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종건 칼럼연재 ⑪]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강도 만난 자 앞에서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 용인시 개발행위허가 논란 앞에서 다시 묻는 이웃사랑
    • 조종건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본지 발행인
      조종건 · 깨어있는시민과의동행 사무총장
                     · 본지 발행인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예수의 이 질문은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길 위에서만 울린 말이 아니다. 오늘 한국 사회의 행정 현장, 교회 강단, 시민의 양심 앞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질문이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그는 가진 것을 빼앗기고, 맞아 거의 죽게 된 채 길가에 버려졌다. 제사장도 그를 보았다. 레위인도 그를 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지나갔다. 왜 지나갔을까. 바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혹시 자기도 위험해질까 두려웠을 수도 있다. 괜히 관여했다가 곤란해질까 걱정했을 수도 있다. 종교적 정결 규례를 핑계 삼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본질은 하나다. 그들은 보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알았지만, 책임지지 않았다. 신앙의 언어는 있었지만, 이웃의 고통 앞에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오늘 우리 시대의 강도 만난 자는 누구인가. 거리에서 피 흘리는 사람만이 강도 만난 자는 아니다. 부당한 행정절차 앞에서 긴 시간을 빼앗기는 사람도 강도 만난 자다. 공익을 위해 시설을 만들려다 수많은 서류와 심의, 보완 요구와 불허 처분 앞에서 좌절하는 사람도 강도 만난 자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낡은 시설을 벗어나려 하지만, 공공기관의 높은 문턱 앞에서 막혀 선 사람도 강도 만난 자다.

      박종서 목사가 추진하는 비영리 아동복지시설 문제도 그렇다. 그는 개인의 이익을 위해 호화로운 개발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역의 아이들을 돌보고, 상처 입은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려는 일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용인시의 개발행위허가 심의와 도시계획위원회 절차가 과연 객관적이었는지, 신청인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는지, 공익성을 공정하게 보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행정에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산림과 녹지, 안전과 배수, 경사도와 접근성은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기준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절차는 공정해야 하고, 판단은 객관적이어야 하며, 공익은 균형 있게 보아야 한다. 행정이 가진 권한은 국민을 밀어내기 위한 힘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살피기 위한 책임이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약한 사람은 행정 앞에서 너무 쉽게 지친다. 행정심판을 해야 하고, 행정소송을 해야 하고, 정보공개청구를 해야 하고, 이의신청을 해야 한다. 회의록을 받아야 하고, 근거자료를 요구해야 하고, 전문가 의견서를 모아야 한다. 그 과정에는 돈이 든다. 시간이 든다. 마음이 무너진다. 서류 하나를 쓰는 일도 고통이고, 기관 하나를 상대하는 일도 고통이다.

      그 고통을 혼자 감당하게 만드는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가. 더 아픈 질문은 이것이다. 그때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한국 교회는 오랫동안 이웃사랑을 설교해 왔다. 강도 만난 자를 도와야 한다고 말해 왔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자고 가르쳐 왔다. 그러나 정작 오늘의 길 위에 강도 만난 자가 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멈추고 있는가. 부당한 행정 앞에서 고통받는 이웃이 있을 때, 교회는 함께 서고 있는가. 아니면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조용히 길을 비켜가고 있는가.

      우리는 너무 자주 사랑을 말하지만, 사랑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은 피한다. 정의를 말하지만, 정의 때문에 불편해지는 자리는 피한다. 공의를 말하지만, 공의 때문에 권력기관과 부딪히는 일은 피한다. 십자가를 말하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은 두려워한다.

      예수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의를 위해 불편해지는 것조차 피하려 한다. 예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십자가를 장식으로는 걸어도, 실제 삶에서 짊어지려 하지 않는다.

      이웃사랑은 감정이 아니다. 이웃사랑은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겼을 뿐 아니라, 가까이 갔다.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었다. 자기 짐승에 태웠다. 여관으로 데려갔다. 돈을 냈다.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시간을 내는 것이다. 사랑은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다. 사랑은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사랑은 위험한 길에서 멈추는 것이다. 사랑은 부당함을 보고도 침묵하지 않는 것이다.

      오늘 박종서 박사의 문제는 한 사람의 민원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여전히 이웃의 고통 앞에 멈출 수 있는지를 묻는 사건이다. 이것은 공공기관의 절차가 약한 사람에게도 공정한지를 묻는 사건이다. 이것은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를 말하면서, 정작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일에는 얼마나 냉정한지를 묻는 사건이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인가. 행정기관의 문턱 앞에서 지친 사람에게 “법대로 해 보라”고 말하는 사람인가. 소송과 심판의 긴 길을 혼자 걸어가게 두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의 억울함을 듣고, 자료를 함께 정리하고, 절차의 공정성을 묻고, 공공의 이름으로 행사되는 권한이 정말 사람을 위한 것인지 함께 따지는 사람인가.

      예수의 질문은 종교적 지식을 묻는 질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행동을 요구하는 질문이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오늘 한국 교회가 다시 들어야 할 말씀도 이것이다. 강도 만난 자가 누구인지 묻는 데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 내가 그의 이웃이 될 것인지 물어야 한다. 부당함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고통 앞에서 지나치지 않고, 공익을 위한 작은 몸부림이 행정의 벽 앞에서 꺾이지 않도록 함께 서야 한다. 이웃사랑은 설교의 주제가 아니라 삶의 증거다. 십자가는 교회 첨탑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억울한 이웃 곁에 서는 자리에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도 예수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는 누구의 이웃이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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