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시민사회재단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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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생에너지 시설과 산업단지를 배경으로, 에너지 전환의 네 가지 질문을 던진다. 누가 결정하고, 부담하며, 소유하고, 이익을 가져가는가? 시민의 참여와 공동소유를 통해 에너지 민주주의를 경제민주주의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AI 재구성=주간시민광장] |
앞선 글에서는 시민을 전기요금을 내는 소비자(consumer, Verbraucher)가 아니라 발전자산(productive assets, Produktivvermögen)의 일부를 소유하는 주체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면 한 가지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왜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가. 민주주의라고 하면 우리는 대개 선거를 생각한다. 한 사람에게 한 표가 있고, 권력이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게 독점되지 않도록 견제하며, 시민이 중요한 공적 의사결정(public decision-making, öffentliche Entscheidungsfindung)에 참여하는 제도를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경제에서는 어떠한가. 어떤 지역이 산업발전의 비용과 환경부담을 떠안는데 중요한 결정은 외부에서 이루어진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생산자산은 외부자본이 소유한다. 그 자산에서 발생한 이익도 외부로 빠져나간다. 지역에는 시설과 부담만 남는다.
과연 이것을 민주적인 경제질서(democratic economic order, demokratische Wirtschaftsordnung)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 Energiewende)을 바라볼 때 네 가지 질문을 반드시 함께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결정하는가. 누가 부담하는가. 누가 소유하는가. 그리고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 내가 2026년 8월 20일 평택시재생에너지확대정책토론회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네 질문이었다. 석탄과 LNG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바꾸더라도 소유와 의사결정, 이익배분 구조가 그대로라면 사회적 전환(social transformation, gesellschaftlicher Wandel)은 절반밖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다.
에너지원만 바뀐다고 민주적인 전환은 아니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요하다. 기후위기(climate crisis, Klimakrise)를 막아야 한다. AI와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도 새로운 에너지체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태양광 패널의 숫자와 발전량만 늘어나면 성공한 것일까. 가령 평택에 거대한 재생에너지 사업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보자. 평택의 땅을 사용한다. 평택의 건물과 공공시설을 활용한다. 평택시민이 사업의 환경적·사회적 영향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외부자본이 투자하고, 외부기업이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권(operating rights, Betriebsrechte)도 외부기업이 가지며, 발전수익(electricity generation revenue, Stromerzeugungserlöse)까지 지역 밖으로 가져간다.
그렇다면 에너지원은 바뀌었지만 경제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에너지전환 토론문에서도 평택의 공간과 시민의 사회적 수용성(social acceptance, gesellschaftliche Akzeptanz)을 기반으로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면서 외부자본이 투자하고 외부기업이 운영하며 그 수익까지 밖으로 가져간다면 평택에는 발전시설만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친환경 발전시설이 들어섰다는 사실만으로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 gerechter Übergang)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탄소의 전환과 함께 권한의 전환도 이루어져야 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간다’
우리에게 익숙한 속담이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간다.” 힘든 일과 부담은 한쪽이 감당하는데 그 결과로 발생한 이익은 다른 사람이 가져가는 구조를 풍자하는 말이다. 이 문제는 에너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개발(real estate development, Immobilienentwicklung을 생각해 보자. 국민 세금으로 도로를 만든다. 공원을 조성한다. 학교가 들어온다. 지하철과 철도가 생긴다. 각종 기반시설이 확충된다. 그 결과 주변 토지가격이 오른다. 그런데 그 가치 상승분은 누구의 것인가. 사회 전체가 비용을 부담해 경제적 가치(economic value, wirtschaftlicher Wert)를 만들었지만 상당한 이익은 이미 토지와 자산을 보유한 사람에게 돌아간다.
내가 「에너지 전환에서 경제민주주의로」에서 부동산 문제를 끌어온 이유도 이것이다. 경제는 성장하는데 왜 많은 시민의 삶은 더 불안해지는지 물으려면, 얼마나 많은 부(wealth, Vermögen)가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그 가치가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를 보아야 한다. 에너지 전환도 같은 문제를 반복할 수 있다. 시민이 부담한다. 기업과 지역사회가 전환의 비용을 감당한다. 그런데 자산과 수익은 소수 사업자에게 집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에너지원을 바꿨을 뿐 경제의 문법은 바꾸지 못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권력의 분산이다
민주주의의 중요한 원리는 권력의 분산(distribution of power, Machtverteilung)에 있다. 왕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시대에서 시민이 결정에 참여하는 시대로 넘어왔다. 세금을 누가 결정할 것인가.법을 누가 만들 것인가. 국가권력을 누가 통제할 것인가. 정치민주주의의 역사는 결국 권한을 나누는 역사였다.
그렇다면 경제적 권력(economic power, wirtschaftliche Macht)은 어떠한가. 자산을 가진 사람은 소득을 얻는다. 소득으로 다시 자산을 산다. 자산은 또 다른 소득을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경제적 힘은 자연스럽게 특정 집단에 집중될 수 있다. AI 시대에는 이 현상이 더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 반도체(semiconductor, Halbleiter). 데이터. 알고리즘. 클라우드. 데이터센터(data center, Rechenzentrum). 그리고 전력(electric power, elektrische Leistung). 이런 새로운 생산수단(means of production, Produktionsmittel)을 누가 소유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경제적 힘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민주주의(economic democracy, Wirtschaftsdemokratie)는 부자가 번 돈을 나중에 세금으로 조금 더 나누는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생산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넓힐 것인가의 문제까지 가야 한다.
첫 번째 질문, 누가 결정하는가
에너지사업을 추진할 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결정권(decision-making authority, Entscheidungsmacht)이다. 많은 사업에서 주민은 마지막에 등장한다. 행정이 계획한다. 사업자가 투자계획을 만든다. 전문가가 입지를 검토한다. 사업 방향이 거의 정해진 뒤 주민설명회를 연다. 그리고 주민에게 사업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한다. 흔히 이를 ‘주민수용성 확보’라고 부른다.
그러나 주민은 정책을 받아들여야 하는 객체가 아니다. 자신의 공간과 삶에 직접 영향을 받는 권리의 주체(rights-holder, Rechtsträger)다. 그래서 토론자료에서는 시민참여의 방향을 주민수용성 → 시민참여(citizen participation, Bürgerbeteiligung) → 주민주도성(citizen-led governance, bürgergetragene Gestaltung)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어디에 발전시설을 설치할 것인가. 어떤 환경기준을 적용할 것인가. 사업규모는 어느 정도가 적정한가. 누가 투자할 것인가. 수익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시민이 처음부터 참여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결과를 설명하는 절차가 아니라 결정 과정에 함께 들어가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 누가 부담하는가
다음은 부담의 문제다. 대규모 산업과 에너지 시설에는 언제나 비용이 따른다. 토지가 필요하다. 송전망(transmission grid, Übertragungsnetz)이 필요하다. 변전시설(substation, Umspannwerk)이 들어선다. 도로와 교통체계를 확충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 경관과 환경에도 변화가 생긴다. AI와 반도체 산업은 여기에 막대한 전력과 용수 수요까지 더한다.
이 비용을 어느 지역이 집중적으로 부담한다면 그 사실은 이익배분에서도 고려돼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정의(justice, Gerechtigkeit)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는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담이 다르면 그 차이도 인정해야 한다. 지역이 더 많은 사회적·환경적 비용을 감당했다면, 경제적 혜택에서도 그 부담이 반영되는 것이 오히려 공정하다. 부담은 지역화하고 이익은 전국화하거나 사유화(privatization, Privatisierung)하는 구조라면 정의로운 전환이라고 하기 어렵다.
세 번째 질문, 누가 소유하는가
나는 네 가지 질문 가운데 앞으로 가장 중요해질 것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가 소유하는가. 왜냐하면 소유는 일회성 소득과 다르기 때문이다. 지원금(subsidy, Zuschuss)은 한 번 지급되고 사라질 수 있다. 임금(wage, Lohn)은 노동을 멈추면 함께 중단될 수 있다.
하지만 생산자산은 지속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앞선 글에서 시민을 발전소의 주주(shareholder, Aktionär)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시민펀드를 만들 수 있다. 에너지협동조합(energy cooperative, Energiegenossenschaft)을 활용할 수 있다. 소액출자(small-scale equity investment, Kleinbeteiligung)와 정책금융을 연결할 수 있다. 지역의 공공부지와 시민자본을 결합할 수 있다. 핵심은 평범한 시민이 생산자산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돈 많은 시민만 참여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재생에너지 역시 기존 자산격차(wealth gap, Vermögensungleichheit)를 확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시민소유는 투자상품이 아니라 경제적 권리(economic rights, wirtschaftliche Rechte)를 넓히는 정책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네 번째 질문,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
마지막 질문은 이익이다. 지역에서 발전한 전기를 지역기업이 사용한다. 그 전력으로 반도체와 AI 산업이 성장한다. 그 과정에서 발전수익과 산업적 가치가 만들어진다.
그 가치가 어디로 흐르는지 추적해야 한다. 지역에서 만들어진 부가 모두 밖으로 빠져나간다면 그 도시는 경제적 생산기지일 뿐 경제적 주체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것이 ‘평택 시민에너지 공동자산(community-owned energy assets, gemeinschaftliches Energievermögen)’이다. 공공부지와 시민의 소액투자, 지역기업과 협동조합, 정책금융과 금융기관의 지원, 그리고 지역기업의 RE100 수요를 연결한다. 평택에서 시민이 참여해 생산한 재생에너지를 지역기업이 PPA(Power Purchase Agreement, Stromabnahmevertrag 전력구매계약) 등으로 이용하고, 그 경제적 가치가 다시 시민과 지역사회로 돌아오도록 만드는 구조다. 에너지전환 토론자료에서도 이를 지역 안에서 에너지의 생산·소비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까지 순환시키는 모델로 제안했다. 그렇게 되면 전력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지역의 공동자산이 된다.
소유 없는 참여는 반쪽짜리 민주주의다
많은 정책에서 시민참여를 강조한다. 주민대표를 회의에 초대한다. 공청회(public hearing, öffentliche Anhörung)를 연다. 설문조사를 한다. 의견을 듣는다. 중요하다. 그러나 시민이 의견만 제공하고 결정권과 소유권(property rights, Eigentumsrechte), 수익에 대한 권한은 갖지 못한다면 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시민은 무료 자문위원이 아니다. 지역의 사회적 가치를 함께 만드는 사람이다.
특히 환경운동(environmental movement, Umweltbewegung)에서도 같은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오랜 시간 환경문제를 제기한다. 현장을 조사한다. 정책을 요구한다. 그 결과 새로운 환경사업과 시장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사업이 만들어지는 순간 외부기업과 외부전문가가 들어와 모든 사업을 수행하고, 지역시민사회에는 아무런 전문성이나 경제적 기반이 남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 내가 기존 글에서 문제 삼았던 것도 바로 이것이다. 시민운동이 만들어낸 사회적 가치가 다시 시민사회의 역량으로 축적되지 않고 기업과 외부사업자의 새로운 시장만 만들어준다면 여기에서도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가는’ 구조가 반복될 수 있다. 시민참여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되려면 참여(participation, Beteiligung) → 결정(decision, Entscheidung) → 소유(ownership, Eigentum) → 이익공유(benefit sharing, Vorteilsbeteiligung)까지 이어져야 한다.
칼 폴라니의 경고
칼 폴라니(Karl Polanyi)는 홍기빈이 옮긴 『거대한 전환(The Great Transformation, Die große Transformation)』에서 인간과 자연까지 시장의 논리에 맡기는 자기조정시장(self-regulating market)의 파괴성을 ‘악마의 맷돌(Satanic Milll, satanische Mühle)’에 비유했다. 시장 자체가 악이라는 뜻은 아니다. 경제제도가 인간을 위한 수단이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인간이 경제제도를 위해 존재하게 되는 상황을 경고한 것이다.
이 문제는 AI 시대에 훨씬 커질 수 있다. AI와 반도체 산업의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해도 그 과실이 소수의 기업과 자산소유자(asset owners, Vermögenseigentümer)에게 집중된다면 다수 시민의 삶은 오히려 더 불안해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술의 발전만큼이나 소유와 권한의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경제민주주의는 모두 똑같이 나누자는 말이 아니다
경제민주주의라는 말을 사용하면 종종 오해가 생긴다. 기업의 이익을 모두 나누자는 뜻인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돈을 주자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정치민주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같은 정치적 결과를 보장하지 않듯 경제민주주의도 모든 사람의 재산을 똑같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핵심은 독점의 문제다. 참여의 문이 열려 있는가. 정보가 공개되어 있는가. 결정권이 특정 집단에 지나치게 집중돼 있지 않은가. 부담을 진 사람에게 정당한 몫(fair share, gerechter Anteil)이 돌아가는가. 평범한 시민에게도 생산자산을 소유할 기회가 있는가. 경제민주주의는 결과를 강제로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권력과 기회가 극소수에게 독점되는 것을 막는 제도라고 이해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네 가지 질문을 평택의 새로운 원칙으로
나는 앞으로 평택의 산업·환경·에너지 정책에서 이 네 가지 질문을 하나의 원칙처럼 적용해 보았으면 한다. 누가 결정하는가. 계획단계부터 시민의 목소리가 들어가는가. 누가 부담하는가. 환경적·사회적 비용이 특정 지역이나 약자에게 집중되고 있지 않은가. 누가 소유하는가. 공공의 지원과 지역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자산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누가 이익을 가져가는가. 지역에서 만들어진 경제적 가치가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가.
이 네 질문은 에너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반도체에도 적용할 수 있다. 도시개발(urban development, Stadtentwicklung)에도 적용할 수 있다. 환경사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AI와 데이터에도 적용할 수 있다. 결국 이것은 경제를 바라보는 민주주의의 문법이다.
에너지 민주주의에서 경제민주주의로
평택은 대한민국 AI·반도체 산업의 중요한 거점이다. 그렇다면 국가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담만 평택이 감당해서는 안 된다. 그 산업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기회와 경제적 가치도 평택에 축적돼야 한다. 시민이 투자한다. 시민이 소유한다. 지역기업이 참여한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혜택을 받는다. 수익이 다시 지역의 사람과 기업, 환경과 미래세대(future generations, zukünftige Generationen)에 투자된다. 나는 이것을 에너지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너지 민주주의는 결국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정치민주주의가 정치권력을 시민에게 나누는 과정이었다면, 경제민주주의는 경제적 힘과 생산자산에 접근할 기회를 어떻게 더 많은 시민에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그래서 에너지 전환은 화석연료(fossil fuels, fossile Brennstoffe)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누가 비용을 부담하고, 누가 결정하며, 누가 발전시설을 소유하고, 누가 그 이익을 가져가는지까지 바꾸는 일이어야 한다.그때 비로소 에너지 전환은 경제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에너지를 넘어 AI 자체가 새로운 생산수단이 되는 시대다. 반도체와 데이터, 알고리즘과 플랫폼을 극소수 기업이 소유하고 AI가 인간의 노동을 빠르게 대체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다음 글에서는 칼 폴라니의 경고를 AI 시대에 다시 가져오고자 한다. AI는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기술이 될 것인가. 아니면 21세기의 새로운 ‘악마의 맷돌’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