의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시민의 삶은 더 불안해진다면 우리는 그것을 진보라고 부를 수 있는가. 그래서 《AI 시대, 누구의 성장인가》라는 40회 연재를 이 질문에서 시작하고자 한다. AI가 만들어낸 부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야 한다. 삼성이 성장하면 평택도 성장하는가. 세계적인 기업이 위치한 도시에서 기업의 성장과 시민의 성장이 서로 분리될 수 있다면, 우리가 먼저 고쳐야 할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성장의 구조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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