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건 칼럼연재 ⑮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주민주도가 사라질 때 시민사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 지원금·공모사업·위탁사업, 그리고 행정에 질문할 자유
    •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본지 발행인
      조종건
      ·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 본지 발행인

      앞선 ⑬·⑭회에서 난곡·난향 도시재생사업의 출발과 그 이후의 행정과정을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주민이 있었다. 2016년 난곡도시재생 주민모임에서 1억 2천만 원 규모의 기초사업이 시작됐다. 주민과 행정이 약 6개월 동안 실적을 쌓았고, 2017년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서울시 100억 원 규모의 사업을 유치했다. 2018년에는 국토교통부 150억 원이 추가됐다. 그 과정에서 약 50억 원 규모의 건물이 만들어졌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이 건물 조성재원 가운데 관악구 부담은 6.6%, 나머지 93.4%는 국토교통부와 서울시의 지원이었다.

      그러나 ⑭회에서 확인한 기록은 이 사건을 단순한 ‘공유재산 사용기간 종료’ 문제로만 볼 수 없게 한다. 2019년 관악구가 작성한 「난곡·난향동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는 주민주도형 지역관리조직의 역할이 제시돼 있었고, 그 사업분야 가운데 공영주차장 운영관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2022년 1월 11일 국토교통부장관은 난곡난향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을 공식 인가했다. 설립인가증에는 「협동조합 기본법」 제85조 제1항에 따른 인가라고 명시돼 있으며, 같은 날 국토교통부의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인가 알림’ 공문도 발송됐다. 담당부서는 도시재생역량과였다. 협동조합 정관에는 난곡재생활력소 운영관리와 지역 내 공영주차장 운영관리가 주 사업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흐른다. 2025년 8월 28일 관악구가 공람공고한 신림8구역 정비계획에서는 스마트공영주차장 1,086㎡와 더난곡 330㎡가 모두 ‘존치’ 대상으로 표시됐다. 신림감리교회와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이전’이라고 표시하면서 이 두 시설은 ‘존치’라고 명확하게 구분했다. 그런데 불과 18일 뒤인 9월 15일에는 난곡재생활력소 사용기간 만료가 사전 안내됐고, 이후 사용연장 불허와 변상금, 건물인도와 강제집행의 문제로 이어졌다. 물론 시설의 물리적 존치와 특정 주민조직의 사용권은 법적으로 다른 문제다.

      그러나 정책의 역사에서는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공간도 존치한다. 주차장도 존치한다. 그런데 주민주도 지역관리의 구조는 왜 지속되지 못했는가. 그리고 이제 질문은 행정만을 향할 수 없다. 이 기록들이 존재하는 동안 지역 시민사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시민사회는 왜 존재하는가

      시민사회는 행정의 반대편에 서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다. 행정이 잘하면 협력해야 한다. 좋은 정책은 함께 만들어야 한다. 시민의 요구가 잘못됐다면 그것도 말해야 한다. 그러나 행정의 판단에 의문이 있다면 질문해야 한다. 판단기준을 공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정책이 과거의 약속과 달라졌다면 왜 달라졌는지 물어야 한다. 시민이 행정기관의 조직력과 정보력, 법률적 힘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시민의 모든 주장을 무조건 옹호하는 조직이 아니다. 권력과 시민 사이에서 사실을 확인하고, 권력이 가진 힘 때문에 작은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독립적인 공공영역이다. 난곡난향 사건에서도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김경완 이사장이나 협동조합의 주장에 무조건 동의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엄격하게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2019년 계획과 2025년 행정 사이를 누가 물었는가

      이제 시민사회가 물었어야 할 질문은 과거보다 훨씬 구체적이다. 2019년 관악구는 왜 주민주도 지역관리와 공영주차장 운영관리를 도시재생활성화계획에 넣었는가. 그 계획에서 말한 주민주도 운영조직은 어떤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는가. 2022년 국토교통부장관의 설립인가를 받은 난곡난향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은 그 계획과 어떤 정책적 연속성을 갖는가. 왜 이 협동조합의 정관에는 난곡재생활력소와 지역 내 공영주차장 운영관리가 주 사업으로 들어갔는가. 2025년 8월 28일 관악구의 정비계획에서 스마트공영주차장과 더난곡을 모두 ‘존치’시켰다면, 그 시설과 주민조직의 관계는 이후 어떻게 설계됐는가. 주민조직의 사용과 지역관리 역할을 종료하거나 변경할 경우 그 자생력에 미칠 영향은 검토했는가. 대체공간은 검토했는가. 다른 수익사업이나 지역관리사업과 연결하는 방안은 검토했는가. 시민사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어느 한쪽의 편을 먼저 드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행정기록을 시간순으로 연결하고 과거의 정책과 현재의 행정 사이에 단절이 없는지를 묻는 것. 이것이 시민사회의 역할 아닌가.

      행정은 시설의 존치를 계획했다, 시민사회는 공동체의 존치를 물었어야 했다

      2025년 정비계획에는 시설의 미래가 기록돼 있다. 스마트공영주차장. ‘존치’. 더난곡. ‘존치’. 면적도 기록돼 있다. 주차장은 1,086㎡다. 더난곡은 330㎡다. 도시계획의 표에는 존치와 이전을 구분하는 칸도 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시설을 기반으로 활동해 온 주민공동체의 미래는 어느 계획표에 기록돼 있었는가. 건물의 미래는 계획했다. 주차장의 미래도 계획했다. 그렇다면 주민조직의 미래는 누가 물었는가. 행정이 그 질문을 하지 않았다면 시민사회가 물었어야 했다. 행정은 시설의 존치를 계획했다. 시민사회는 공동체의 존치를 질문했어야 했다.

      시민사회와 행정을 묶는 보이지 않는 끈

      그런데 현실의 시민사회가 행정에 이렇게 질문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지역 시민사회는 지방정부와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보조금을 받는다. 공모사업에 참여한다. 환경·복지·교육·문화·마을공동체 사업을 위탁받기도 한다. 각종 위원회와 협의체에 들어간다. 회의공간이나 행사장을 협조받는다. 행정과 공동행사를 열기도 한다. 이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지방자치를 위해서는 행정과 시민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 행정이 알지 못하는 현장을 시민사회가 알고 있고, 행정에 없는 전문성과 경험을 시민사회가 가진 경우도 많다. 문제는 협력이 의존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 말을 했다가 내년 사업은 어떻게 되지?”

      한 시민단체가 구청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해보자. 내부에서는 모두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말하려는 순간 여러 계산이 시작된다. 내년 공모사업은 괜찮을까. 현재 위탁받은 사업은 어떻게 될까. 담당 부서와 관계가 나빠지지 않을까. 다음 행사 때 공간을 빌릴 수 있을까. 위원회에서 빠지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도 계속 구청과 만나야 하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여기에서 한 가지는 분명하게 해야 한다. 나는 관악구가 실제로 비판적인 시민단체에 불이익을 줬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말해서도 안 된다. 내가 묻는 것은 훨씬 구조적인 문제다. 누가 “말하지 마라”고 명령하지 않아도 관계와 의존이 사람을 침묵시킬 수 있지 않은가. 행정의 직접적인 압력이 없어도 지원사업과 공모사업, 위탁사업과 공간협조에 대한 기대가 시민사회 내부의 자기검열로 작동할 수 있다. 그 자기검열은 공식적인 통제보다 훨씬 발견하기 어렵다.

      지원금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시민단체는 지방정부의 돈을 받아서는 안 되는가. 그것도 답이 아니다. 시민사회 활동에는 비용이 든다. 환경을 조사하는 데 돈이 든다. 복지사업에도 돈이 든다. 교육·문화사업에도 예산이 필요하다. 활동가도 살아야 한다. 공익적인 시민활동에 공공예산을 지원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정당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을 받느냐가 아니다. 돈을 받은 뒤에도 독립적으로 말할 수 있느냐다. 구청의 지원을 받으면서도 구청의 잘못을 비판할 수 있는가. 공모사업을 수행하면서도 담당 부서의 정책에 반대할 수 있는가. 위원회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소수의견을 낼 수 있는가. 공간을 협조받으면서도 판단기준과 자료를 공개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그래서 시민사회는 자기 자신에게 매우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우리가 받은 것은 지원금인가, 침묵의 대가인가.

      협력할 자유만큼 반대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건강한 민관협력의 수준은 행정과 시민단체가 얼마나 많은 행사를 함께했는가로 측정할 수 없다. 진짜 수준은 의견이 다를 때 드러난다. 시민단체가 구청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결정의 근거가 무엇입니까.” “2019년의 계획과 지금의 결정이 왜 다릅니까.” “더난곡과 스마트공영주차장은 존치하면서 주민조직의 역할은 왜 종료됩니까.” “당사자의 이야기를 더 들어야 합니다.” “관련 자료를 공개해 주십시오.” “이 정책에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뒤에도 다음 날 다른 공익사업을 놓고 정상적으로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협력할 자유만큼 반대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비판하면 관계가 깨지고 동의해야 협력이 유지된다면 그것은 건강한 협치라고 하기 어렵다.

      협치는 칭찬의 교환이 아니다

      우리는 ‘협치’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구청이 행사를 만들고 시민단체가 참여한다. 구청장이 축사한다. 시민사회 인사들이 자리를 채운다. 위원회에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정책 발표회에 시민사회 이름이 올라간다. 이것도 협치의 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협치의 진짜 수준은 갈등이 발생했을 때 드러난다. 행정과 시민사회의 판단이 다를 때 시민사회가 독립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행정은 그 비판을 견딜 수 있는가. 비판을 견디지 못하는 협치는 협치가 아니라 순응을 요구하는 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 협치는 항상 같은 의견을 갖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채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난곡난향 사건에서 시민사회는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

      시민사회가 협동조합의 편에 무조건 섰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시민사회는 더 엄격했어야 한다. 협동조합이 주장하는 사실도 검증해야 했다. 관악구의 설명도 검증해야 했다. 2016년 주민모임은 실제 어떤 역할을 했는가. 1억 2천만 원의 기초사업은 어떻게 진행됐는가. 2017년 서울시 100억 원과 2018년 국토교통부 150억 원의 사업은 어떤 경위로 확보됐는가. 50억 원 규모 건물의 재원분담 구조는 정확한가. 2019년 관악구의 도시재생활성화계획은 주민주도 조직을 어떻게 구상했는가. 2022년 국토교통부 설립인가를 받은 협동조합은 실제 어떤 활동을 했는가. 공영주차장 운영관리사업은 실제로 어느 단계까지 추진됐는가. 운영주체가 변경됐다면 언제, 어떤 이유로 변경됐는가. 2025년 8월 28일 더난곡과 스마트공영주차장을 존치시키면서 관악구는 주민조직의 향후 역할을 어떻게 검토했는가. 사용연장 불허의 객관적인 기준은 무엇이었는가. 대체공간은 검토했는가. 변상금과 건물인도, 강제집행으로 가기 전 다른 해결방법은 정말 없었는가. 이것이 시민사회가 해야 할 질문이었다. 누구의 편을 먼저 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

      중재는 양쪽에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행정과 오래 협력한 시민사회에는 한 가지 위험이 있다. 행정의 사정을 너무 잘 알게 되는 것이다. 예산이 어렵다는 것도 안다. 감사의 부담도 안다. 공무원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것도 안다. 법률적 제약도 안다. 이런 이해는 필요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시민에게 행정의 입장을 대신 설명하는 역할만 하게 될 위험이 있다. “구청도 사정이 있습니다.” “공무원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좋게 해결하십시오.” “괜히 싸워서 무엇합니까.” 실제로 그런 조언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려면 먼저 구청의 ‘사정’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왜 2019년에는 주민주도 지역관리를 계획했고 이후에는 다른 판단을 했는지 물어야 한다. 왜 더난곡과 스마트공영주차장은 존치하는데 기존 주민조직의 지역관리 역할은 지속되지 못했는지 설명을 요구해야 한다. 반대로 관악구의 결정에 합리적인 이유와 객관적 기준이 확인된다면 그것 역시 주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중재는 양쪽에 좋은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니다. 양쪽의 주장을 사실 앞에 세우는 것이다.

      주민의 노력은 어느 결산서에 기록되는가

      난곡난향 도시재생의 역사를 돈으로 보면 숫자가 보인다. 1억 2천만 원. 100억 원. 150억 원. 50억 원. 6.6%. 93.4%. 그러나 그 숫자 사이에는 결산서에 제대로 기록되지 않는 것이 있다. 주민들의 시간이다. 주민모임을 만든 시간. 회의에 참여한 시간. 주민을 설득한 시간. 사업계획을 준비한 시간. 갈등을 조정한 시간. 협동조합을 만든 시간.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쓴 시간.

      나는 앞선 글에서 이것을 주민들의 ‘보이지 않는 출자금’이라고 표현했다. 공공예산이 도시재생의 물질적 기반을 만들었다면 주민들의 시간과 노동은 공동체의 사회적 기반을 만들었다. 2025년 정비계획에는 더난곡 330㎡와 스마트공영주차장 1,086㎡의 미래가 ‘존치’라는 한 단어로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주민들의 시간과 관계, 지역관리 경험과 공동체의 미래를 기록하는 칸은 어디에 있는가. 행정의 계획표에 그 칸이 없다면 시민사회라도 기억해야 한다. 행정의 장부가 기록하지 못하는 시민의 기여를 기억하는 것 역시 시민사회의 역할이다.

      성공할 때는 ‘주민주도’, 갈등할 때는 ‘점유자’인가

      이 사건은 시민사회에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도시재생사업을 유치하고 수백억 원의 공공재원이 들어올 때 주민은 사업의 주체였다. 주민참여는 성과였다. 주민공동체는 도시재생의 자산이었다. 2019년 관악구 계획에서도 주민주도 지역관리가 강조됐다. 2022년 주민들은 실제 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고 국토교통부장관의 설립인가까지 받았다.

      그런데 사업 종료 이후 법률분쟁에서는 이들이 공유재산을 반환해야 하는 사용자 또는 점유자의 위치에 서게 됐다. 법적으로는 그렇게 표현될 수 있다. 현재의 권리관계를 법원이 판단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시민사회까지 주민공동체를 그 법률적 명칭으로만 기억해야 하는가. 법원은 현재의 권리관계를 판단하지만 시민사회는 그 권리관계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를 함께 기억해야 한다. 사업을 따낼 때 주민주도의 주체였던 사람들을 갈등이 시작됐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한 ‘점유자’의 언어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가 행정의 완충장치가 될 때

      시민사회가 주민에게만 이해와 양보를 요구하고 행정에는 같은 수준의 설명과 양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면 균형은 무너진다. 행정과 시민 사이에서 갈등을 줄이는 역할은 중요하다. 그러나 갈등을 조정하는 것과 갈등을 덮는 것은 전혀 다르다. 시민사회의 역할이 행정의 결정을 주민에게 이해시키는 것에 머문다면 어느 순간 시민사회는 시민과 행정의 다리가 아니라 행정의 ‘완충장치’가 될 수 있다.

      난곡난향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용기간이 끝났으니 어쩔 수 없다”고만 말해서는 부족하다. 그 전에 2019년의 주민주도 정책은 어떻게 평가됐는지 물어야 한다. 국토교통부 설립인가를 받은 주민조직의 지속가능성은 어떻게 검토됐는지 물어야 한다. 더난곡과 스마트공영주차장을 모두 존치하면서 주민조직의 역할은 왜 이어지지 않았는지 물어야 한다. 문제가 해결되어 조용한 사회와 사람들이 말하지 못해서 조용한 사회는 전혀 다르다.

      행정과 가까운 것이 시민사회의 성공인가

      시민단체가 구청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좋은 정책은 함께 추진해야 한다. 행정과 시민사회가 서로 신뢰하면 지역의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정과 얼마나 가까운지가 시민사회의 영향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구청장이 행사에 얼마나 자주 참석하는가. 공무원들과 얼마나 친한가. 위원회에 몇 명이 참여하는가. 공모사업을 얼마나 많이 수행하는가. 이것이 시민사회의 성공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다. 시민에게 필요한 순간 어디에 있었는가. 주민이 행정 앞에서 혼자 자신의 권리를 설명할 때 자료를 함께 읽어주었는가. 행정의 계획과 실제 처분을 비교해보았는가. 전문가를 연결했는가. 정보공개를 요구했는가. 구청의 설명도 검증하고 주민의 주장도 검증했는가. 잘못된 주민의 주장이라면 그것도 바로잡았는가. 이것이 시민사회의 존재 이유다.

      좋은 행정은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사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문제에는 행정의 책임도 있다. 시민사회에 독립하라고 요구하면서 지원구조와 심사구조가 행정에 지나치게 종속돼 있다면 실제 독립은 쉽지 않다. 공모사업과 위탁사업의 선정기준은 투명해야 한다. 누가 심사하는지도 명확해야 한다. 왜 선정됐고 왜 탈락했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행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던 시민단체도 다른 단체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는다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위원회 구성 역시 마찬가지다. 행정에 우호적인 사람들만 참여한다는 의심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기서도 나는 관악구가 실제로 비판적인 단체에 불이익을 줬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의심이 구조적으로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다. 좋은 행정은 자신을 칭찬하는 시민사회가 많은 행정이 아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사회도 편안하게 존재할 수 있는 행정이다.

      지원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판단까지 넘겨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공공예산을 받을 수 있다. 위탁사업을 수행할 수도 있다. 공모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다. 행정의 공간을 이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는 넘겨서는 안 된다. 판단의 독립성이다. 지원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침묵까지 넘겨서는 안 된다. 공모사업을 받았어도 잘못된 행정은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 친한 공무원이 담당하더라도 정책의 문제는 질문해야 한다. 반대로 행정과 갈등이 있다고 해서 좋은 정책까지 반대해서는 안 된다. 독립은 무조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자기 판단을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데 시민사회만 탓할 수 있는가

      여기에서 또 하나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 시민사회는 왜 행정지원에 의존하게 됐는가. 시민들은 시민단체에 많은 일을 요구한다. 환경을 지켜달라고 한다. 부당한 행정을 감시해 달라고 한다. 억울한 주민을 도와달라고 한다. 정보공개를 해달라고 한다. 소송자료를 검토해 달라고 한다. 언론에도 알려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가. 시민단체가 독립적인 회비와 후원으로 유지되지 못하면 결국 행정의 공모사업과 지원사업에 의존하기 쉽다. 그 의존이 커질수록 독립적인 비판은 어려워질 수 있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독립을 시민단체에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시민에게도 책임이 있다.

      시민참여는 시민단체를 돕는 봉사가 아니다

      시민들은 때때로 시민운동을 몇몇 활동가의 직업처럼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러나 민주주의는 대리운전이 아니다. 시민단체가 시민의 주권을 대신 행사해 주는 조직도 아니다. 시민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 작은 회비를 낼 수 있다. 회의에 한 번 참석할 수 있다. 자신의 전문지식을 나눌 수 있다. 공문 한 장을 함께 읽어줄 수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함께할 수 있다. 현장을 확인할 수도 있다. 행정에 질문할 수도 있다. 시민참여는 시민단체를 도와주는 봉사가 아니다. 시민이 자신의 주권을 일상에서 행사하는 일이다. 백 명이 한 명의 활동가에게 모든 일을 맡기는 시민운동보다 백 명이 조금씩 자기 몫을 감당하는 시민운동이 강하다.
      그런 시민사회라야 행정지원 하나가 줄어든다고 흔들리지 않는다.

      세 주체에게 각각 책임이 있다

      결국 이 문제를 시민사회 어느 한쪽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없다. 세 주체가 각각 책임을 져야 한다. 시민사회에는 독립할 책임이 있다. 행정의 지원을 받더라도 판단과 발언의 독립성을 지켜야 한다. 시민에게는 참여할 책임이 있다. 활동가 몇 사람에게 민주주의를 맡기고 결과만 요구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행정에는 시민사회의 독립과 시민의 참여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비판적인 시민단체도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공모와 위탁, 지원과 공간협조가 시민사회의 발언을 통제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도록 제도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책임이 함께 작동할 때 시민사회는 행정의 하청조직도 아니고 무조건적인 반대조직도 아닌 민주주의의 독립적인 축이 될 수 있다.

      시민이 참여하지 않은 빈자리는 다른 권력이 채운다

      민주주의에는 빈자리가 오래 남아 있지 않는다. 시민이 참여하지 않으면 행정이 더 많은 결정을 한다. 시민사회가 침묵하면 권력의 설명이 사실상 유일한 설명이 된다. 언론이 질문하지 않으면 보도자료가 공론장을 대신한다. 주민이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소수의 조직과 사람이 결정을 주도한다. 그래서 시민참여는 민주주의의 장식이 아니다. 시민이 참여하지 않은 빈자리는 결국 다른 권력이 채운다. 시민사회가 독립해야 하는 이유도 행정이 항상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권력이든 질문과 견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누구의 편이었는가

      이제 다시 이 연재의 출발점으로 돌아가자.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난곡난향 사건에 가져온다고 해서 관악구를 ‘강도’라고 규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든 행정갈등에 강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김경완 박사와 협동조합의 모든 주장이 옳다고 전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갈등 속에서 한 주민공동체가 행정심판과 소송, 변상금과 강제집행이라는 제도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면 다른 질문은 가능하다. 누가 그 곁에 멈출 것인가. 사마리아인은 재판관이 아니었다. 누가 몇 퍼센트 잘못했는지부터 계산하지 않았다. 먼저 가까이 갔다. 오늘의 시민사회도 마찬가지다. 공문을 읽을 수 있다. 정보공개청구를 할 수 있다. 2019년 계획서를 찾아볼 수 있다. 국토교통부 설립인가증을 확인할 수 있다. 협동조합의 정관을 읽을 수 있다. 2025년 정비계획을 비교할 수 있다. 관악구의 설명도 들을 수 있다. 협동조합의 주장도 검증할 수 있다. 법률가와 전문가를 연결할 수도 있다. 이웃이 된다는 것은 당사자의 모든 주장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을 확인할 때까지 그를 혼자 두지 않는 것이다.

      연대는 축사하고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연대라는 말을 자주 쓴다. 행사에 참석한다. 축사를 한다. 현수막에 이름을 올린다. 사진을 찍는다. SNS에 응원의 글을 올린다. 그것도 연대의 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연대의 진짜 무게는 더 불편한 자리에서 드러난다. 누군가 수십 장의 공문을 들고 찾아왔을 때다. 행정심판 재결서를 읽어달라고 할 때다. 변상금 고지서를 받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할 때다. 강제집행이 현실의 문제가 됐을 때다. 그때 자기 시간을 내놓는 것. 자료를 함께 읽는 것. 행정에도 질문하는 것. 당사자의 틀린 주장도 바로잡는 것. 연대는 축사하고 사진을 찍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 혼자 행정기관 앞에 섰을 때 옆자리를 채우는 것이다.

      행정과 사이가 좋은 시민사회보다 시민에게 필요한 시민사회

      시민사회는 행정의 적이 아니다. 좋은 행정과는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행정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시민사회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더 중요한 기준이 있다. 시민에게 필요한가. 시민이 행정 앞에서 혼자가 됐을 때 찾아갈 수 있는가. 자료를 함께 확인해 주는가. 행정의 설명과 시민의 주장을 모두 검증하는가. 잘못된 행정이라면 관계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질문할 수 있는가. 시민의 주장이 잘못됐다면 그것 역시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시민사회가 행정도 건강하게 만든다. 비판이 사라진 행정은 편할 수 있다. 그러나 편한 행정이 반드시 좋은 행정은 아니다. 행정과 사이가 좋은 시민사회보다 시민에게 필요한 시민사회가 더 중요하다.

      난곡난향이 시민사회에 묻는 것

      이제 기록은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2019년 관악구는 주민주도 지역관리를 계획했다. 2022년 1월 11일 국토교통부장관은 난곡난향마을관리사회적협동조합의 설립을 인가했다. 협동조합의 정관에는 난곡재생활력소와 지역 내 공영주차장 운영관리가 주 사업으로 들어갔다. 2025년 8월 28일 관악구의 신림8구역 정비계획에서는 스마트공영주차장과 더난곡 모두 ‘존치’ 대상으로 계획됐다. 그리고 주민공동체는 사용연장 불허와 변상금, 건물인도와 강제집행이라는 현실 앞에 서게 됐다. 누가 법적으로 옳은지는 법과 사실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시민사회에는 그와 다른 질문이 있다. 공간의 존치는 계획했는데 공동체의 존치는 누가 물었는가. 주차장의 미래는 계획했는데 주민주도의 미래는 누가 질문했는가. 그리고 가장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그 질문을 행정에 던져야 할 때 시민사회는 어디에 있었는가. 지원사업 때문이었는가. 공모사업 때문이었는가. 위탁사업 때문이었는가. 공간협조 때문이었는가. 행정과의 관계가 불편해질까 두려웠는가. 아니면 시민들 스스로 시민사회에 모든 책임을 맡겨놓고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마 하나의 이유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시민사회에는 독립할 책임이 있다. 시민에게는 참여할 책임이 있다. 행정에는 그 독립과 참여를 보장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세 주체 모두에게 공통된 책임이 하나 있다. 누군가 혼자 제도의 무게를 감당하도록 두지 않는 것이다. 모든 갈등에는 강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갈등 속에서 우리는 이웃이 될 수 있다. 난곡난향 사건이 시민사회에 묻는 것도 결국 그 질문이다. 우리는 누구의 눈치를 보았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 우리는 누구의 곁에 멈추었는가.

      다음 ⑯회에서는 다시 김경완 이사장과 난곡난향 주민공동체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한다. 사실을 확인했다. 법과 행정을 살펴보았다. 시민사회의 구조도 물었다.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해야 한다. 변상금과 강제집행 앞에서 누가 끝까지 이웃으로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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